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계엄군, 41년 만의 속죄…화해·치유 '첫발' 디뎠다

기사등록 2021/03/17 15:35:09 최종수정 2021/03/17 18:30:10

항쟁 당시 특전사 7공수부대원, 무고한 희생자 사살 증언

"유족에 씻을 수 없는 아픔 드려 죄송…죄책감 시달렸다"

묘소 앞 참회도…"특정 피해자 사죄는 이례적, 의의 크다"

유가족 "죽은 동생 다시 만났다는 마음으로 용서하고 싶다"

가해자가 사과의사 진상조사위 전달, 유족 받아들여 성사

[광주=뉴시스] 신대희 기자 =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16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41년 전 자신의 사격으로 숨진 박병현 씨 묘소에 참배하고 있다. 2021.03.17. (사진 =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제공 영상 갈무리)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광주=뉴시스] 변재훈 기자 = "어떤 말로도 씻을 수 없는 아픔을 드려 죄송합니다. 용서를 빕니다."

지난 16일 오후 3시께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 내 민주의 문 접견실.

5·18민주화운동 당시 진압 작전에 투입됐던 특전사 공수부대원 A씨가 자신의 총격으로 숨진 故박병현씨 유족 앞에서 무릎을 꿇고 오열했다.



A씨는 항쟁 당시 특전사 7공수 특전여단 33대대 8지역대 부대원이었다. 그는 1980년 5월23일 광주 남구 노대동 노대남제 저수지 부근을 순찰하던 중 젊은 남성 2명이 화순 방향으로 도망치는 것을 보고 부대원과 함께 총격을 가했다.

총격으로 농사일을 도우러 고향인 전남 보성으로 가던 박병현(당시 25세)씨가 숨졌다.

모두가 마음 속에만 묻고 살았던 40년 세월이 흐르고 난 뒤에야, A씨와 박씨의 유족이 마주할 수 있었다.

A씨는 "어떤 말로도 씻을 수 없는 아픔을 드려 죄송하다. 사과가 또 다른 아픔을 줄 것 같아 망설였다"며 유가족에게 큰절을 올렸다. 바닥에 엎드린 채 울먹인 A씨는 주변 사람들의 부축에 의지해 겨우 자리에 앉았다.

이어 그는 "40여 년 동안 죄책감에 시달렸다. 이제라도 유가족에게 용서를 구할 수 있어 다행이다. 용서해달라"고 거듭 사죄했다.
[광주=뉴시스] 신대희 기자 =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왼쪽)이 16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 민주묘지 접견실에서 자신의 사격으로 숨진 박병현 씨 유가족에게 사죄하고 있다. 1980년 5월 7공수여단 33대대 8지역대 소속이었던 이 부대원은 조준 사격으로 박씨를 숨지게 했다. 2021.03.17. (사진 =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유족을 대표해 숨진 박씨의 형인 박종수(73)씨는 "용기를 내줘서 고맙다. 죽은 동생을 이제라도 편히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답했다.

또 "과거의 아픔을 다 잊어버리고 떳떳히 잘 살아가는 것이 서로 좋을 것 같다. 마음 편히 잘 살아달라"며 "죽은 동생을 다시 만났다는 마음으로 용서하고 싶다"고 A씨를 보듬었다.

박씨는 먼저 A씨에게 다가가 위로하듯 포옹했다. A씨와 형 박씨는 한참을 부둥켜 안고 오열했다.

A씨는 곧바로 유족들과 함께 추모탑 앞에서 오월영령 앞에 헌화·분향한 뒤 故 박병현씨 묘를 찾았다.

A씨는 박씨의 묘 앞에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떨궜다. 그리고 참회의 의미를 담은 술잔을 묘소에 올렸다.

이번 만남은 A씨가 자신의 가해행위를 고백하고 유족에게 사과하겠다는 의사를 진상조사위에 전달, 유족도 이를 받아들이면서 성사됐다.

A씨는 총격 당시를 "1개 중대 병력이 광주시 외곽 차단의 목적으로 정찰 등의 임무를 수행하던 중이었다"며 "화순 방향으로 걸어가던 젊은 남자 2명이 공수부대원을 보고 도망을 쳤다. 정지를 요구했으나 겁에 질린 채 달아나길래 무의식적으로 사격을 했다"고 기억했다.

또 "숨진 박씨의 사망 현장 주변에선 총기 등 위협이 될 만한 물건이 전혀 없었다"며 "대원들에게 저항하거나 폭력을 행사한 사실도 없다. 단순히 겁을 먹고 도망가던 상황이었다"고 고백했다.

이는 '당시 계엄군의 총기 사용은 자위권 차원이었다'는 신군부를 비롯한 5·18 왜곡·폄훼 세력의 논리가 허구임을 뒷받침하는 진술이기도 하다.

[광주=뉴시스] 신대희 기자 =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사진 왼쪽)이 16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 민주묘지 접견실에서 자신의 사격으로 숨진 박병현 씨 유가족에게 사죄하고 있다. 1980년 5월 7공수여단 33대대 8지역대 소속이었던 이 부대원은 조준 사격으로 박씨를 숨지게 했다. 2021.03.17. (사진 =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진상조사위는 5·18 진상 규명 과정에서 당시 계엄군들이 불특정 다수에 대한 가해 사실에 대한 목격담·증언 등은 있었으나, 특정 피해자에 대한 직접 사죄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의의를 설명했다.

특히 전세계적으로도 5·18과 같은 국가 폭력의 비극을 겪은 가해자가 특정 피해자에 대해 죄를 고백하고 진심으로 사죄한 것은 유례를 찾기 힘들다고 했다.

최용주 5·18진상조사위 조사1과장은 "국가 폭력의 가해자가 자신의 직접적인 가해 사실이 확인, 특정된 피해자·유가족을 만나 용서를 구하는 일은 이례적이다. 과거 남아프리카공화국이 비슷한 사례가 있지만, 사면을 전제로 한 '조건부 사죄'였다. 진정성 면에서는 이번 만남이 큰 의의를 갖는다"고 밝혔다.

이어 "A씨와 피해 유가족 모두 큰 용기를 내 성사된 만남이었다. 특히 A씨는 진상조사위에 '더는 죄책감을 안고 살기 힘들다'며 적극적인 중재를 요구했다"고 덧붙였다.

또 "이번 만남은 과거사 진상 규명과 함께 양 당사자가 진정으로 화해하고, 아픈 역사를 치유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국민 통합을 이루기 위한 첫걸음으로 봐도 좋을 것 같다"고 평했다.
 
진상조사위는 17일 A씨가 국립 5·18민주묘지를 방문해 유가족을 만나, 희생자 묘소 앞까지 참배하는 장면을 담은 영상·사진을 공개했다.

A씨와 같이 항쟁 당시 계엄군으로 참여, 국가 폭력의 가해에 가담했던 이들의 양심 고백과 진실 증언을 장려하기 위해서다. 진상조사위는 앞으로도 계엄군과 항쟁 희생자 또는 유족 간 상호 의사가 있는 경우, 만남의 자리를 적극 마련할 계획이다.

송선태 5·18 진상조사위원회 위원장은 "당시 작전에 동원된 계엄군들이 이제는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당당히 증언해주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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