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박상원이 허허실실 보여주는 일상의 소중함...'콘트라바쓰'

기사등록 2020/11/14 06:05:00

데뷔 41년 만에 첫 모노극

29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서울=뉴시스] 박상원 모노드라마 '콘트라바쓰'. 2020.11.14. (사진 = 박앤남공연제작소,H&H PLAY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마스크를 쓰고 계시니, 얼굴 표정이 안 보여서…." "반응을 하지 않으셔서…."

헝클어진 머리, 성의 없이 기른 얼굴 수염, 대충 칭칭 동여맨 머플러…. 무대 위를 바라보면서, 거듭 눈을 비볐다. 기존에 알고 있는 반듯한 신사 배우 박상원(61·서울예대 공연학부 연기과 교수)이 맞나 싶어서. 

모노드라마 '콘트라바쓰'에서 박상원은 자주 객석에 말을 걸었다. 데뷔 41년 만에 처음 출연하는 1인극이다. '상대 연기자들을 통해 에너지와 힘을 얻는다'는 그가 외로워 보였다.

가만히 살펴보니, 외롭기는커녕 즐기고 있었다. 세계적인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희곡 '콘트라바스'가 원작. 1981년 독일 뮌헨의 퀴빌리에 극장에서 초연한 작품으로, 스스로 가둔 자신만의 공간에서 매일 투쟁하는 콘트라바스 연주자의 이야기다.

거대한 오케스트라 안에서 주목 받지 못하는 콘트라바스 연주자의 삶을 통해 소외 받는 이들의 자화상을 그린다. 진한 연민을 예상했는데, 남다른 어감과 리듬을 부여한 박상원 식 병법에 혀를 내둘렀다.

[서울=뉴시스] 박상원 모노드라마 '콘트라바쓰'. 2020.11.14. (사진 = 박앤남공연제작소,H&H PLAY  제공) photo@newsis.com
허한 곳은 실한 듯, 실한 곳은 허했다. 콘트라바스는 태초의 악기이며 모든 악기의 기초를 잡아준다고 자긍심을 드러날 때 비움의 페이소스가 느껴졌고, 좋아하는 소프라노 '사라'가 자신의 존재를 모른다고 망연자실 할 때 감정이 꽉 찼다. '박상원 허허실실(虛虛實實)'이라고 부르고 싶기까지 하다.

그래서 연기는 더 매서웠다. 여유와 박자감에서 내공이 느껴졌다. 사실 그에게는 비장의 무기가 있다. 여백을 채우는 몸짓과 춤이다. '콘트라바쓰'에 삶, 음악뿐만 아니라 힘겨운 인생과 부딪히는 육체도 존재한다는 걸 박상원 때문에 알았다. '대한민국 1호 남자 현대무용수'다웠다.
 
무엇보다 관객 감정의 봉우리를 점령하기 위해 거침없이 돌진하는 것이 아닌, 산책하듯 관객 감정의 요철을 요리저리 피하며 어그러지고 상처 받은 객석의 마음을 살피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서울=뉴시스] 박상원 모노드라마 '콘트라바쓰'. 2020.11.14. (사진 = 박앤남공연제작소,H&H PLAY  제공) photo@newsis.com
세상의 힘센 연기는 자신이 아닌 배우를 돌아보게 해주는 때가 있다. 박상원의 연기는 자신을 확신하기 위해서가 아닌 캐릭터와 작품에 대한 확신을 주는 담백한 문장이다. 거기에 객석의 인생이 있다.

우리의 삶에서 자존심과 열등감은 늘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걸 박상원의 '콘트라바쓰'는 보여준다. 그 안에 숨어 있는 것은 우리의 소소한 일상이라고 귀띔해준다. 일상의 소중함을 새삼 일깨워 준 코로나19 시대에 찾아온 '콘트라바쓰'가 소중한 이유다.

막바지에 주인공은 오페라 극장에서 연주 도중, 소프라노 사라를 절규하듯이 외칠 거라고 예고한다. 자신을 믿는다면, 다음날 조간신문에서 관련 기사를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관련 기사는 읽지 못할 것이라는데, 귀중한 연주회 표를 건다. 세상은 꼭 기적이 없어도 계속되니까. 극에서도 마지막에 흐르는, 청명한 슈베르트 피아노 5중주 송어 1악장처럼. 이 곡은 피아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그리고 콘트라바스로 이뤄진 편성이다. 콘트라바스도 우리도 언젠가는 찾아오는 삶의 상쾌한 때에 필요한 존재다. 오는 29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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