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잘생겼네" 말해서 옥살이…42년만에 재심 무죄

기사등록 2020/12/12 09:00:00

TV로 북한의 대남선전 본 뒤 동조발언

1978년 경찰에 불법구금…징역형 확정

40여년 만 재심…"국가 위험없어" 무죄

[서울=뉴시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달 27일 "당중앙의 원대한 구상과 설계도 따라 노동당 시대의 문명 창조와 변혁이 태동하는 검덕지구에 광산도시의 휘황한 내일을 그려주는 사회주의 선경 마을들이 솟아났다"고 보도했다. 2020.11.27. (사진=노동신문 캡처)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고가혜 기자 = 1970년대 당시 "김일성이 잘생겼다"는 등의 발언을 한 혐의로 불법구금돼 옥살이를 해야 했던 90대 여성이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12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2부(부장판사 이관용)는 최근 반공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손모(95)씨의 재심 사건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손씨는 지난 1978년 6월 초 경기도 소재 지인의 집에서 TV를 보다 북한의 대남 선전방송이 나오자 이를 시청한 뒤 "김일성이 늙은 줄 알았더니 잘생겼더라"거나 "이북에는 8시간 노동만 하면 먹고 사는 것은 걱정 안 하고 산다더라"는 등의 말을 한 혐의 등을 받는다.

당시 손씨는 같은달 15일께 경찰에 검거돼 구금 상태로 반공법위반 혐의에 대한 조사를 받았는데, 손씨에 대한 구속영장은 같은달 24일에서야 발부돼 집행된 것으로 파악됐다.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진 손씨는 같은해 9월 1심에서 징역 10개월에 자격정지 10개월을 선고받았다. 손씨와 검사의 항소로 사건은 2심으로 넘어갔지만 2심은 손씨에 대해 징역 10개월에 자격정지 1년으로 형을 높였다. 이 판결은 이듬해 3월 상고기각으로 확정됐다.

이에 손씨는 40여년 만인 올해 5월 재심을 청구했고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9월 재심개시결정을 내렸다.

재심 재판부는 "손씨의 행위로 인해 국가의 존립·안전을 위태롭게 하거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해를 줄 명백한 위험이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손씨는 경찰에 검거된 1978년 6월15일부터 48시간 내로 긴급구속에 대한 사후 구속영장을 발부받지 못한 상태에서 구금돼 있었다"며 "구속영장이 발부된 같은달 24일까지 불법 구금됐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손씨가 수사기관에서 한 진술의 임의성을 의심할 사정이 존재한다"며 "손씨가 계속 구금된 상태에서 재판을 받은 점에 비춰 손씨의 법정진술 역시 임의성이 없는 심리상태가 해소되지 않은 채 이뤄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재심 재판부는 "나아가 당시 참고인들의 진술은 동네 사람들이 연속극을 보려고 TV 채널을 돌려보다 우연히 북한 방송이 나온 뒤 손씨가 공소사실 기재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는 내용에 불과하다"며 "원심 판결에는 사실을 오인하거나 구 반공법의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으므로, 손씨의 주장은 이유 있다"고 판단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gahye_k@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