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년 고졸 말단 사원 '이자영' 역할
이솜·박혜수와 회사내 비리 파헤쳐
"신념과 가치관에 부합하는 걸 하고 싶어"
배우 고아성이 오지랖 넓은 90년대 고졸 말단 사원으로 돌아왔다. 오는 21일 개봉하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서 커피 타기 달인인 생산관리3부 '이자영' 역을 연기했다.
14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고아성은 "개봉을 앞두고 긴장되지만 다른 때보다 기쁜 마음이 있다"며 "자부심도 있고 제가 봐도 재미있다. 정서적으로 많은 분께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1995년 입사 8년차, 업무능력은 베테랑이지만 고졸이라 늘 말단으로 회사 토익반을 같이 듣는 세 친구가 힘을 합쳐 회사가 저지른 비리를 파헤치는 이야기를 담았다.토익 600점을 넘으면 대리로 승진해 진짜 '일'을 할 수 있다는 희망도 잠시, 회사의 폐수 무단방류 현장을 본 후 사건을 파헤친다.
고아성은 "시나리오만 보고 영화를 하게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완성본을 보니 결과물이 더 풍성해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고아성은 이솜, 박혜수와 입사 동기로 호흡을 맞췄다. 세명은 유쾌한 에너지와 끈끈한 우정을 발산한다.
고아성은 "가장 중요한 건 세 인물의 합이었다"며 "'자영'이 비리를 목격하고 추진하지만, 함께하는 친구들이 있어 가능한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배우들의 합은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셋이 처음 모였을 때 한 30분 만에 알았어요. '되겠다' 싶었죠. 세 배우가 스타일이나 연기, 성격 다 다르지만 바라보는 방향은 같았어요. 다들 열려있는 사람들이라 좋은 예감이 들었죠. 감독님도 여배우 셋과의 작업이 쉽진 않았을 텐데 잘 이끌어주셨어요."
고아성은 "솜 언니는 나이로 보나 키로 보나 대장이었다. 저희를 잘 이끌어줬다"고 웃으며 "혜수는 막내이지만, 내면이 단단한 친구였다. 연기도 잘하고, 겸손하면서 자기중심이 잘 잡혀 있어서 개인적으로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시대 배경인 1995년은 고아성이 네 살 때다. 영화 속 사내 건강 체조를 하는 모습부터 여직원들이 커피를 타는 모습까지 그에겐 놀랍고 새로운 풍경이다.
"영화를 준비하면서 90년대에 커피를 어떻게 마시고 탔나 살펴봤죠. 그런데 IMF 이후 믹스 커피가 급증했다는 얘길 들었어요. IMF 때 커피를 타주던 여직원들이 해고되면서 믹스 커피가 급증했다는 거죠. 이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갔을까 가슴이 좀 아팠어요."
고아성은 지난 2018년 출연한 드라마 '라이프 온 마스'에서 80년대 순경 역도 맡았었다. 그는 "80년대와 90년대 말투 차이를 열심히 찾아봤다"며 "명백히 다르더라"라고 말했다.
"80년대는 수줍음이 많고 나긋한 캐릭터였다면, 90년대는 새바람이 불면서 일하는 여성도 많아지고 진취적이고 당당해진 말투가 있어요. 그 점을 많이 살리려 했죠. 영어도 '자영'이가 잘하진 못하지만 당당하게 하고 싶었던 걸 강조했어요."
극 중 '이자영'의 스타일은 90년대 느낌을 살리되 튀지 않게 표현했다. 고아성은 "'자영' 캐릭터는 스토리에 힘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90년대의 특징들이 스토리 전개에 방해될 수 있어 일부러 뺀 편"이라고 밝혔다.
이번 캐릭터를 통해 오지랖이 넓어졌다. "저는 내성적이었고 현장에서 여유가 없는 편인데, 이번 역할을 하면서 스스로 에너지를 끌어올리고 성격을 많이 바꾸려 했어요. 사람들에게 말도 더 많이 걸게 됐죠. 한번 시작하니까 사람들이 궁금해지더라고요. 주변에서도 제가 외향적으로 변했다고들 해요."
아역부터 시작해 성인 연기자로 넘어오는 시점에 계기가 된 작품은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2013)를 꼽았다.
"당시 공백이 좀 있었고 오랜만에 나오는 영화였죠. 연기하는 게 좋았지만 지금처럼 확신이 있진 않았던 것 같아요. 그 작품을 계기로 제가 사랑하는 일이 연기고 잘 연마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죠."
배우로서 지금 만족하냐는 물음엔 "일단 마음먹었는데 적성에도 잘 맞는 것 같다"고 답했다. "좋아하는 일이니 사람들이 재밌게 봤다고 하면 뿌듯하고 행복했다가, 재미없다고 하면 속상하죠. 앞으로도 이 굴레를 돌며 살지 않을까요."
현재는 자신이 존경할 수 있는 사람들을 연기하고 싶어한다고 했다. 이번 영화를 하면서도 스스로 이런 역할을 할 만큼 정의로운 사람일까 고민했고, 조금이라도 실천하는 사람이 되고자 생각했다고 밝혔다.
"신념과 가치관에 부합하는 걸 하고 싶고, 제가 가진 마음이 영화나 캐릭터에 잘 우러났으면 하죠. 20대 후반인 지금은 저 자신을 더 잘 알게 되는 시기인 것 같아요. 제가 되고 싶은 캐릭터에 끌린다는 걸 깨달았죠. 이타적인 사람이 되고 싶고, '자영'을 하면서 생긴 오지랖을 조금 더 유지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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