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입 취지엔 공감"…기본소득 준하는 정부 정책 뭐 있나

기사등록 2020/03/22 06:00:00

기재부, '기본소득' 취지 담은 사업 3조5972억 규모로 공개

소비·돌봄·일자리 쿠폰, 건보료 감면, 실직자 긴급복지 등 담겨

"현금성 지원 사업 다수…향후 논의 경과 봐 가며 검토할 것"

[서울=뉴시스]홍효식 기자 =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청사 브리핑룸에서 비상경제회의 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영선 중기부 장관, 홍남기 부총리, 은성수 금융위원장. 2020.03.19. yesphoto@newsis.com
[세종=뉴시스] 장서우 기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제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역대 4번째로 큰 11조7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을 마련한 정부는 '재난기본소득'의 취지가 담긴 사업들이 이미 상당수 추진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22일 기획재정부 예산실은 재난기본소득에 준하는 사업들이 지난 17일 국회를 통과한 추경안에 총 3조5972억원 규모로 반영돼 있다고 밝혔다.

가장 대표적인 사업으로는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소비 쿠폰이 있다. 생계·의료·주거·교육 급여 수급자에게 4개월 치의 지역사랑상품권을 지급하는 내용이다. 지급 대상자는 국회를 거치면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에서 법정 차상위계층까지 확대됐고, 수혜 가구는 137만7000가구에서 168만7000가구(230만명)까지 늘었다.

1인 가구의 월 소득이 88만원 이하일 때 40만원, 70만원 이하일 땐 52만원을 준다. 2인 가구의 경우 월 소득이 150만원 이하일 땐 68만원을, 120만원 이하일 땐 88만원을 지급한다. 3인 가구는 요건을 충족할 경우 114만원까지 지급받을 수 있다. 기재부는 이 사업에 1조242억원의 예산을 편성한 상태다.

어린이집 휴업 등으로 가정에서의 돌봄 부담이 늘어남에 따른 '특별 돌봄 쿠폰'도 마련됐다. 아동수당 대상자(7세 미만 어린이)에게 4개월분의 지역사랑상품권을 제공하는 내용이다. 소득 구간에 상관없이 인당 10만원씩 총 40만원을 제공한다. 한 가구에 해당 아동이 2명이면 80만원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소요 예산은 1조539억원으로 집계된다.

노인 일자리 사업 참가자 54만3000명에게도 쿠폰이 지급된다. 보수의 30%를 지역사랑상품권으로 받으면 20%에 상당하는 인센티브를 지원하는 것이다. 현재 월 보수는 27만원 수준인데, 이 금액의 30%인 8만1000원을 상품권으로 받으면 월 보수의 20%인 5만9000원을 얹어 준다.

결국 상품권 14만원에 현금 18만9000원을 합해 총 보수는 32만9000원이 된다. 한 달에 5만9000원씩 4개월 동안 총 23만6000원의 상품권이 지급되는 것이다. 관련 예산은 1281억원으로 짜였다.
[세종=뉴시스]'재난기본소득'의 취지를 담아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추경)에 반영한 사업 목록. (자료 = 기획재정부 예산실 제공)
건강보험료 납부액이 하위 20%인 저소득층에 3개월간 건보료를 50% 깎아주는 정책도 국회 심사 과정에서 신규로 도입됐다. 총 2656억원 규모다. 484만5000가구(546만1000명)에 평균 9만3000원씩을 지원해 주며 비용은 정부(25%)와 건강보험공단(25%)에서 절반씩 부담한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된 대구·경북 지역에는 건보료 하위 50%까지 지원 대상을 늘려줬다.

쿠폰 지급 547만3000명, 건보료 감면 485만 명 등을 합하면 꽤 많은 취약계층에 현금성 지원이 이뤄진다는 설명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지원을 받는 국민들의 범위가 넓고 지원 금액도 지방자치단체들의 지급 수준보다 훨씬 높다"면서 "지자체들이 추가로 지원 대상을 확대·보완할 수 있는 측면도 있어 중앙 정부와 지자체 간 사회 안전망을 서로 보완하는 효과도 발생한다"고 적었다.

이밖에 질병이나 가게의 휴·폐업 등으로 갑작스럽게 생계유지가 곤란한 상황에 처하거나 실직 등으로 소득을 상실한 저소득층에 사회 안전망을 제공하기 위한 '긴급복지' 예산도 1656억원에서 3656억원으로 2000억원 확대됐다. 소득·재산 등 지급 요건을 완화해 당초 48만 명 수준이던 지원 대상을 105만5000명까지 대폭 늘린 결과다. 6개월간 1인 가구엔 최대 273만원, 2인 가구엔 465만원, 3인 가구엔 600만원이 지급된다.

개인뿐 아니라 소상공인에 대한 현금성 지원도 포함돼 있다고 기재부는 설명한다. 저임금근로자를 고용한 영세 사업장의 인건비 부담을 낮춰주기 위해 80만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4개월간 평균 112만원(인당 7만원씩 4인 기준)을 지급한다.

소요 예산은 4964억원이다. 코로나19로 인한 피해가 직접적이었던 점포 19만8000개를 대상으로 한 2634억원 규모의 현금 지원도 이뤄진다. 확진자가 경유한 곳에 300만원, 폐업한 곳엔 200만원, 장기 휴업 중인 곳엔 100만원씩을 각각 지급한다.

명확하게 재난기본소득이라는 형태를 띠진 않더라도 그와 비슷한 개념이 적용된 사업들이 다수 추진되고 있다는 것이 예산 당국의 입장이다. 재원이나 실제 소비 진작 효과 등을 고려할 때 전 국민에게 현금을 살포하는 식보다는 수혜 대상을 한정해 지급하는 방식이 더 바람직하다는 판단에서다.
[서울=뉴시스]박영태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1차 비상경제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2020.03.19. since1999@newsis.com
홍 부총리는 지난 20일 열렸던 외신 간담회에서도 "재정 당국 입장에서 모든 국민들에게 (현금을) 주는 것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고 재차 강조하면서 "현재 추경안에도 타깃(target) 계층에 대한 현금성 지원 사업이 여럿 포함돼 있다. '기본소득'이라고 칭할 순 없겠지만, 그런 취지가 반영된 사업"이라고 언급했다.

청와대의 움직임도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 다음 주 중 예정돼 있는 2차 비상경제회의에선 취약계층에 한정해 재난생계비를 지원하는 대책이 논의될 것으로 전해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가장 힘든 사람들에게 먼저 힘이 돼야 한다"며 우선순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밖에 정부는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용도가 한정적인 재난 관련 기금을 소상공인·취약계층을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기도 했다. 관계 부처에 따르면 재난 관리를 위해 17개 시·도에서 매년 적립해 온 재난관리기금은 총 3조8000억원 수준이다.

다만 국민 여론과 함께 사회적 논의 과정에 따라 기류가 변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홍 부총리는 "앞으로 정부에서 계속 검토해 갈 것"이라고 했다. 박준호 기재부 예산총괄과장도 "제도 도입에 대한 논의 단계가 아직 초기인 만큼, 향후 경제 동향이나 사회적 논의의 경과 등을 봐 가면서 검토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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