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대사관 고위직, 현지 직원 성추행 의혹
성추행 인정 어려워 감봉 1개월 처분 내렸지만
정상 통화서 언급되며 외교문제 비화 조짐 보여
외교부, 뉴질랜드 수사 협조 가능 범위 마련할 듯
뉴질랜드 측이 정상 간 통화에서 성비위 문제를 제기해 외교적 논란을 키우고 있는 측면도 있지만 외교부의 대응이 안일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외교부 설명과 뉴질랜드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뉴질랜드 한국대사관 고위직으로 일했던 남성 외교관 A씨는 2017년 말 현지 직원 B씨의 신체를 만지는 등 성추행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현지 언론 뉴스허브에 따르면 B씨는 A씨가 컴퓨터 문제를 해결해달라며 불러 엉덩이와 가슴을 움켜쥐었고, 상사에게 이 사실을 알렸지만 가해자와 분리되지 않아 추가 성추행이 벌어졌다고 주장했다.
A씨는 대사관 내부 진술 자료를 통해 "성추행 의도가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B씨가 오해한다는 점이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라며 "아마 서로의 기억이 달라서 논의의 여지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고 뉴스허브는 보도했다.
구체적인 행위와 관련해서는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이 배가 나온 것 같아 장난삼아 배를 두드린 것(giving his belly a couple of taps)"이라며 "양손으로 B씨의 가슴을 친 적(knocking his chest with both hands)은 있지만 B씨의 주장처럼 더듬은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A씨가 뉴질랜드를 떠난 뒤 B씨는 문제 제기에 나섰고 외교부는 2018년 자체 감사 결과 A씨에게 감봉 1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외교부는 성추행으로 보긴 어렵지만 불필요하고 부적절한 신체 접촉이라는 판단을 내려 경징계를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B씨가 이후에도 피해를 호소하자 뉴질랜드 경찰은 지난해 조사를 시작했다. 뉴질랜드 법원은 지난 2월 A씨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하고 주뉴질랜드대사관에 현장조사 및 폐쇄회로(CC)TV 영상 제공 등 협조를 요청했지만 정부는 응하지 않았다.
정부가 뉴질랜드 사법당국의 조사 협조를 거부한 것은 외교관계에 관한 빈 협약에 근거하고 있다. 이 협약은 외교공관의 불가침성, 외교관에 대한 체포·구금 금지 등 특권을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A씨에 대한 강제수사가 어려운 상황에서 공관 조사마저 거부되자 한국 정부가 A씨를 비호하는 것처럼 비춰져 뉴질랜드 측의 반발을 산 것으로 보인다.
급기야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가 지난 28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A씨의 성추행 의혹 건을 의제로 꺼내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정상간 통화에서 특정 개인 문제를 언급하지 않는 관례에 비춰보면 상당히 이례적인 일로 뉴질랜드 측의 태도가 적절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반면 외교관 성 추문으로 국격을 떨어뜨리는 사태가 반복되자 유사 사건에 대한 외교부의 대응 전례를 다시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상 통화 이후 외교부는 인사제도팀과 감사관실, 국제법률국을 중심으로 사건 발생 당시 사실관계 등을 확인하는 한편, 뉴질랜드 측이 조사 협조를 요청할 경우 대응 방안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은 30일 정례브리핑에서 해당 외교관을 한국으로 송환해 조사할 계획이 있냐는 질문에 "정확한 사실관계를 토대로 이 사안이 해결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해 나가고 있다"고 답했다.
다만 범죄인 인도 요청이 들어오더라도 결정은 외교부가 아닌 법원이 하게 된다. 외교부로서는 어느 쪽의 결정도 달갑지 않다. 법원이 인도 결정을 내릴 경우 A씨의 혐의가 중하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자체 징계가 가벼웠다는 반증이 되고, 거부 결정을 내릴 경우 뉴질랜드와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질 수 있어서다.
외교부는 뉴질랜드 측과 협조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강구할 것으로 보인다. 외교공관의 불가침성을 제한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뉴질랜드 사법당국의 수사에 협조할 수 있는 방식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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