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대남 총괄에 대미 협상까지 관여…2인자 위상 확고

기사등록 2020/07/10 10:51:44

김여정 담화서 북미정상회담, 비핵화 등 언급

양무진 "대남, 대미 실무 총괄하는 점 드러나"

박원곤 "담화 큰 흐름은 양가감정, 중언부언"

오경섭 "고모 김경희에 비해 위상 훨씬 높아"

[평양=AP/뉴시스]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4일 탈북민들의 대북 전단 살포에 강력히 반발하며 "남측이 이를 방치하면 남북 군사합의 파기까지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 제1부부장은 담화를 통해 탈북민의 대북전단 살포에 불쾌감을 표하며 "6·15 남북공동선언 20돌을 맞는 마당에 이런 행위들이 개인의 자유,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 하에 방치된다면 남조선은 머지않아 최악의 국면까지 내다봐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사진은 김여정 제1부부장이 2019년 3월 2일 베트남 호찌민의 묘소 헌화식에 참석한 모습. 2020.06.04.
[서울=뉴시스] 박대로 기자 =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10일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에 분수령이 될 만한 중요한 담화를 내놨다. 김 제1부부장은 지난달 대북전단 갈등 국면에서 대남 도발을 총지휘한 데 이어 이번에는 대미 협상에까지 개입했다. 이에 따라 김 제1부부장이 오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대리인이자 실질적 2인자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했다는 평이 나온다.

김 제1부부장은 이날 담화에서 북미정상회담 개최 가능성, 미국과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비핵화 등 북미 간 현안에 관한 핵심적인 사안을 고루 언급했다. 대남 총괄이라는 기존의 역할을 넘어 대미 협상에까지 깊숙이 관여한 모양새다.

이번 담화에서 김 제1부부장은 "가능하다면 앞으로 (미국)독립절 기념행사를 수록한 DVD를 개인적으로 꼭 얻으려 한다는 데 대해 위원장 동지로부터 허락을 받았다"며 김정은 위원장의 지근거리에서 소통하고 있음을 과시했다.

이로써 김 제1부부장이 사실상 북한 내 모든 주요 사안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이 명확해졌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뉴시스와 통화에서 "김여정이 대남, 대미 등의 실무를 총괄하는 것이 드러났다"며 "김정은 위원장의 생각을 김여정 담화로 표출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분석했다.

【판문점=뉴시스】박진희 기자 =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30일 판문점 자유의 집 앞에서 남북미 정상의 만남을 지켜보고 있다. 2019.06.30. pak7130@newsis.com
담화에 김 제1부부장 특유의 자유분방한 문체가 담긴 점도 주목할 만하다. 지난달 대북전단 갈등 국면에서 김 제1부부장이 내놓은 담화 속 문체가 호전적이었다면 이날 내놓은 담화는 지난 3월 그가 자기 명의로 처음 내놨던 것과 유사하다.

이번 담화에서 김 제1부부장은 미국 조야의 발언에 대해 '아침식사시간의 심심풀이'라는 공식 담화에 쓰기에는 다소 어색한 표현을 쓰는가 하면, 미국 독립기념일 행사 영상을 소장하고 싶다는 개인적인 희망사항을 여과 없이 담았다.

반어법과 가정법을 자주 구사하는 점 역시 인상적이다. 올해 북미정상회담을 할 뜻이 없다고 언급하면서도 양 정상의 결단에 의한 전격적인 개최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등 반어적인 표현이 담화 전반에 등장한다.

이에 대해 양무진 교수는 "반어법이나 가정법을 통한 행간의 의도를 잘 파악해야 한다"며 "미국의 결정적인 입장 변화가 없는 한 북미정상회담이 무의미하다는 언급은 미국의 결단을 촉구하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북미정상회담의 3가지 부정적인 이유를 언급한 것도 이런 점을 미국이 뛰어 넘는다면 가능하다는 점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이번 담화가 일관성이나 통일성 측면에서는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평도 있다.

【랑선(베트남)=뉴시스】고승민 기자 = 제2차 북미정상회담 일정을 하루 앞둔 26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특별열차를 타고 베트남 랑선성 동당역에 도착, 내리기에 앞서 김여정 제1부부장이 동선을 체크하고 있다. 2019.02.26.kkssmm99@newsis.com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 교수는 뉴시스에 "담화를 읽었을 때 첫 느낌이 횡설수설하는 느낌이다. 지금 북한의 혼란스런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라며 "북미정상회담을 위한 조건을 제시한 부분도 사실 말이 안 된다. 설득력이 있진 않다"고 평했다.

박 교수는 "담화의 큰 흐름은 양가감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예측이 어려우니 잘 잡으면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하노이 회담의 악몽이 떠오르거나 트럼프가 재선이 안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하는 것"이라며 "그런 양쪽 생각이 다 반영되니 논리가 약해지면서 횡설수설, 중언부언하게 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아울러 이번 담화를 통해 김 제1부부장의 위상이 자신의 고모인 김경희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를 뛰어넘었음이 재확인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경희가 오빠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눌려 제한적인 역할만 수행했던 데 비해 김 제1부부장은 훨씬 많은 역할과 재량권을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발표한 '김여정의 정치적 위상과 역할'이란 보고서에서 "김경희는 당 국제부 부부장(1976년 이후)과 당 경공업부장(1987년 이후)을 맡았다. 2009년 이전에 단 한 번도 조직지도부나 선전선동부 같은 핵심 부서에 배치된 적이 없었다"며 "이는 김정일이 김경희의 정치적 역할을 엄격하게 제한했기 때문이다. 김경희는 김정일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만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오 위원은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을 역임하고 당 제1부부장 자격으로 대남사업을 총괄하는 김여정의 정치적 위상과 역할은 김경희에 비해 훨씬 크다"며 "또 김여정은 김경희와 달리 김정은의 대내외 정책결정 과정에 깊숙하게 관여하고 있다. 김여정은 남북·미북·북중정상회담을 대부분 수행했고, 2018년 남북 대화국면과 최근 남북관계 악화 국면을 주도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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