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기사 과로사 방지법' 통과에도...여전히 갈 길 먼 '분류작업'

기사등록 2021/01/09 07:00:00 최종수정 2021/01/09 07:05:14

생활물류법, 전날 국회 본회의 통과했지만

분류작업 관련 책임 소재 명시 안돼 '한계'

사회적 합의기구도 '삐걱'…12일 회의 주목

[서울=뉴시스] 고승민 기자 = 23일 수원에서 한 택배노동자가 집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는 등 연말연시를 맞아 택배노동자들의 고충이 심화되고 있는 24일 서울의 한 택배사 물류센터에서 노동자들이 분류 및 상차 작업을 하고 있다. 2020.12.24. kkssmm99@newsis.com
[서울=뉴시스] 강지은 기자 = 이른바 '택배기사 과로사 방지법'인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생활물류법) 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택배 노동자들의 표정은 마냥 밝지 않다.

이들의 장시간 노동과 과로사 원인으로 지목되는 '분류작업' 개선 문제가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커져서다. 어렵게 마련된 생활물류법도 '반쪽짜리'가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9일 노동계에 따르면 지난 8일 생활물류법 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일단 택배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발판이 마련됐다는 평가다.

생활물류법은 지난해 6월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으로 택배서비스사업에 '등록제'를, 배달대행·퀵서비스 등 소화물배송업에 '인증제'를 도입해 생활물류서비스사업을 법적으로 제도화한 것이다.

여기에 위탁계약 갱신청구권 6년 보장, 표준계약서 작성 및 사용 권장, 안전시설 확보 노력 등 택배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에 관한 내용을 담으면서 생활물류법은 일명 '택배기사 과로사 방지법'으로 불리게 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어느 때보다 택배 수요가 급증한 상황이지만, 근로자가 아닌 특수고용직 종사자(특고)라는 이유로 그간 법의 사각지대에 놓였던 이들을 보호할 법적 장치가 마련된 것이다.

그러나 생활물류법에 '분류작업'과 관련한 책임 소재가 명시되지 않은 점은 한계로 꼽힌다.

당초 지난해 6월 박홍근 의원이 발의한 생활물류법 원안에는 택배기사의 업무 범위에서 분류작업을 제외한다는 내용이 담겼지만, 같은 해 10월 수정안에서 삭제되면서다.

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는 생활물류법 통과 직후 입장문을 내고 "택배 노동자 처우 개선의 첫 걸음이라는 의미가 있다"면서도 "분류작업에 대한 사용자의 책임을 명시하지 않은 결정적 한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분류작업은 택배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과 과로사 원인으로 지적된다. 실제로 노조는 배송 외에도 5~6시간 걸리는 분류작업이 과로사로 이어지고 있다며 정부와 택배사들에 분류작업 인력 투입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하지만 현재 분류작업 문제를 놓고 택배사와 노조의 이견은 첨예한 상황이다.

택배 노동자들은 '분류업무는 택배기사 업무가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택배사들은 '분류업무는 배송업무에 포함되며 배송 수수료에 분류수당도 포함된다'고 맞서고 있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11월 택배 과로사 대책을 발표하며 노사와 국회, 정부,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사회적 합의 기구에서 분류작업 문제를 비롯한 쟁점 과제를 논의하기로 했지만 이마저도 삐걱대는 모습이다.

대책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15일 열린 사회적 합의 기구 1차 회의에서는 분류작업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으며, 이 자리에서 분류작업은 택배사의 업무로 잠정 합의됐다.

그러나 같은 달 29일 2차 회의에서 통합물류협회가 '분류작업은 택배사의 업무가 아니다'라고 합의를 파기했다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다만 물류협회는 "잠정 결론이기에 합의 파기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분류작업 문제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위기에 놓이면서 택배 노동자들의 과로사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지난해 12월에만 1명의 택배 노동자가 과로사로 목숨을 잃고 3명의 택배 노동자가 과로로 쓰러진 상황이다. 지난달 22일 쓰러진 택배 노동자는 보름이 넘도록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특히 설 연휴를 앞둔 상황에서 분류작업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지난해 추석 연휴 때와 비슷한 상황이 또다시 반복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다만 정부는 오는 12일 열릴 3차 회의에서 보다 진전한 논의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분류업무는 택배기사 업무가 아니라는 정부의 원칙은 명확하다"며 "택배가격 현실화가 해소된다면 지금 노사의 분류작업 공방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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