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 M&A 무산...금호-현산, 매각 추진부터 결렬까지

기사등록 2020/09/11 17:55:53

코로나 암초...아시나아 매각 결국 무산

금호산업·현산, 책임 떠넘기기 공방

현산 재실사 고수...결국 노딜 수순

[서울=뉴시스] 전진환 기자 = 정몽규 HDC 회장이 12일 오후 서울 용산구 HDC현대산업개발 본사 대회의실에서 아시아나항공 인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9.11.12.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신효령 기자 = HDC현대산업개발(현산)의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이 '노딜'(No deal·인수 무산)로 11일 귀결됐다.

최대현 산업은행 기업금융부문 부행장은 이날 온라인 기자회견에서 "금호산업이 현대산업개발에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며 "아시아나항공에 기간산업안정기금 2조400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현산이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되며 시작된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M&A) 여정은 약 10개월 만에 마침표를 찍게 됐다. 계약 체결부터 인수 무산까지 지난 일을 돌아봤다.

아시아나항공 매각 입찰에 뛰어든 현산은 2조5000억원을 써내 지난해 11월 우선협상대상자가 됐고, 항공업계 M&A 시장의 '빅딜'로 꼽혔다. HDC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은 지난해 12월 27일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위한 주식매매계약(SPA) 체결을 완료했다.

정몽규 HDC그룹 회장은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한 뒤 현산을 글로벌 모빌리티 그룹으로 도약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이날 현산은 올해 4월까지 국내외의 기업결합 신고 등 모든 인수 절차를 차질없이 마무리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계약 당시만 해도 아시아나항공의 인수작업이 차질없이 마무리될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항공업계가 직격탄을 맞으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아시아나항공 매각에 이상기류가 감지된 것은 4월이다. 현산은 아시아나 항공 주식 취득 예정일 하루 전인 4월 29일 인수 일정을 무기한 연기한다고 밝혔다. 러시아로부터 기업결합심사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 표면적 이유였지만, 일각에서는 계약 파기를 위한 명분 쌓기에 돌입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현산은 6월 9일 아시아나 채권단에 '인수를 원점에서 재검토하자'고 요구하면서 또다시 달라진 태도를 보였다. 채권단은 협상 테이블로 직접 나오라며 압박의 수위를 높였고, 이 때부터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공방이 거세졌다. 현산은 코로나 여파로 아시아나 재무상황이 악화된 것을 강조하면서 7월 24일 아시아나항공과 계열사에 대한 12주간의 재실사를 요구했다. 금호산업과 채권단은 이미 충분한 실사가 이뤄졌다며 재실사를 거부하고, 현산의 아시아나 인수 의지에 의문을 표했다.
[서울=뉴시스] 이동걸 산업은행장(왼쪽), 정몽규 HDC그룹 회장 (사진=뉴시스 DB) 2020.09.11. photo@newsis.com
금호산업은 '8월12일 이후에는 계약 해제와 위약금 몰취가 가능하다'는 공문을 7월 29일 내용증명으로 발송했으며, 현산이 거래종결을 회피하면서 그 책임을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에 전가하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산업은행도 8월 3일 브리핑을 통해 현산이 인수에 진정성을 보이지 않으면 8월 12일부터 금호산업이 계약해지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밝혔다.

금호산업은 8월 7일 현산에 대면협상을 먼저 제안했다. 이틀 뒤 현산은 "아시아나항공 인수 재점검에 대한 당위성과 필요성을 전제로 대면협상을 하자"며 조건부 수락했다. 8월 20일 서재환 금호산업 대표와 권순호 현산 대표는 서울 시내 모처에서 만났으나, 서로의 입장 차만 확인하고 결론을 내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산업은행은 최고 경영진간 면담을 현산 측에 제안했고, 이후 정몽규 HDC그룹 회장이 수락했다.

이동걸 산은 회장과 정 회장은 두 차례 회동을 가졌으나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지지 못했다. 지난달 26일 마지막 회동에서 두 수장이 극적 타협점을 찾을지 주목받았고, 이날 이 회장은 현산의 인수 부담을 덜어주는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이 회동 결과를 밝히지 않았으나, 시장에서는 이 회장이 인수 가격을 최대 1조원을 깎아주는 방안을 제안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산은이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논의하겠다고 밝히면서 꺼져가던 M&A(인수·합병) 불씨가 되살아났지만, 현산이 일주일 만에 내놓은 답변은 12주간의 재실사 요구였다. 채권단의 최후 통첩에도 현산이 재실사를 재차 요구하자 금호산업과 채권단은 아시아나 인수 의지가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 평행선을 달린 채 결국 '노딜'로 끝났고 모든 주체들은 후폭풍을 맞게 됐다.

금호그룹은 주식 매각 대금 3200억원을 받지 못하게 되면서 그룹 재건을 하려던 계획에 차질을 빚게 됐다. 현산도 경영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졌으며, 2500억원에 달하는 이행보증금을 날릴 위기에 처했다.

이동걸 산은 회장은 지난달 3일 기자회견에서 "현대산업개발에서 계약금반환 청구 소송은 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 본인들 책임은 본인이 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행보증금을 둘러싼 소송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중론이다.

이 과정에서 기업의 대외 신인도나 이미지가 추락할 여지가 있으며, 소송이 장기화될 수 밖에 없는 만큼 유무형의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회사 경영진의 판단을 놓고 그룹 내부에서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도 있다. 산업은행 역시 아시아나항공의 주채권은행으로서 이번 사건의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아시아나항공은 6년 만에 다시 채권단 관리체제로 들어가게 됐다. 아시아나항공은 그룹의 유동성 위기로 2010년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체결했으며, 경영정상화에 나선 뒤 2014년 12월 자율협약을 졸업한 바 있다. 제주항공이 지난 7월 23일 이스타항공 인수 포기를 선언한 데 이어, 아시아나항공의 M&A도 사실상 무산되면서 항공업계의 구조개편은 불가피해졌다. 
정부는 우선 아시아나항공에 2조4000억원의 기간산업안정기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새로운 인수 희망자가 나타나기 전까지 채권단 관리 체제에 들어갈 전망이다. 채권단은 기간산업안정기금 투입으로 일단 급한 불을 끄고, 구조조정에 이어 재매각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아시아나항공의 부채 규모가 늘어난 원인부터 분석하고, 대대적인 재무구조 개선을 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과 교수는 "아시아나항공의 재무구조가 부실해진 것은 코로나가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었다"며 "왜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를 돌아보면 한 두가지 요인이 아닐 것이다. 그 원인을 규명해내는 작업부터 채권단이 해야 한다. 철저한 경영진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신뢰성 제고를 위해 국내 업체보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에 의뢰해서 정확한 진단을 받는 것이 좋겠다"며 "채권단이 그냥 부실기업을 떠안는 것이면 답이 없다. 진단이 정확해야 해법이 나온다. 그러고나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능한 전문경영인이 선임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채권단이 아시아나의 경영 정상화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라며 "채권단 관리체제에 놓이게 됐을 때 방만 경영이라는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 선례가 있다. 채권단이 방만 경영을 막을 근본적 대책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이 상태로 아시아나항공이 매물로 나오면 M&A가 불발될 수 있다"며 "아시아나항공의 고질적인 문제를 파악하고 구조조정, 비용 절감 등을 통한 체질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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