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 K팝으로 한국어 배우기 열풍 중심
달라진 한국어 위상…늘어난 K 피처링
방탄소년단이 지난달 20일 발매한 새 앨범 'BE(Deluxe Edition)'의 타이틀곡 '라이프 고스 온(Life Goes On)'이 오는 5일 자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핫100'에 1위로 데뷔했다.
62년 역사의 해당 차트에서 한글 가사 위주의 노래가 1위를 기록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자연스레 '한국어'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한글은 우리 민족이 쓰는 언어를 표기하는 문자, 한국어는 우리 민족이 쓰는 언어를 가리킨다.
방탄소년단의 핫100 1위는 이번이 세 번째다. 앞서 방탄소년단은 지난 8월 첫 영어 싱글 '다이너마이트', 지난달 조시 685, 제이슨 데룰로의 '새비지 러브(Savage Love)' 리믹스 피처링으로 '핫 100'에서 두 번째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다이너마이트'는 영어 노래였고, '새비지 러브'에는 한국어 노랫말이 포함됐지만, 본인들의 곡이 아니었다. 한글 가사가 포함된 곡이 '핫100' 1위를 차지한 건 '새비지 러브'가 처음이다.
여기에 일부 후렴을 제외한 대부분이 한국어 노래인 '라이프 고스 온'으로 '핫100' 1위를 차지하면 또 새로운 기록을 추가하게 됐다.
방탄소년단, K팝으로 한국어 배우기 열풍 중심
앞서도 방탄소년단의 한국어 노랫말이 포함된 곡들은 앞서 차트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최근 미국 가수 맥스가 공개한 새 정규 앨범 '컬러 비전'의 타이틀곡 '블루베리 아이즈'에 슈가가 한국어 랩으로 피처링을 해 큰 주목을 받았다. 이 곡은 공개 직후 61개국 아이튠즈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최근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는 K팝을 중심으로 소셜미디어를 통해 한글과 한국어를 공부하는 이들이 점차 늘고 있다. 유튜브,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이다.
유튜브에는 한국어 노랫말이 흘러나오는 K팝 뮤직비디오 각국 자막을 달아 놓은 영상이 수두룩하다. 트위터에는 '감자밭할매' 등 그룹 '방탄소년단'(BTS)을 중심으로 한 K팝 번역 계정이 인기다.
주로 K팝 아이돌이 자신들의 콘텐츠를 올리는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V앱도 주요 공부 수단이다.
2018년 한글날 기준 인스타그램에서 해시태그 '#한국어공부'가 붙은 게시물이 13만3000여개였는데 올해 한글날을 전후로 해서 게시물이 3배 이상 늘었다.
K팝으로 한국어 배우기 열풍 중심에는 방탄소년단이 있다. 빌보드 차트를 장악한 방탄소년단으로 인해 한국어와 나아가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레 늘고 있다. 강력한 팬덤을 기반으로 점차 팬층을 넓혀가는 방탄소년단은 어느새 하위문화가 아닌, 주류 문화가 됐고 한국문화와 한국어 역시 젊은층에게 세련되며 필수적인 요소가 됐다.
최근 방탄소년단이 미국 NBC '더 투나잇 쇼 스타링 지미 팰런 쇼'가 마련한 'BTS 위크' 무대의 하나로 경복궁 경회루와 근정전에서 '러브 유어셀프 결 앤서'의 타이틀곡 '아이돌'을 열창하자 이 고궁들은 단숨에 핫플레이스가 됐다.
이런 방탄소년단 덕에 K팝이 '음악적 모국어'가 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팬덤 '아미(ARMY)'가 문화언어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위로와 희망을 주는 방탄소년단의 노래로 공통된 정체성을 형성한 아미들이 같은 언어를 사용하게 됐다는 이야기다. 한국어 노래인 '라이프 고스 온'이 이번에 '핫100' 1위를 차지한 배경이기도 하다.
이미 아미를 주축으로 한 K팝 팬들 사이에서는 '아민정음'(아미+훈민정음)이 유행했다. 한글은 자음과 모음을 조합, 모든 소리를 적을 수 있는 '음소문자'로 통한다.
이에 따라 한국에서 통용되는 뉘앙스를 모두 살려 외국어로 번역하기 어려운 경우에 'yeonseupseng'(연습생)처럼 영어 알파벳을 빌려 한국어 발음을 옮겨 적기도 한다. 이것이 아민정음이다. 이런 K팝 아이돌 문화의 용어를 담은 '케이팝 딕션너리(K pop dictionary)'가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모두 뛰어"를 "Mo-du Twi-uh"로 적고 '에브리바디 점프(everybody jump)'로, "소리-질러"를 "So-ri Jil-luh"로 적고 '메이크 섬 노이즈(make some noise)'로 해석하는 식이다. 이 영상에서 슈가는 평소 한국 사람들이 쓰는 사투리인 "밥 문나?"(Bap Moon-Na?·Have you eaten?)를 가르쳐주기도 했다.
방탄소년단과 K팝의 인기에 힘 입어 방탄소년단 소속사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외국인이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한국어 교재 '런! 코리안 위드(Learn! KOREAN with) BTS'를 내놓기도 했다. 미국, 프랑스 등 해외 상당수 대학들이 한국어 교재로 채택했다.
달라진 한국어 위상…늘어난 K 피처링
세계 대중음악 신에서 한국어의 달라진 위상은 방탄소년단 외에도 다른 K팝 가수들을 통해서도 확인 가능하다. 간판 걸그룹으로 부상한 그룹 '블랙핑크'도 이 흐름에 합류했다. 지난 5월 세계적 팝스타 레이디 가가가 발표한 '사워 캔디(Sour Candy)'에 블랙핑크가 피처링을 했는데 노랫말에 한국어도 포함됐다. "뜻밖의 표정 하나에 넌 당황하겠지 / 비싼 척이란 말들로 / 날 포장한 건 너야 너야" 등이다.
원곡의 리믹스 버전에 한국어 피처링을 하는 경우도 눈에 띈다. 원곡을 새롭게 환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피처링한 K팝 가수의 팬덤의 지지를 업고, 곡에 대한 인지도를 끌어올릴 수 있는 협업으로 업계는 평가한다.
차세대 K팝 그룹으로 떠오르고 있는 '세븐틴' 멤버 조슈아와 도겸은 미국 싱어송라이터 핑크 스웨츠(Pink Sweat$)가 발매한 '17' 리믹스 버전에 한국어 피처링으로 힘을 실었다. 조슈아와 도겸의 청량한 보컬이 원곡과 다른 청량한 분위기를 선사했다.
감성적인 멜로디의 미국 일렉트로닉 팝 듀오 '엑스러버스(X Lovers)'가 최근 발매한 '러브' 리믹스에는 JYP엔터테인먼트의 밴드 '데이식스' 영케이가 협업했다.
그간 한국어는 각지고, 딱딱한 어감으로 인해 세계인이 함께 부르는 노래 가사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박한 평도 일부 있었다. 하지만 애플뮤직 광고에 등장할 정도로 세계 음악 신에서 핫한 존재로 떠오는 DJ 겸 EDM 뮤지션 예지의 노래를 들어보면 이런 편견은 금세 깨진다.
한국계 미국인인 예지는 미국 뉴욕 퀸스에서 출생했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자랐다. 힙합 바이브와 아방가르드 팝을 절묘하게 블렌딩한 신선한 사운드와 함께 속삭이듯 읊조리며 주술처럼 전해지는 한국어와 영어의 래핑이 주목받는 이유다. 세계 음악신과 팬들은 EDM 사운드에 섞인 한국어 발음을 신비롭게 듣는다.
예지는 작년 뉴시스와 서면 인터뷰에서 한국어에 대해 "각이 져 있고 질감이 있는 느낌이 들고, 또한 발음이 시를 읊는 것 같다. 한국어를 말할 때는 마치 노래하는 듯한 느낌이 들다보니 사용하게 된다"고 말했다.
팝스타들도 한국어에 대해 호의적이다. 방탄소년단의 대표곡 중 하나인 '아이돌'에 피처링으로 참여한 팝스타 니키 미나즈는 뮤직비디오에 자신의 영어 랩을 한글로 표기했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제안하기도 했다.
이전까지 K팝은 마니아적인 문화였다. 하지만 세계 대중음악계 중심이 된 방탄소년단을 중심으로, 이제 해외의 젊은 세대에게 쿨하고 힙하며 젊은 감수성을 대변하는 '힙한 문화'로 자리매김했다.
해외 진출을 준비 중인 아이돌 소속사 관계자는 "K팝이 중심이 된 한류에 힘 입어 한국문화가 우대를 받게 됐다"면서 "한국어로 부르는 K팝에 대한 관심도 당연히 늘고, 위상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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