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한국 선박 나포, 회색지대 전략 활용 군사 도발"

기사등록 2021/01/05 16:30:52

류성엽 "미국과 동맹국의 군사적 대응 회피"

회색지대 전략, 군사 분쟁에 못 미치는 도발

청해부대가 현지 활용할 군사적 수단 부재

[서울=뉴시스]아랍에미리트(UAE)를 향하던 한국 유조선 '한국케미호'(9797t)가 지난 4일 이란 혁명수비대에 나포됐다. 사진은 이란 국영 방송 IRIB가 공개한 현장 모습. 2021.01.05. (사진=IRIB 캡쳐)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박대로 기자 = 이란이 우리 국적 선박을 나포한 것은 회색지대 전략을 활용한 군사 도발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류성엽 21세기 군사연구소 전문연구위원은 5일 '이란 혁명수비대 한국 선박 나포와 회색지대 전략' 보고서에서 "이란의 한국 국적 선박 '한국 케미' 나포 행위는 미국의 대(對) 이란제재 효과 회피를 위해 미국의 동맹인 한국을 상대로 회색지대 전략을 적용한 이란의 군사적 도발 사례"라고 분석했다.

류 위원은 "이란이 환경 문제를 이유로 한국 국적 선박과 한국 국민을 억류하는 행위는 미국과 동맹국의 군사적 대응을 회피하기 위한 행위"라며 "한국의 경제제재 조치를 완화하려는 협상 과정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회색지대(Gray Zone) 전략이란 평화와 전쟁 사이에서 여러 권력 요소를 활용해 정치 안보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활동을 의미한다. 이 전략이 활용되면 일반적인 충돌보다는 심하지만 대규모 군사 분쟁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는 행위가 이뤄진다. 대체로 국제 관습, 규범 또는 법률에 도전하고 위반하는 행위가 동반된다.

회색지대 전략을 구사하는 주요 국가는 중국과 러시아, 이란, 북한 등이다. 이들은 회색지대 전략하에 정보작전과 정보조작, 정치적 강압, 경제적 강압, 사이버 작전, 우주 작전, 대리인 지원, 국가 통제 군사력(경찰 등)을 활용한 도발행위 등을 구사한다.

[부산=뉴시스] 하경민 기자 = 청해부대 33진 '최영함'(DDH-Ⅱ·4400t급)이 24일 오전 부산 남구 해군작전사령부 부산작전기지 부두에서 출항하고 있다. 최영함은 올 10월 중순 청해부대 32진 대조영함과 교대해 내년 4월까지 아덴만 해역에서 선박호송작전을 비롯해 안전항해지원과 원양어선 보호활동 등의 임무를 수행할 예정이다. 2020.09.24.  yulnetphoto@newsis.com
회색지대 분쟁 사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돈바스 전쟁 개시 전 여론조작, 심리전, 전자전 ▲중국이 사드 배치를 빌미로 한국에 한 무역보복 ▲중국이 해상민병대(Maritime Militia)와 불법조업 선단을 활용해 주변국의 어업권을 침해한 행위 ▲북한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와 금강산관광지구 독자 개발, 김왕자 사건 등 ▲이란이 이라크 내 시아파계 친이란 세력을 활용해 미국 대사관을 위협한 행위 등이다.

박윤일 전 경북대·충주대 교수와 정삼만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연구실장은 '미·중 해양패권 경쟁과 회색지대전략' 보고서에서 "전쟁에 이르지 않으면서 한 국가의 안보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회색지대전략'의 본질이며 이 전략의 특성은 점진주의(gradualism)와 애매모호함(ambiguity)"이라며 "상대의 행위를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지만 그 행위의 결과를 쉽게 예측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 등은 이어 "회색지대전략을 구사하는 측은 의제 또는 어젠다(agenda)를 가능한 잘게 많이 썰어(slicing) 상대로 하여금 이 전략의 의도와 동기가 무엇인지 모르게 한다"며 "이 전략의 실행자는 선제적 조치로 기정사실화(fait accompli)해 상대로 하여금 적절한 반응이나 대응을 못하도록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회색지대전략은 일종의 속임수일 수도 있지만 약육강식의 논리가 작용하는 현실세계에서는 힘은 곧 정의이고 국익이 최고의 가치이자 선(善)이다. 그래서 회색지대전략에 관련해서는 특성상 오직 유용성만 거론되지 불법성이나 비도덕성 등은 거론되지 않는다"며 "회색지대전략과 관련해 더욱 심각한 것은 이 전략에 대한 마땅한 대응전략의 모색이 쉽지 않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란의 이 같은 전략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청해부대를 이란 근해로 파견한 것은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분석도 나왔다.

[서울=뉴시스]김명원 기자 = 초치 되었던 사이드 바담치 샤베스타리 주한이란대사가 5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를 나서고 있다. 주한이란대사는 걸프 해역(페르시아만)에서 이란 정예군인 혁명수비대에 나포된 한국 유조선 'MT-한국케미호' 관련해 초치되었다. 2021.01.05. kmx1105@newsis.com
류성엽 위원은 "이란 군사력과 한국 해군, 공군의 작전 수행능력을 고려할 때 대한민국은 억류 선박, 인원 구출 또는 호르무즈 해협에서 해양통제 달성을 위해 필요한 군사력을 현지에 전개시킬 능력이 부재하다"며 "최영함이 현장에서 시행할 수 있는 군사적 행동 수단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란은 이 지역에서의 해양거부 달성을 위해 다종·다수의 대함미사일을 보유하고 있으며 북한제 연어급 잠수함 등이 배치돼있다"며 "최영함에 대한 이란 대함미사일 위협 범위와 기뢰, 어뢰 위협 등을 고려할 때 최영함 파견은 부적절한 조치"라고 비판했다.

이란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공세적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류 위원은 군사적 측면에서의 선택지로 ▲청해부대를 미국 주도의 국제해양안보구상(IMSC) 참가 방식으로 변경 검토 ▲이란 관련 선박 국내 입항 또는 영해 통과 과정에서 불법행위 발생 시 억류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역내에서 이란과 경쟁관계에 있는 국가와 군사협력을 강화, 예맨 등 주요 분쟁 지역에 대한 무상 군사 원조 시행 등을 제시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daer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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