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로그를 찾아서] ⑦ '가능성'을 보는 사람

기사등록 2020/03/07 20:02:08
[서울=뉴시스]이윤청 기자 = 한 시민이 지난 4일 오후 서울 노원구 노원역에서 전자책 단말기로 독서를 하며 퇴근길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다. 2020.03.07. radiohead@newsis.com

[서울=뉴시스] 이윤청 기자 = 책을 꺼내들 때 손목에 전달되는 책의 무게가 좋다. 그 무게만큼 나도 더 깊은 사람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쌓여 이제는 집에서 나보다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작은 원룸에서 나와 비슷한 크기의 형체는 무시하기 어렵다. 가끔은 방구석에서 빛을 보지 못하는 책들의 책망하는 눈빛이 느껴져 먼지를 털어주기도 한다.

책을 펼쳐 종이 향을 맡으며 읽어 나간다. 책 오른편엔 독서노트가 있고 마음에 드는 문장과 표현은 몸에 새긴다는 생각으로 만년필을 들어 옮겨 적는다. 지난 15년간 쌓아왔던 습관이다.

며칠 전에 인문학과 철학 책 읽기를 즐겨 하는 친구를 퇴근길에 만났다. 오랜만에 본 친구 손에는 종이책 대신 전자책이 들려 있었다. 왜 샀는지 물어보니 방에 책 꽂을 곳이 부족해 부모님 방까지 책이 들어섰다는 것. 전자책으로 구할 수 있는 책은 최대한 구해서 종이책과 병행해서 볼 계획이라고 했다.

그렇게 종이책을 고집하던 친구가 전자책을 샀다는데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친구에게 단말기 사용 경험에 대해 물어보고 만져보니 이 물건, 디지털(전자책)과 아날로그(종이책)의 가려운 부분을 서로 긁어주는 걸작이다. 뭐든지 가볍고 작은 것을 추구하는 시대에 종이책은 자신의 목소리를 페이지 수 제한 없이 담을 수 있는 육체가 필요했고 전자책 단말기는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반면 전자책은 계속해서 아날로그를 탐한다. 종이와 최대한 가깝게 보이는 전자잉크 디스플레이로 눈의 피로도를 줄이고, 페이지를 넘기면 시각 효과와 함께 사각사각 소리가 난다. 손으로 밑줄을 긋고 메모하면 디지털 서재에 저장된다.

글자만 보면 ‘디지로그’는 ‘디지’와 ‘로그’의 합성어다. 완전히 새로운 단어가 아니라 ‘디지’와 ‘로그’가 붙어있을 뿐이다. 아무리 가까워지고 싶어도 합일체는 되지 않는 이 상태가 디지로그의 힘이다.

앞으로도 디지털은 아날로그의 물성을 더 닮아 가기 위해 제한 없는 완벽에 도전할 것이고 아날로그는 그 도전에 끊임없이 영감을 제공할 터이다. 따라서 ‘디지로그’의 다른 의미는 ‘가능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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