달라진 방송가 풍속도 눈길
국내 첫 여성 예능→남성 예능 제작
'노는 브로' 5월5일 정규 편성
박세리를 필두로 한 티캐스트 E채널의 '노는 언니'가 케이블 채널로는 이례적으로 화제가 된 가운데, 후속 프로그램인 '노는 브로'가 5월5일 정규 편성을 앞두고 있다.
이전에 남성만 출연하는 '남성 예능'으로 성공한 후, 여성 버전으로 제작된 사례는 많았다.
'무한도전-무한걸스', '1박2일-청춘불패', '라디오스타-비디오스타' 등이 그 예다. 하지만 그 반대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전까지 여성 예능이 제작돼 '중박'의 성과라도 올리는 사례는 남성 예능으로 시작해 여성 버전으로 제작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외의 여성 예능 프로그램은 여러 시도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여성 예능'이 과거에 비해 훨씬 더 안정적으로 자리잡는 모양새다. SBS는 지난 2월 설특집 파일럿으로 방송된 '골 때리는 그녀들'을 5월 정규 편성할 예정이다. MBC는 웹예능 '마녀들'의 인기에 힘입어 시즌2를 6월부터 방송한다.
그동안 방송계는 여성 예능을 활발히 제작하지 않은 이유 혹은 여성 예능이 성공하지 못한 이유로 여성 예능인의 기근, 여성 예능인의 능력 부족, 여성 예능의 부진한 시청률 등을 이유로 꼽았다.
최근 달라진 예능계 '여풍'은 어디서 기인했을까?
메인 MC급 능력을 갖춘 여성(예능인)의 등장
개그우먼 박나래, 김숙, 전 골프선수 박세리 등이 메인 MC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방송사와 제작진은 여성 예능을 만들어도 되겠다는 확신을 갖기 시작했다.
특히 박나래는 '나 혼자 산다'에서 갑작스런 전현무의 하차로 생긴 메인 MC 공백을 성공적으로 메우면서 메인 MC로서의 역량을 증명했다. 이후 '구해줘! 홈즈'를 비롯해 다수의 파일럿(임시 편성) 프로그램을 정규편성하는데 일조하며 그 능력을 다시 입증했다.
'노는 언니'의 흥행에는 박세리의 역할이 크게 작용했다. 2019년부터 '아는형님', '수미네 반찬', '밥블레스유 2' 등을 통해 방송에 자주 얼굴을 비치기 시작한 그는 '나 혼자 산다'(2020.5) 출연을 통해 방송인으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았다. 넘치는 입담과 솔직함, 특유의 카리스마로 '노는 언니'를 지난해 8월부터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다.
방송계 관계자는 "방송사에서 딱히 '여성 예능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여성 예능)을 시작하지는 않았다. 대신에 여성 예능인 중 메인 롤(메인 MC)이 많이 생겼다"고 말했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1박2일'과 '무한도전'을 예로 들면, 강호동과 유재석이 있어 (흥행이) 가능했다. (여성 예능의 흥행은) 박나래, 박세리 등 리더십을 갖고 프로그램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갈 여성들이 방송가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메인급 MC 없이) 비슷한 캐릭터의 여성 4~5명만 출연시켰다면 잘 안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달라진 방송가 풍속…더 과감해진 여성 예능인들
방송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망가지는 코미디나 맥락없는 웃음을 뽑아내는 남자 출연자들만 할 수 있는 역할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 방송국에서도 (속된 말로) 남자 출연자를 막 굴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이에 반해 몸을 사리지 않고 자신의 끼를 적극 발산하는 여성 예능인은 과거에 비해 증가했다. 전반적으로 여성들의 '슬랩스틱' 개그는 늘어났고, 여성 출연자들이 민낯(생얼)을 공개하는 일은 다반사가 됐을 정도로 이전에 비해 내숭없고 솔직한 모습을 방송에서 보이고 있다.
MBC '라디오스타' 역사상 약 10년 만에 처음으로 MC 자리를 꿰찬 안영미는 '19금' 몸개그를 서슴없이 선보인다. 김숙, 박나래, 장도연 역시 자신이 망가지는 데 거리낌이 없다. 배우 송지효와 전소민은 '런닝맨'에서 넘어지는 '몸 개그'를 뽐내며 톡톡히 자신의 역할을 해낸다.
'노는 언니'에 이어 '노는 브로'의 연출을 맡은 방현영 CP(책임프로듀서·총연출자)는 "예능이라는 건 본인을 내려놓아야 한다. 내려놓으면서도 이것이 호감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이전에는 힘 세고 약간 억척스럽기도 한 여성 예능인이 많이 다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언니들' 덕분에 (변화를 보여줬고 '노는 언니'는) 살아남았다"고 '노는 언니'의 성공 배경을 방송 속 달라진 여성들의 모습에서 찾았다.
겼고, 이는 '여성 예능'의 시도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최근 '여성 예능'의 인기가 이러한 토대 위에서 마련됐다는 분석도 나왔다.
여성 PD의 수 증가도 한몫…'롱런' 위해선? 굳이 성별 구분 불필요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CP급의 여성 PD가 생겨났고, 이는 '여성 예능'의 시도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최근 '여성 예능'의 인기는 이러한 토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분석도 있었다.
방 PD는 "제가 여성 PD다 보니 여성 예능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늘 있었다. 하지만 제가 연차가 낮을 때는 고연차 여자 선배들이 많이 없었다. 이제 제 또래 PD들이 연차가 쌓이면서 자기 콘텐츠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이전의 여성 출연자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이 꾸준히 있어 그게 토양이 됐다. '노는 언니'가 갑자기 떡하니 나올 수 있는 콘텐츠는 아니었다. 기존 여성 예능이 크게 흥행되지는 않았더라도, 이 콘텐츠들이 만들어짐으로써 ('여성 예능' 제작의) 흐름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노는 언니'의 흥행이) 가능했다"고 덧붙였다.
방송계 관계자는 "여자 예능을 하고 싶어할 때는 잘 안 됐었다. 할 때마다 안 됐다. (이후 자연스러운 흐름이 만들어졌다.) 실제로 '나 혼자 산다'도 여성 출연자가 사실상 메인이다. 그래서 '여은파' 같은 스핀오프도 나온 것"이라고 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이들 프로그램이 '롱런'하기 위해서는 '남성 예능'과 '여성 예능'으로 구분하기보단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더이상 방송가에서 남성 예능(인)과 여성 예능(인)을 따로 나누지 않는 풍토가 조성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남성과 여성의 문제가 아닌 캐릭터의 문제"라고 했다.
방송계 관계자는 "방송사에서 딱히 여자 꺼(예능)을 해야겠다고 하지는 않았다. 다만 여성 메인 롤이 많이 생겼다"며 "딱히 여성, 남성 예능을 나누지 않는다. 재미와 기획의도, 완성도 이런 게 제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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