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지표, 예상보다 양호했다…'반도체 쏠림'은 아킬레스건

기사등록 2021/01/31 05:00:00

통계청, 2020년 11월·연간 산업 활동 동향

생산은 처음, 소비는 17년 만에 줄었지만

12월 트리플 증가 등 지표는 나름 긍정적

"수치, 그리 나쁘지 않아…나름대로 선방"

"반도체 따라 韓 경제 '운명' 바뀌는 구조"

[광명=뉴시스] 김종택 기자 = 기아자동차 소하리 공장에서 생산이 끝난 차량이 출고를 기다리고 있다. 2020.04.27. semail3778@naver.com 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 없음

[세종=뉴시스] 김진욱 기자 = 지난해 국내 산업 생산이 통계 작성 이래 처음으로 뒷걸음질 쳤다. 소비도 '카드 대란'이 있었던 2003년 이후 17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경제를 덮친 여파다.

그리 좋지만은 않은 상황이지만, 광공업 생산 0.4% 증가·설비 투자 6.0% 성장 등 세부 지표는 예상보다 양호하다. 경제 성장률에 이어 산업 지표까지 선방했다는 평가다. 다만 긍정적 지표가 반도체 효과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은 불안 요인이다.

31일 통계청의 '2020년 12월 및 연간 산업 활동 동향'을 보면 같은 해 전산업 생산 지수는 107.2(2015년=100)로 전년(108.1) 대비 0.8% 감소했다. 이 통계가 작성된 2000년 이후 첫 마이너스(-) 기록이다. 광공업 생산은 0.4% 증가했지만, 서비스업 생산이 2.0% 감소하면서 전체 지수를 주저앉혔다.

소매 판매액 지수는 112.9(2015년=100)로 전년(113.1) 대비 0.2% 감소했다. 승용차 등 내구재 판매는 10.9% 증가했지만, 의복 등 준내구재(-12.2%)와 화장품 등 비내구재(-0.4%)가 줄면서 감소세로 돌아섰다. 설비 투자는 전년 대비 6.0% 증가했고, 건설 기성(실제로 시공된 건설 실적)은 2.3% 감소했다.

이와 관련해 김보경 통계청 산업동향과장은 "코로나19로 대면 서비스업이 타격을 받으면서 전산업 생산이 감소했다"면서 "소비는 소비자가 외부 활동을 줄이고, 관광객이 감소하면서 감소세로 접어들었다. 설비 투자는 반도체 시설 투자에 힘입어 큰 폭으로 증가했다"고 했다.




시계를 12월로 좁혀보면 지표는 비교적 긍정적이다. 우선 생산·소비·투자 3개 부문이 모두 플러스(+)를 나타내는 '트리플 증가' 현상이 나타났다. 전산업 생산은 전월 대비 0.5%, 소비는 0.2%, 설비 투자는 0.9% 각각 증가했다.

생산의 경우 광공업이 전월 대비 3.7% 증가하면서 성장세를 이끌었다. 반도체(11.6%), 기계 장비(10.0%), 화학제품(6.9%)의 증가 폭이 특히 컸다. 광공업 출하도 광업, 제조업, 전기·가스업이 모두 늘면서 1.3% 증가했다. 광공업 출하는 통신·방송 장비(18.1%), 반도체(13.5%), 화학제품(3.0%) 순으로 호조세를 보였다.

다른 제조업 생산 지표도 나쁘지 않았다. 제조업 재고는 전월 대비 0.2% 감소했고, 재고율(재고/출하 비율)은 전월 대비 1.6%포인트(p) 하락했다. 제조업 생산 능력 지수는 전월 대비 1.5% 증가했다.

소비의 경우 음식료품 등 비내구재(3.9%) 판매가 늘면서 전체 지표를 끌어올렸다. 설비 투자는 선박 등 운송 장비(3.4%)와 특수 산업용 기계 등 기계류(0.2%) 투자가 모두 증가했다.

경제 부처를 총괄하는 기획재정부는 긍정적 평가를 내놨다. 기재부는 지난 29일 '2020년 12월 및 연간 산업 활동 동향 및 평가' 자료를 통해 "12월 전산업 생산은 코로나19 제3차 확산에도 불구하고 2개월 연속 증가했다"면서 "12월 산업 활동은 수출 회복에 따른 큰 폭의 광공업 생산 증가로 경기 회복의 모멘텀을 이어가는 모습"이라고 했다.


[서울=뉴시스]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생산 라인. (사진=SK하이닉스 제공) 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

민간 경제 전문가도 "지표가 비교적 양호하다"며 같은 목소리를 냈다. 양준석 가톨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올해 코로나19 확산 상황 대비 수치가 그리 나쁘지 않다"면서 "소비 지표도 정부의 강력한 사회적 거리 두기 조처 등을 고려한 예상치보다 덜 감소했다. 희망적이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이영 한양대학교 경제금융학부 교수도 "이 정도면 나름대로 선방했다고 봐야 한다"면서 "세계 경제 성장률이 -4%대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한국은 -1.0%에 그친 것도 긍정적인데, 산업 지표도 양호한 수준으로 집계됐다"고 했다.

다만 호평만 나온 것은 아니다. '반도체 쏠림'을 우려하는 목소리다. 양준석 교수는 "설비 투자만 봐도 이 지표가 큰 폭(연간 6.0%)으로 증가한 것은 전적으로 반도체 덕분"이라면서 "반도체 이외 분야의 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은 상황이다. 반도체 산업의 업황에 따라 한국 경제의 운명이 바뀌는 구조로 변화해가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고 했다.

실제로 2020년 반도체 등 정보통신기술(ICT)을 제외한 제조업 생산은 전년 대비 3.5% 감소했다. 같은 기간 반도체는 35.3% 증가했다. 출하 또한 ICT를 제외한 제조업은 4.1% 감소했고, 반도체는 28.9% 증가했다. 설비 투자에서도 반도체 제조 장비 등이 포함되는 기계류가 8.6% 증가했다.

기업 활동을 장려하고, 창업을 더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는 진단이다. 이영 교수는 "잠재 성장률이 훼손돼가고 있다는 한국 경제의 근본적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면서 "반도체뿐만 아니라 다양한 기업이 경영 활동을 의욕적으로 할 수 있도록 정부가 그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들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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