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산암모늄 적재했던 선박, '떠다니는 폭탄'으로 불리기도
레바논 전현직 세관장, 2014년부터 6차례 위험성 호소
폭발 6개월 전 "베이루트 날아갈 수도" 경고 나와
[서울=뉴시스] 이재우 기자 = 레바논 베이루트 대규모 폭발 원인으로 항만 창고에 수년간 방치된 고위험성 폭발 물질 질산암모늄이 지목된 가운데 레바논 당국이 질산암모늄을 방치할 경우 끔찍한 재난을 초래할 수 있다고 수차례 사전 경고를 받고도 이를 무시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CNN은 5일(현지시간) 자체 입수한 레바논 정부 문서를 토대로 레바논 당국이 지역 당국의 경고에도 수년간 안전조치 없이 베이루트항에 질산암모늄을 보관했다고 보도했다. 질산암모늄의 위험성을 지적하면서 재수출 또는 이전을 허가해달라는 요청이 있었지만 무시됐다고도 전했다.
로이터통신도 같은날 폭발 6개월 직전에도 질산암모늄을 옮기지 않으면 베이루트 전체가 폭파될 수 있다는 현장 관계자가 있었다고 전했다. 알자지라도 레바논 고위 당국자들이 6년전부터 질산암모늄이 베이루트항 항만 창고에 저장돼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이들 보도는 앞서 레바논 최대 일간지 알 줌후리야(Al Joumhouria)가 레바논 보안기관이 최고국방위원회에 제출한 항만 정례 점검 보고서 등을 입수해 보도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우선 베이루트항 항만 창고에 방치됐던 질산암모늄 2750t은 2013년 11월 무렵 조지아(구 그루지야) 바투미를 출발해 아프리카 모잠비크로 향하던 몰도바 국적 선박 '로수스'호로부터 레바논 당국이 압류한 것으로 파악됐다. CNN은 해당 선박을 러시아 소유로 보도하기도 했다.
질산암모늄 2750t과 채굴용 폭발물을 실은 로수스호는 급유를 위해 그리스에 입항했다가 선박 고장 또는 임금 체불에 따른 선원들의 소요, 추가 화물 선적 등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은 이유로 베이루트항에 예정에 없던 입항을 했다.
하지만 운항 규정 위반, 항만 관리료 미납, 선원들의 체불 문제 제기 등의 이유로 레바논 항만 당국의 출항 허가를 받지 못하고 억류됐다. 당시 로수스호 선원들은 질산암모늄 등과 함께 11개월 가량 선박과 함께 바다에 떠있어야만 했다. 2014년에도 로수스호를 두고 '떠다니는 폭탄(floating bomb)'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보리스 프로코셰프 선장은 CNN에 "질산암모늄 등 위험물이 실려져 있었지만 항만 당국은 하역 또는 다른 선박으로 이전을 허용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선장과 선원들을 대리했던 변호사에 따르면 질산암모늄은 2014년 11월에야 베이루트 번화가로부터 수백m 떨어진 베이루트항 항만 12번 창고에 하역됐다.
레바논 당시 세관장 2명이 고위험성 폭발물인 질산암모늄을 보관하기에는 기후조건 등이 부적합하다면서 2014년부터 2017년까지 모두 6차례에 걸쳐 항구 시설과 종사자의 안전을 위해 질산암모늄을 다시 수출하거나 레바논군 또는 민간 폭발물회사에 매각할 수 있도록 허용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모두 기각했다.
현 세관장인 바드리 다헤르는 CNN에 "사법당국에 모두 6차례 서한을 보냈지만 아무런 회신도 받지 못했다"며 "항만 당국은 로수스호가 질산암모늄을 베이루트항으로 하역하는 것을 허용하지 말았어야 했다. 질산암모늄은 당초 레바논이 아니라 모잠비크로 가고 있었다"고 비판했다.
로이터통신도 항만 직원과 가까운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6개월 전 질산암모늄에 대한 검사가 이뤄졌고, 이를 옮기지 않으면 베이루트 전체가 폭파될 수 있다는 경고가 있었다"고 전했다. 통신은 또다른 소식통을 인용해 여러 위원회와 판사들이 질산암모늄 처분 시도가 부재하다도 경고한 바 있다고 전했다.
현 항만국장은 현지 OTV방송과 인터뷰에서 "법원의 명령에 따라 12번 창고에 질산암모늄을 보관했다"며 "위험물질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인지는 몰랐다"고 반박했다. 이어 "관세청과 보안기관이 당국에 질산암모늄 이전 또는 재수출 요청 서한을 보냈고, 문제가 풀리길 기다렸지만 소용이 없었다"고도 했다.
항만국장은 OTV에 폭발이 일어나기 몇시간 전에 창고문을 수리했다고도 했다. 레바논 보안기관은 지난달 20일 제출한 항만 정기 점검 보고서에서 질산암모늄이 보관된 창고 관리 상태가 열악하다면서 시설 수리와 경비원 확충, 창고장 임명 등 조치도 촉구한 바 있다.
그는 폭발 당일 창고 시설 수리가 이뤄졌다고도 했다. 항만국장은 "(폭발 당일) 오전 창고 문을 수리해달라는 보안기관의 요청을 받고 오후에 수리를 했다"면서도 "오후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레바논 정부는 질산암모늄 방치 여부를 둘러싼 조사를 시작하기 전 도주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베이루트항 항만 관리들을 가택 연금했다.
미셸 아운 레바논 대통령과 하산 디아브 총리 등이 질산암모늄이 수년간 방치된 점을 용납할 수 없다면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엄중 처벌을 공언하고 있다. 레바논 정부는 5일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조사에 착수했고 향후 5일 이내 사법부에 조사결과를 제출할 예정이다.
다만 레바논 정부는 현재까지 질산암모늄 폭발 원인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질산암모늄이 발화하려면 고열이 필요하다. 가디언은 첫번째 폭발 이후 소방관들이 현장에 도착해 진화 작업을 시도했을 정도로 두번째 폭발과 간극이 존재한다면서 폭발 원인은 여전히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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