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문화재단 행정직원들 수습처리 분주
생계비 지원 등 실질적 대책 필요
그럼에도 공연한다···신인배우들 갈곳 없어
실황 중계, 공연 관람법 풍경도 바뀔 듯
최근 만난 공연계 관계자는 한숨부터 깊이 내쉬었다. "안녕하세요?"라는 안부조차 묻기 조심스런 나날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이 만든 2월 공연가의 삭막한 풍경이다.
최근 10년 동안 공연계를 할퀴었던 2014년 세월호 참사, 2015년 메르스 때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공연계에서 불거지고 있다.
2월은 보통 공연계의 비수기로 통한다. 하지만 올해 2월은 특히 전멸에 가깝다는 인상이 짙다. 이 관계자는 "공연 관람은 마음의 여유가 생길 때 가능한 거잖아요. 생명과 직결된 사태가 눈앞 위기로 찾아왔는데, 상황이 나아진다고 해도 당분간 공연 관람할 마음의 여유가 있겠어요? 상반기는 공연을 하지 못한다는 생각으로 있다"고 전했다.
◇차기작 스케줄도 꼬여…배우 무용수 연주자, 집에서
피해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예상은 과도한 것이 아니다. 모임이 금기시되니 배우, 스태프들이 모여 차기 공연에 대한 연습도 불가하다. 대학로에서 운영되는 연습실도 사실상 문을 닫은 상황이다.
민간 영역뿐만 아니다. 특히 정부 지침에 따라 국립공연기관, 국립예술단체는 휴관과 공연을 잠정 중단키로 해서 소속 단체 예술가들은 출근을 자제하고 있다.
국립중앙극장, 국립국악원(부산·남도·민속 등 3개 지방국악원 포함), 정동극장, 명동예술극장,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등의 국립공연기관과 국립극단, 국립발레단, 국립오페라단, 국립현대무용단, 국립합창단, 서울예술단,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등 국립예술단체에 속한 배우·무용수·연주자들은 각자 자택 등에서 개별 기량이 떨어지지 않도록 연습을 하고 있다.
공연평론가인 지혜원 경희대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는 "공연은 라이브라 이번 코로나 19 같은 악재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힘들다"면서 "지금 스케줄이 꼬이면 상반기 일정이 다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올해 70주년을 맞은 국립극장, 국립극단은 일정 조절에 애를 먹고 있다. 특히 4월에 70주년 행사가 예정돼 있어 노심초사하고 있다. 이르면 올해 완공할 것이라 예상했던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리모델링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지역 사회 감염이 우려되니, 국공립 기관에서는 선제적으로 공연장을 휴관하고 공연을 잠정 중단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마냥 일이 없는 건 아니다. 특히 지역 문화재단 등의 행정 직원들은 지역 사회 확진자가 늘수록 자료 챙길 일과 보고를 위한 회의가 늘어나고 있다.
국내 투어팀들초 초긴장 상태다. 이미 부산에서 오리지널 마지막 무대를 선보이려고 했던 신시컴퍼니의 라이선스 디즈니 뮤지컬 '아이다'는 최근 서울 공연이 마지막 무대가 됐다.
부산 공연을 무사히 마치고 3월 서울 공연을 준비 중인 '오페라의 유령' 월드투어 팀도 하루하루를 신중히 지켜보고 있다. 특히 오랜 기간 준비해온 투어이기 때문에 무엇이든 쉽게 결정하기 힘든 상황이다.
◇피해 보상 방안, 지금부터 논의해야
예술인 긴급생활자금 융자 지원(총 30억 원 규모), 소독·방역용품, 휴대형 열화상 카메라 지원(전국 민간 소규모 공연장 430개소, 2억2000만 원 규모), 코로나19 피해 공연예술단체의 경영 애로 및 법률 상담을 위한 '코로나19 전담창구' 개설(예술경영지원센터), 공연단체 피해보전 지원(총 21억 원 규모) 등이다.
예술경영지원센터는 별도로 공연관계자들의 피해 사례를 받는 창구를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공동상임선대위원장은 지난 27일 서울 종로구의 대학로 소극장들의 실태를 살피기도 했다.
정부와 선제 대응을 하긴 했지만 피해가 장기화되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특별 예산 편성 등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오태근 한국연극협회 이사장은 올해 '2020 연극의 해' 관련해서 책정된 예산 21억원을 코로나19로 인해 피해를 입은 연극인을 위해 사용하자고 요구했다.
정부가 피해에 대한 예산을 마련한다면, 피해의 경중을 어떻게 따져 어디부터 지원할지 정하는 것도 난제다. 이를 정리하고 해결하기 위한 창구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 교수는 "피해 사례에 맞춰 태스크포스(TF) 팀을 꾸리고 공격적이고 적극적으로 구제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공연 관계자는 "회계연도 기간인데 세금을 늦게 내게 해주겠다고 하지만 상반기에 수입이 없을 것이라고 예상되는데 크게 힘이 안 된다"면서 "4대 보험 등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공연전문 월간 '여덟 갈피'를 만드는 장경진 공연칼럼니스트는 "최근 공연이 잇따라 취소되면서 앙상블, 스태프들의 페이가 미지급된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면서 "생계 자체가 시급한 상황에서 당장 삶을 견딜 수 있도록 생계비 지원 등도 필요하다고 본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공연은 한다…안전하고 이겨낼 것이라는 "연대와 믿음"
대학로에서 일부 공연을 열고 있는 팀들은 티켓값을 50%를 깎아주는 등 대폭 할인 공세에 나섰다. 하지만 건강과 직결되는 이슈로 인해 무조전 공연장에 오라고 홍보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관객들보다 불특정 다수에게 마스크도 없이 노출되는 배우들, 그리고 근접거리에서 사람을 맞이하는 스태프들은 더 불안을 감수해야 한다. 특히 소극장의 경우 백스테이지, 대기실 등이 더 좁아 불안감이 크다.
그러니 더 철저하게 방역에 나선다. 주최 측이든 관객이든 더 조심한다. 공연장은 저마다 방역을 강화했다. 관객들도 마스크를 꼭 착용하고 손 세정제를 수시로 사용한다. 공연 시작 전 관객들은 이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대신 의자 손잡이 등을 소독제로 닦는데 열심이다. 마스크뿐만 아니라 라텍스 장갑을 끼고 오는 관객들도 꽤 있다. 공연장에서는 공연을 보는 내내 마스크를 착용해달라고 부탁하고 이를 어기는 관객들도 거의 없다.
이 관객들은 공연이 배우, 공연장, 스태프만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관객들이 있을 때 배우들은 놀라운 에너지와 집중력을 보여준다. 그 순간만큼은 유일무이한 경험이 만들어진다.이런 시국에 우리가 함께 해도 안전할 것이라는 믿음, 이겨낼 수 있을 거라는 연대를 공연을 통해 확인하고 있다.
공연 관계자는 "매일 매일이 불안하다. 매일 확진자 뉴스를 체크하고 확진자들의 동선에 우리 공연장 주변은 없는지 살핀다. 영향이 없기를 바라며 매일 살얼름판을 걷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고 공연을 여는 자체가 수익과 직결되는 것도 아니다. 공연을 열어도 관객은 평소보다 적으니 올릴수록 손해다. 하지만 사명감이다. 현재 공연을 중단하면 배우, 스태프들은 더 큰 불안감화 허무함에 휩싸이게 된다.
최근 '스웨그 에이지 : 외쳐, 조선!' 특별공연으로 큰 호응을 얻은 제작사 PL엔터테인먼트 송혜선 대표는 "우리 공연 배우들은 대부분 신인급이다. 힘들게 주역을 맡아 오른 무대인데, 이런 상황에서 공연이 취소되면 이들은 더 갈 곳이 없다. 그러니 공연 때마다 더욱 열심히 한다. 철저하게 안정적인 무대를 만드는데 힘을 쏟고 있다"고 했다.
장 평론가는 "'코로나 19' 사태가 주는 가장 큰 타격은 불안과 공포"라면서 "누구를 탓할 수도 없고 불안하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같이 이겨낼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짚었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모색되도 있는데 실황 중계가 그 중 하나다. 공연의 대중화를 위해 도입된 플랫폼인데 공연장에 오기 힘든 현재 상황에서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3월 말까지 진행하는 '공연예술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상당수 작품을 네이버와 함께 온라인으로 생중계하다. 서울돈화문국악당은 29일 예정된 공동기획 공연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를 온라인으로 생중계한다. 돈화문국악당은 "안전한 공연관람을 위한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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