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상상,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출판
[서울=뉴시스] 임종명 기자 = "국정농단으로 사악하기 그지없던 정권이 종말을 고했다. 두달 후 치러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압도적 표 차이로 당선됐다. 우리는 아낌없는 지지를 바쳤다. 이제 정치는 그분들에게 맡기고 나머지는 일터로 돌아가 생업에 전념할 수 있으리라 싶었다. 그 희망이 사라지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부동산은 폭등했다. 그래도 우리는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거두지 않았다. 현 정부가 무능하기는 해도 최소한 이명박·박근혜 정권보다는 도덕적이라고 생각해서였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입시와 사모펀드, 가족재산 형성 등에 숱한 의혹이 제기된 조국 교수를 법무부 장관에 임명함으로써 도덕이라는 최후의 보루마저 무너뜨렸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들어가는 말 중 발췌)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를 되짚어보는 또 한권의 책이 출간됐다.
강양구 미디어 재단 TBS 과학 전문 기자, 권경애 법무법인 해미르 변호사, 참여연대 출신의 김경율 시민단체 경제민주주의21 공동대표, 서민 단국대 의과대 교수,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등 5명의 대담집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다. 25일부터 서점에서 판매한다.
이들은 현 정권에 대해 용기 있는 비판을 하고자 모였다고 소개했다. 김어준, 김남국 등 친여 성향 인사들이 만든 조국 백서 ‘검찰개혁과 촛불시민’을 반박하는 ‘조국 흑서’로 보인다.
들어가는 말에서 "김경율 회계사는 조국에 대한 참여연대의 침묵에 분노해 단체를 탈퇴했고 권경애 변호사 역시 민변의 미온적인 태도에 실망해 정권 비판에 나섰다. 황우석의 음모를 밝혀냈던 강양구 기자는 이제 문재인 정권의 음모를 밝히고자 합류했고 사회의 기생충을 알아보는 데 일가견이 있는 서민 교수도 문 정권의 대변검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어 "마지막으로 현 정부가 들어선 뒤 자진해서 무덤으로 들어갔던 미라논객 진중권이 조국과 그를 옹호하는 문팬들에 의해 풀려나왔다"며 "지난 시절 이명박·박근혜 정권과 치열하게 싸웠던 우리는 이제 이 책을 시작으로 현 정부와의 싸움을 시작한다"고 전했다.
책에서는 '586정치엘리트와 무너진 정의와 공정의 회복'에 대해 다룬 6~7장이 가장 눈에 띈다. 저자 다섯 명이 모두 참여한 종합토론이다.
이들은 586정치엘리트들이 새로운 보수 세력이 됐다고 주장하며 이들을 '신 적폐'라고 칭했다.
진중권 전 교수는 "지금 보수집단 내에서 세대교체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며 "사실상 586정치엘리트가 새로운 보수 세력이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진 전 교수는 "진보적 시민단체에서 하는 짓은 옛날 우익관변단체가 하던 짓이고 저들에게서 봤던 모습을 지금 이들에게서 보고 있다는 것은 보수집단에서 세대교체가 이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문재인 정권도 집권 3년을 넘어가고 있고 이들이 새로운 기득권층으로 사회에 뿌리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부패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국민은 신(新)적폐와 구(舊)적폐, 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받게 됐다"고 부연했다.
진 전 교수는 "허위의식이었다 해도 과거 386은 노동자, 농민을 대변한다는 자의식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586정치엘리트들은 강남에 아파트를 가진 사람들이다. 이들의 물질적 기반은 과거 보수와 다르지 않고, 그 자리에 도달하기 위해 그들과 같은 방법을 썼다. 그래서 조국의 반칙이 그들에게는 반칙으로 여겨지지 않는 것이다. 그걸 반칙이 아니라 하나의 생활양식으로 여기는 것이고, 조국을 옹호할 때 실은 자기를 옹호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 "586정치엘리트들이 기득권 세력이 된 지는 좀 됐다. 지금은 이 기득권 세력의 세대 재생산 단계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강양구 기자는 "신보수 세력의 재생산 시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조국 일가의 모습"이라고 동의했고 김경율 회계사는 "어느 순간부터 큰 뭉칫돈들의 흐름이 바뀐다. 건설 토건에서 신성장 동력사업 부문으로 이동하고 있다. 뭉칫돈을 움직일 만한 네트워크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586세대인 것 같다"고 했다.
권경애 변호사는 "원한 감정과 피해 의식 속에서 기득권 유지, 정권 유지에만 집착하는 것 같다"고 했고 서민 교수는 "사회를 바꾸겠다는 사람들이 기존 권력자들보다 더 부패하면 말이 안 되지 않나. 그런데 이번 정권이 진보의 이미지를 완전히 망쳐 놨다"고 지적했다.
책의 1~3장은 미디어와 지식인, 팬덤 정치에 대해 논한다.
이들은 "2019년 8월의 조국 사태에서 확인한 것은 청와대·여당·행정부의 '우리가 선출된 권력이니 우리 뜻대로 하는 것이 촛불정신'이라는 논리, '사회의 진보는 자기들 세력이 모든 권력을 잡는 것'이라는 강박적인 태도, '청와대냐 검찰이냐'는 선택의 강요, 정의와 상식의 기준 자체를 바꿔버리는 언어도단과 비상식의 상식화 체험"이라고 주장했다.
4~5장은 조국 전 장관 사태에서 불거졌던 사모펀드에 대해 다룬다. '금융자본과 사모펀드'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춰 한국 사회의 금융시장 전반부터 '조국 전 장관 사모펀드 에피소드'까지 조명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날' 출판을 맡은 천년의상상 관계자는 앞서 "최근 우리 사회를 탈진실시대라고 하지 않나. 이분법적 사고를 떠나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살펴보고자 했다. 입장과 입장이 부딪히는 게 아니라, 애초 진보에서도 더 왼쪽에 자리했던 사람들은 어떤 생각으로 조국 사태를 비판했는지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자는 취지"라고 출간 배경을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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