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합 수사 계속, 재벌 규제 강화…'경제 검찰' 공정위 힘 더 세졌다

기사등록 2020/12/10 05:00:00

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안, 9일 국회 본회의 통과

공정위 권한 내주는 '전속고발제 폐지'는 무위로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 확대는 공정위 뜻대로

재계 반발 수용한 여, 공정위 칼날만 날카로워져

"대기업 경제력 남용 억제"…공정위, "환영" 입장

[서울=뉴시스] 김진아 기자 = 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공정거래법(독점 규제 및 공정 거래에 관한 법률) 전부 개정안에 대한 찬반 투표가 진행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0.12.09. photo@newsis.com

[세종=뉴시스] 김진욱 기자 = 공정 경제 3법의 핵심으로 꼽히는 공정거래법(독점 규제 및 공정 거래에 관한 법률) 전부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권한을 축소하는 '전속고발제(공정 거래 관련 사건은 공정거래위원회가 고발해야만 검찰이 수사할 수 있게 한 제도) 폐지'는 무산됐고, 재벌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은 그대로 담겼다. 결과적으로 '경제 검찰'로서 공정위의 칼날만 더 날카로워진 셈이다.

국회는 지난 9일 오후 본회의를 열어 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안을 처리했다. '전속고발제 폐지'는 무산됐지만,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 규제 대상을 늘리고, 지주사의 자회사 보유 지분율 요건을 높이는 등 재벌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공정위 계획은 그대로 반영됐다.

이런 내용의 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안은 재석 257표 중 찬성 142표를 받았다. 표결에 앞서 배진교 정의당 의원이 토론을 신청해 "전속고발제 폐지와 관련해 더불어민주당이 입장을 바꾼 이유가 무엇이냐"고 항의했지만, 여당 의원 다수의 지지를 받아 가결됐다. 반대는 71표, 기권은 44표였다.


[서울=뉴시스] 박민석 기자 =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8일 서울 중구 상공회의소빌딩에서 열린 공정 경제 3법 상임위원회 의결 관련 긴급 기자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대한상의 제공) 2020.12.08. photo@newsis.com
기업 담합 수사는 계속 공정위만…'재벌 돋보기'는 확대

전속고발제 폐지가 무산된 것은 재계의 반발 때문이다. 전속고발제가 사라지면 검찰은 공정위의 고발을 기다리지 않고 기업 수사·공소 제기를 할 수 있게 되는데, "공정위·검찰이 이중 수사하지 않겠느냐"며 재계는 크게 반발해왔다.

현재 담합을 자진 신고한 기업에 공정위는 '검찰 고발 면제권'을 주고 있는데, 전속고발제가 사라지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기업으로서는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는 압수 수색 등을 면제받을 길이 사라지는 셈이다. 자진 신고가 들어오지 않은 사건의 경우 공정위·검찰 간 분배 기준이 없어 양측이 경쟁적으로 조사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이와 관련해 공정위는 "검찰과 협의체를 구성했다. 걱정하는 이중 수사가 벌어지지 않도록 검찰과 긴밀히 소통하겠다"고 했지만, 재계의 우려를 불식시키지는 못했다.

동시에 재벌 규제 강화안은 공정위 뜻대로 됐다. 우선 '일감 몰아주기' 등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 규제 대상이 대폭 확대됐다. 공정위는 기존 '총수 일가 지분율 상장사 30%·비상장사 20% 이상'이었던 사익 편취 규제 기준을 '상장·비상장사 모두 20% 이상'과 '총수 일가 지분율이 20% 이상인 회사가 50% 초과 보유한 회사'로 확대했다.

이에 따르면 사익 편취 규제 대상 회사 수는 210곳에서 591곳으로 381곳이나 많아진다(5월1일 기준). 총수 일가 지분율 20~30% 구간에 있는 회사가 30곳, 현재 규제 대상 210곳의 자회사 및 새 규제 대상 30곳의 자회사가 각각 217곳·134곳이다. 삼성·현대자동차·SK 등 재계 1~3위 그룹에도 규제 대상에 새롭게 포함되는 계열사가 존재한다.

지주사 자회사 지분율 요건도 깐깐해졌다. 앞으로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는 대기업 집단은 상장 자회사·손자회사 주식을 30%, 비상장사는 50% 이상 보유해야 한다. 기준이 기존(20·40%) 대비 10%포인트(p)씩 높아졌다. 아직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지 않은 삼성·현대차 등은 자회사·손자회사 주식 매입에 전보다 더 많은 돈을 써야 한다.



등 떠밀려 "기업 수사권 내주겠다"던 공정위 '미소'

전속고발제 폐지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100대 국정 과제'에도 포함돼 있었다. "불공정 행위 독점 수사권을 가진 공정위가 솜방망이 처벌을 해 기업을 봐주고 있다"는 비판 여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당시 공정위는 "억울하다"며 볼멘소리를 내면서도 청와대와 여당의 강력한 추진 의지에 등을 떠밀려 '제 팔을 자르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에 착수했다.

이렇게 전속고발제 폐지를 담은 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안이 2018년 11월 제20대 국회에 제출됐지만, 문턱을 넘지 못해 올해 5월 국회 임기 만료와 함께 자동 폐기됐다. 공정위는 지난 8월 이 개정안을 토씨 하나 고치지 않은 채 제21대 국회에 다시 냈다. 그러나 여당이 전속고발제 유지로 입장을 선회하면서 공정위는 제 밥그릇을 지킬 수 있게 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조계 관계자는 "청와대 및 여당과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공정위는 그동안 '전속고발제는 폐지돼야 한다'며 정책 홍보를 해왔지만, 진심으로 기업 독점 수사권을 검찰에 내주고 싶었겠느냐"면서 "전속고발제 폐지 무산을 가장 반기는 곳 중 하나가 공정위일 것"이라고 했다.

공정위는 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직후 보도자료를 내고 "이번에 개정된 공정거래법에는 '법 위반을 억제하고, 규율의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내용'과 '기업의 부담을 덜어주고, 혁신을 지원하는 내용'이 균형 있게 반영돼 있다"면서 "대기업의 경제력 남용이 억제되고, 기업의 혁신 성장도 촉진될 것"이라며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안은 대통령 재가 등의 남은 절차를 거쳐 오는 2021년 1월1일 공포될 전망이다. 새 공정거래법은 '공익법인 의결권 제한' 등 일부 내용을 제외하고는 공포일로부터 1년이 지난 뒤부터 시행된다. 공정위는 시행령과 관련 고시 제·개정 등 후속 조처를 면밀히 준비하고, 법 집행과 현장 점검을 강화해 제도 안착에 힘쓰겠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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