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동결자금' 해소 韓 의지 통했지만…"선박 억류까지 풀려야"

기사등록 2021/02/03 17:55:58 최종수정 2021/02/03 18:02:14

당장 귀국 힘들 듯…선사와 선박 유지·관리인력 논의

"이란, 美보다 과도한 제재 불만…韓 해결 의지 통해"

'해양오염' 근거 제시 안해…"선박 억류 해제돼야 해결"

[서울=뉴시스]지난 10일부터 12일까지 이란을 방문한 최종건 외교부 제1차관이 모즈타바 졸누리 이란 의회 국가안보·외교정책위원장을 만나 우리 선박 억류사건 해결 및 국내 이란 원화자금 활용 등 양국간 관심 현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사진=외교부 제공) 2021.01.12.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이국현 기자 = 외교부는 미국의 제재로 한국에 동결돼 있는 이란 자금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해결 의지와 긴밀한 소통이 이란 억류 선원의 석방에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하면서 최종적으로 선박 억류 해제를 촉구하고 나섰다.

일각에서는 이란 측이 선박과 선장에 대한 해양 오염 문제는 계속 조사하겠다고 밝히면서도 정작 관련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있어 선박 억류가 장기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3일 외교부에 따르면 전날 세이에드 압바스 아락치 이란 외교부 차관은 최종건 외교부 제1차관과의 전화 통화에서 선장을 제외한 나머지 선원들에 대한 억류를 우선 해제하기로 결정했다고 알려왔다.

이는 지난달 4일 이란 혁명수비대(IRGC)가 호르무즈 해협의 오만 인근 해역을 항해 중이던 한국 국적의 석유화학제품 운반선 'MT 한국 케미'호를 나포한 지 29일 만이다. 그간 이란 측은 '해양 오염' 문제를 들어 이란 남부 반다르아바스항에 한국 국적 5명, 미얀마 11명, 베트남 2명, 인도네시아 2명 등 20명을 억류해 왔다.

외교부 당국자는 "사건 터지자마자 이란에 갔는데 당시 '한국이 미국보다 제재를 과도하게 지키냐'는 얘기를 많이 했다. 한국에 대한 분위기가 별로 안 좋았고 화가 많이 나 있었다"며 "최종건 1차관의 이란 방문이 많이 도움이 됐고, 이후 이란과의 외교 소통을 통해 우리의 진심이 이란 지도부에도 전해졌다"고 밝혔다.

그는 "이전과 달리 이란의 동결자금 문제를 해결할 의지를 다시 보게 됐고, 동결자금 문제를 조속히 해결해 달라고 당부했다"며 "이란 쪽에서는 한·이란 우호적 관계와 인도적 이유 때문에 선원들을 풀어줬다고 했다"고 밝혔다.

앞서 최종건 차관과 실무 대표단은 지난달 10일부터 사흘간 이란에서 고위급 당국자들을 잇따라 만나 선박 억류 해제를 촉구하고, 동결 자금의 해소 방안을 적극 논의했다.

이 당국자는 "사태 이후 굉장히 광범위하게 외교 소통도 많이 했고 이란 측 인사도 접촉했다"며 "1월14일 한국에 돌아왔는데 이후 14회 가량, 휴일을 제외하면 매일 외교채널 간 소통이 있었고, 국회 외통위원장도 이란 의회와 계속 소통해 그 전과 다른 의지로 원화 동결자금 문제를 해소하겠다는 의지가 전달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현재 국내 우리은행과 IBK기업은행에 개설된 이란 중앙은행 명의 원화 계좌에는 이란의 원유 수출 대금 70억 달러(약 7조7600억원)가 묶여 있다. 정부는 지난해 미국, 이란과 협의를 거쳐 의약품, 의료기기 등 인도적 품목 일부를 이란에 수출하는 방식으로 동결 자금 해소를 추진해 왔다.

한국에 동결된 자금으로 이란의 유엔 회원국 분담금을 납부하는 방안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확인됐다. 이란이 내지 못한 액수는 1625만달러(약 180억원) 정도로 알려졌으며, 이 가운데 일부를 납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당국자는 "분담금을 낸다는 건 협의가 끝나고, 굉장히 기술적인 부분이 필요하다"며 "달러가 미국으로 송금되지 않는 형태의 방안을 강구해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도적 교역을 통한 의약품 수출액이 과거 6개월간 150억불 규모에서 지난 두 달간 256억원으로 두 배 가량 증가한 것도 이란의 선원 억류 해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서울=뉴시스] 4일(현지시간) 한국 국적의 유조선 'MT-한국케미호'가 걸프 해역(페르시아만)에서 이란 혁명수비대에 나포됐다. (그래픽=안지혜 기자)  hokma@newsis.com
정부는 국내에 동결돼 있는 이란의 석유수출대금 활용을 위한 미국과의 협의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미국이 아직 대이란 제재에 대한 입장을 밝히진 않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이란 핵합의 복원 의사를 밝혔다는 점에서 해결 여지가 있다는 관측이다. 

이 당국자는 "미국 제재 때문에 동결돼 있는 만큼 자금을 쓰거나 이전하기 위해선 미국과 조율이 필요하다"며 "국내적으로 송금 구조를 만든다든지,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쓸지는 우리가 독자적으로 하고, 미국 승인이 필요한 건 필요한대로 더 많은 다양한 방안을 가지고 소통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동결 자금 해결에 대한 미국의 반응에 대해선 "인선이 완료되지 않았고, 대이란 정책도 완전히 정립됐다고 보기 힘든 상황이지만 바이든 대통령부터 블링컨 국무장관까지 이란과 대화로 핵합의를 하겠다는 입장을 표했다. 그런 면에서 트럼프 행정부에 비해 덜 경직된 분위기는 있다"며 "그러나 미국이 제재에 대한 입장을 밝힌 적은 없다"고 말했다.

한편 이란 정부는 선장을 제외한 선원 19명의 억류 해제를 결정했지만 선박 관리를 위해 추가 인력이 남아야 하는 데다 코로나19 상황을 감안하면 당장 귀국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 2019년 영국 선박의 경우 선원 23명 가운데 비필수 인력 7명이 먼저 억류 해제된 사례가 있다.

또 다른 외교부 당국자는 "선박이 억류돼 있으면 유지와 관리를 해야하는데 이란은 선장 한 명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 것 같고, 우리 선사는 전체적인 선박의 운영 관리를 위해 필수 인력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라며 "필수 인력을 지정하는 내부적인 작업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선박과 한국인 선장의 억류 해제도 지속적으로 촉구할 방침이다. 이란 정부는 선박과 한국인 선장에 대해서는 위법 행위에 대한 사법 조사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란 측은 한 달 째 해양 오염 관련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최종적으로 선박의 억류가 해제돼야 해결된다"며 "이란이 이런 정도의 우호적 조치를 취한 것 자체는 우리가 선박 억류를 해결하고 양국 문제를 확대하는 데 좋은 실마리를 제공했다는 측면에서 단추를 뀄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lgh@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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