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폴란드 "EU 장기 예산안 승인 못 해"…EU 정상도 설득 실패

기사등록 2020/11/20 10:14:20

헝가리 "난민 수용 압박"…거짓 이유로 어깃장

伊·스페인, 코로나19 재확산에 지원금 시급

프랑스 "EU 가치 거부하는 국가, 배제하자"

EU 의장국 독일 "내주 타협점 찾겠다" 재설득

[브뤼셀=AP/뉴시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16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경제회복기금과 EU 장기 예산안은 헝가리와 폴란드의 어깃장에 발목이 잡힌 상태다. 2020.11.20.

[서울=뉴시스] 양소리 기자 = 헝가리와 폴란드의 어깃장에 유럽연합(EU)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경제회복기금과 EU 장기 예산안 승인이 발목을 잡혔다.

AP통신, 가디언 등에 따르면 EU 27개 회원국 정상들은 19일(현지시간) 화상회의를 열고 예산안 문제를 20분여 동안 논의했으나 헝가리와 폴란드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이유는 EU가 예산과 기금 지원을 빌미로 자국의 정치에 너무 많은 관여를 한다는 것.

EU는 회원국 만장일치 동의를 통해 예산안을 승인하기 때문에 이 두 나라가 허락하기 전까지는 예산안 문제를 진전시킬 수가 없다.

독일, 프랑스 등에서는 헝가리와 폴란드를 EU에서 퇴출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헝가리 총리  "EU 예산 받으려면 난민 수용하라고?"…NO!

[브뤼셀=AP/뉴시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가 지난 10월 15일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벨기에 브뤼셀의 EU 본부에 도착한 모습. 그는 EU가 예산안 승인을 조건으로 자국의 정치에 과도한 관여를 한다며 어깃장을 놓고 있다. 2020.11.20.


"EU의 예산안 조건을 수용하면 헝가리는 유럽 난민을 분산 수용해야 한다" "EU는 난민 수용을 거부하는 국가를 협박하기 위해 재정적인 수단을 동원할 것이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지난 18일 자국 국영통신사 MTI를 통해 헝가리가 EU의 예산안을 거부하는 이유에 대해 이같이 주장했다.

그러나 오르반 총리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EU의 2021∼2027년 예산안과 코로나19 회복 기금에는 이주민에 대한 구체적인 조항이 포함돼 있지 않다.

EU가 조건으로 내건 것은 회원국의 '법치주의 존중'이다.

헝가리는 법원, 언론, 비정부기구(NGO)의 독립성을 훼손으로 여러 차례 EU의 경고를 받았다.

오르반 총리는 2010년 총선 승리 후 1년 만에 개헌을 통해 입법·사법부를 장악해 일당 지배 체제를 만들었다. 정부를 비판하는 언론인은 해고해 여론을 장악했고, 진보적인 매체는 운영 허가 연장을 중단하는 방식으로 폐업 위기에 몰았다.

폴란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은 집권 법과정의당(PiS)을 통해 우경화 정책을 강화하는 중이다. 그는 사법부를 장악하고, 동성애 혐오 정책을 통해 내부 결집을 꾀했다.

이에 제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 등은 "유럽의 자금 분배와 회원국의 법치 수준을 연계시키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며 이같은 헝가리와 폴란드를 압박했다. EU의 기금 지원을 받고 싶다면 EU가 추구해온 보편적 인권 및 법치의 가치를 지켜야 한다는 뜻이다.

"코로나19 지원금 시급한데"…발 구르는 이탈리아·스페인
[바르셀로나=AP/뉴시스]12일(현지시간) 스페인 바르셀로나 거리에서 한 행인이 걸인에게 적선하고 있다. 스페인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수는 148만4868명, 사망자는 4만461명이다. 202011.13.


헝가리와 폴란드의 반발에 마음이 급해진 건 스페인, 이탈리아 등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피해가 심각한 국가들이다.

EU 27개 회원국 정상들은 지난 7월 코로나19로 야기된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7500억 유로(약 991조원) 규모의 경제회복기금에 합의했다. 여기에 올해는 2021∼2027년에 해당하는 EU 장기 예산안 1조740억 유로(약 1420조원)의 분배까지 승인을 마쳐야 한다.

코로나19의 재확산으로 한시가 바쁜 이탈리아는 조속한 EU의 자금 지원을 재촉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지난 협상을 통해 전체 기금의 28%인 2090억유로(약 285조원)를 할당받았다. EU 회원국 중 가장 많은 기금을 획득한 국가다.

스페인의 나디아 칼비노 경제장관도 "헝가리와 폴란드의 반대를 극복할 해법을 조속히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그는 자국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스페인 정부는 EU의 자금 지출이 지연된다면 이를 충당하기 위해 시장 차입을 시도할 것"이라며 다급한 사정을 전했다.

그러면서 "내년에 모든 투자계획을 충당할 수 있도록 채무를 발행하겠다. 우리는 EU 자금 도착 속도에 맞춰 일정을 조절해야 한다"고 말했다.

프랑스 "반대국가는 놓고 간다"·독일 매체 "EU서 퇴출하라"

프랑스와 독일에서는 폴란드와 헝가리에 대한 처벌 수위의 발언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프랑스는 EU 나머지 회원국들이 두 나라의 동의 없이 경제회복기금을 추진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프랑스의 클레망 본 유럽담당 장관은 "난국을 해결하기 위해 '실용적 해결책'을 연구하고 있다"면서도 "최후의 수단으로서 걸림돌이 되는 국가 없이 진행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18일 자국 상원의원에 말했다.

그는 "물론 EU 지도부는 (EU의) 법을 준수할 것을 강조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가치와 유럽의 과업이 위태로운 상황이다. 이를 문제 삼을 상황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는 "유럽은 진보를 거부하고, 우리의 정치적 뜻을 존중하지 않는 일부의 정부에 인질로 잡혀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지난 17일 독일 공영 도이체벨레(DW)는 더욱 강경한 입장을 내비쳤다. 바로 폴란드와 헝가리를 EU에서 쫓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DW는 '헝가리와 폴란드가 손을 잡고 있는데 적군이 필요한가'라는 제하의 사설을 통해 "심각한 코로나19 확산 상황에서 헝가리와 폴란드가 유럽 전체를 인질로 삼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말만으로는 법치주의를 강요할 수 없다"며 "EU는 회원국 퇴출과 관련해 구체적인 조항을 새롭게 검토하고 작성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상대적으로 예산이 넉넉한 네덜란드 등은 헝가리와 폴란드에 굽혀서는 안 된다며 "법치주의 연계 조건 없이는 우리도 예산안을 승인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EU 의장국 독일 "24일까지 타협점 찾겠다"
[베를린=AP/뉴시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19일(현지시간) 베를린에서 유럽연합(EU) 정상 화상회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올해 하반기 EU 순회 의장국을 맡은 독일은 EU 예산안을 놓고 마지막까지 타협점을 찾아보겠다는 입장이다. 2020.11.20.


올해 하반기 EU 순회 의장국을 맡은 독일은 마지막까지 타협점을 찾아보겠다며 회원국을 설득하고 나섰다. 현재 독일이 내세운 협상 시한은 다음 주 화요일인 24일이다.

토마스 페트리체크 체코 외무장관 역시 "독일은 연말 이전 EU 예산안 교착 상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힘을 실었다.

이반 코르코크 슬로바키아 외무장관은 "지금의 교착상태는 그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한다"며 "아직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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