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국어원서 수어 정책·연구 주무관
"농인들, 한국수어 모국어로 사용"
"한국수화언어법 개정 법률안 발의됐지만
갈길은 멀어...정작 농인들 배제 반복"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한글과 한국어를 조명하는 '한글날'에 소외되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있다. 한국어가 아닌 한국수어를 모국어로 쓰고 있는 농인(언어·청각장애인)들이다.
'한국수어'는 '한국수화언어'의 준말이다. 한국어, 영어, 일본어처럼 독립된 언어다. 한국인의 대다수가 한국수어를 모르는 것처럼, 농인들이 모두 한국어에 익숙한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공식 언어는 한국어와 한국수어가 있다)
"농인이 다른 장애와 달리 겉으로 보기에 청인과 차이가 없어 힘들지 않을 거라고 생각도 하시지만, 언어의 단절은 소통에 큰 문제가 생긴다"
한글날을 앞두고 서울 강서구 국립국어원에서 만난 이현화 주무관은 "농인들이 한국어로 읽고 쓰는 능력이 청인들과 동일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가장 큰 오해"라고 말했다. 농인에게 한국어는 외국어 같은 의미다.
이 주무관은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 특수언어진흥과에서 수어 정책·연구를 담당하고 있다.
지난 2016년 '한국수화언어법'이 시행했다. 특히 올해 3월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제101주년 3·1절 기념식'은 농인들이 기억할 만한 날이다. 독립선언서 낭독에서 처음으로 수어가 포함됐기 때문이다. 이 주무관이 직접 담당했다. 우리말, 영어, 일본어, 중국어, 러시아어와 함께 했다.
이 주무관은 "광복이라는 것이 청인들만의 역사가 아니죠. 거기에는 농인들도 당연히 포함돼 있다"면서 "부정하지 않더라도 이름조차 불리지 않으면 그 존재는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에는 국회에서 한국수화언어법 개정 법률안이 발의됐다. 한국수화언어법이 제정된 2월3일을 한국수어의 날로 지정하는 등의 내용이 골자다. 코로나19 시국과 맞물려 농인을 위해 음성정보를 전달하는 '수어통역사'가 주목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법안 통과를 비롯 여전히 갈길은 멀다. 특히 제도, 보여지는 것을 중심으로 진행되다보니 정작 농인들은 배제되는 일이 여전히 반복된다.
예컨대 수어통역에서도 통역을 전달받는 농인들은 보이지 않는다.
당연히 수어통역사의 존재와 수고는 인정해야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피해를 받는 농인들은 삶은 돌아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비대면이 강조되다보니 수어통역사 배치가 힘들어 실생활이 마비되는 농인들도 있다.
이 주무관은 "통역사분들의 수고를 인정해주는 동시에 수어가 진짜 누구의 것인지도 들여다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주무관은 코다(CODA·Children of Deaf Adult)다. 코다는 '농인 부모의 청인 자녀'를 가리킨다.
영화감독 겸 작가 이길보라, 장애인 인권활동가인 황지성 씨와 함께 코다들 의 정체성을 알린 책 '우리는 코다입니다'를 펴내기도 한 이 주무관은 수어를 언어학으로 분석하는 박사 논문도 준비중이다. 그는 "농인과 소통에 적극적이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로 다양성"을 꼽았다.
"뭐든지 다양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거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농인을 접하지 못해본 사람은 다양함을 접할 기회를 놓친 것일 수 있죠. 사람은 기본적으로 선하고자 한다는 걸 믿어요. 그렇기 때문에 농인을 접할 기회가 늘어난다면 많은 오해가 사라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 주무관은 "'내가 도와준다'는 시혜적인 시선으로 농인에게 접근하기 보다 있는 모습으로 그들을 받아들여 함께 한다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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