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 방한 일정 시작하는 날 김여정 담화 발표
7월에도 카운터파트 논란 속 비공식 설전 사례
이날은 트럼프 행정부 임기 종료를 앞두고 한국을 찾은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가 공식 일정을 시작하는 날이라는 점에서 김 부부장이 담화를 전격적으로 발표한 배경에 이목이 쏠린다.
김 부부장이 담화를 낸 표면적인 이유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발언이다. 강 장관이 최근 중동 순방 중 북한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상 모순점을 지적하는 발언을 하자 김 부부장이 발끈한 것이다.
강 장관은 지난 5일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가 주최한 중동지역 안보 대화인 '마나마 대화'에서 "북한은 여전히 코로나19 확진자가 전혀 없다고 주장하지만 믿기 어렵다"며 "모든 신호는 북한 정권이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하는 질병을 통제하는 데 아주 강도 높게 집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좀 이상한 상황(a bit of an odd situation)"이라고 말했다.
강 장관은 또 "나는 코로나19 도전이 사실상 '북한을 보다 북한답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예를 들어 더 폐쇄적이 되고, 코로나19 대응에 관해선 거의 토론이 없는 하향식(톱다운) 결정 과정을 보인다"고 꼬집었다.
김 부부장은 담화에서 "앞뒤 계산도 없이 망언을 쏟는 것을 보면 얼어붙은 북남관계에 더더욱 스산한 냉기를 불어오고 싶어 몸살을 앓는 모양"이라며 "그 속심(속마음) 빤히 들여다보인다"고 말했다.
김 부부장은 그러면서 "정확히 들었으니 우리는 두고두고 기억할 것이고 아마도 정확히 계산돼야 할 것"이라며 대응을 예고했다.
강 장관과 김 부부장은 2018년 4월 남북정상회담 당시 남북 공식수행원에 포함된 유일한 여성으로 인사를 하고 대화도 나눈 사이다.
강 장관이 김 부부장의 역할에 의문을 제기한 적도 있다. 강 장관은 지난 10월 미국 대통령 선거 전 한국 정부가 김여정 부부장의 미국 방문 주선을 계획했다는 일본 요미우리신문의 보도를 부인하는 과정에서 김 부부장의 위상에 의문을 제기했었다.
하지만 김 부부장의 이날 담화는 강 장관 개인을 겨냥한 것이라기보다는 방한 중인 비건 부장관을 향한 것이라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임기 만료 전 고별 방문 중인 비건 부장관은 이날 오전 외교부 청사에서 최종건 제1차관과 한미 외교차관 회담을 갖는다. 그는 이날 오후에는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한미 북핵수석대표 협의를 할 계획도 갖고 있다.
이 같은 일정을 감안할 때 김 부부장이 한미 간 논의를 앞두고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해 담화 발표시점을 택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부부장과 비건 부장관은 지난 7월에 충돌한 바 있다.
그러자 김 부부장은 3일 뒤인 7월10일 담화를 통해 "우리는 결코 비핵화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하지 못한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며 "조선 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자면 우리의 행동과 병행해 타방의 많은 변화 즉 불가역적인 중대조치들이 동시에 취해져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상기시킨다"고 향후 비핵화 협상 방침까지 밝혔다. 이를 통해 김 부부장은 대외 정책을 총괄하는 위치에 올랐음을 과시했었다.
이처럼 김 부부장이 비건 부장관 방한에 맞춰 담화를 낸 가운데 오는 11일까지 이어지는 방한을 계기로 그간 꽉 막혔던 북미 간 대화에 영향이 있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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