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공희 대주교 "근거없는 5·18 폄훼세력 안타깝다"

기사등록 2020/05/10 15:42:06

5·18 당시 제7대 천주교광주대교장 재임…시민들 보호

광주평화방송, 윤공희 대주교 인터뷰 방송…17~18일

[광주=뉴시스] =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천주교광주대교구장을 지내며 광주시민들 보호에 앞장섰던 윤공희(빅토리노) 대주교가 광주평화방송가 특별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광주평화방송 제공).photo@newsis.com
[광주=뉴시스]  류형근 기자 =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천주교광주대교구장을 지내며 광주시민들 보호에 앞장섰던 윤공희(빅토리노) 대주교가 당시의 소회를 밝힌다.

cpbc광주가톨릭평화방송은 5·18 당시 제7대 천주교광주대교구장으로 재임하면서 계엄군에 맞서 광주시민들을 지키는데 앞장섰던 윤공희(빅토리노)대주교를 초대해 5·18 40주년 특별인터뷰를 한다고 10일 밝혔다.

윤 대주교의 특별인터뷰는 2부작으로 제작돼 17일 오후 3시, 18일 오후 7시, 20일 새벽 1시에 평화방송TV에서 만날 수 있으며 라디오는 18일 오후 4시~6시까지 광주·전남지역에 방송된다.

윤 대주교는 인터뷰를 통해 출생부터 신학교 생활, 6·25한국전쟁 당시 지학순 주교와 함께 월남하게 된 과정, 한국전쟁 당시 종군신부로 사목하면서 느꼈던 인간적인 소회, 로마 유학생활, 수원교구장과 광주대교구장으로 재임하면서 기억에 남는 사목 성과 등을 자세하게 이야기 한다.

윤 대주교는 또 5·18에 대해 가장 가슴 기억으로 자리잡고 있다며 당시의 아픔을 설명했다.

윤 대주교는 "5·18은 70년 동안 사제로 살아오면서 가장 가슴 아픈 기억으로 자리하고 있다"며 "총칼을 앞세워 시민들을 잔인하게 진압하던 계엄군의 모습을 지켜봐야했던 사제이자 한 인간으로서 무기력 했다"고 밝혔다.

또 "80년 5월19일 집무실 창문 너머로 계엄군에게 무차별적인 폭행을 당하며 피를 흘리고 있던 시민을 보고도 당장 뛰어 내려가 말리지 못했었다"며 "40년이 흐른 지금도 당시를 생각하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고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강도 맞은 사람 옆을 비켜 지나가는 사제가 바로 나였구나 하는 생각이 가시질 않는다"고 말끝을 흐렸다.

이어 "5·18은 우리 민족이 역사 안에서 겪은 큰 시련이었다"며 "시련 속에서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당하게 권위를 받을 수 있어야 하고, 그 권위는 하나의 봉사로써 받는 것이지 이를 행사하거나 올라서서 지배하기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강조했다.

윤 주교는 역사의 교훈을 잊고 폄훼를 하는 세력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그는 "40년이 지난 지금도 일부에서 5·18을 왜곡하고 폄훼하고 있는 것에 대해 안타깝고 무엇보다도 그들의 동기를 알 수가 없다"며 "그들은 어떤 사실적 근거를 하나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올해로 사제수품 70주년을 맞은 윤공희 대주교는 1950년 3월20일 사제품을 받았으며 지난 1973년 10월25일 광주대교구장에 착좌한 뒤 2000년 11월 30일 퇴임할 때까지 27년 동안 광주대교구를 이끌며 교회의 발전은 물론 우리나라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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