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결렬 1년]결국 멈춰선 비핵화 협상…美 대선 후에나 재개되나

기사등록 2020/02/27 06:00:00

北 '영변-제재 해제' 제안에 美 '영변+α' 요구로 결렬

단계적vs포괄적 비핵화 접근법 차이…연말까지 지속

올해 美 대선…실질적 비핵화 협상 재개는 내년 이후

양측 유연한 접근 없이는 협상 결과 낙관하기 어려워

【하노이=AP/뉴시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8일(현지시간) 하노이 메트로폴 호텔 회담장에서 확대 양자 회담을 하고 있다. 확대 회담에 미국 측에서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믹 멀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 대행이 배석했고 북측에서는 리용호 외무상과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이 함께했다. 2019.02.28.
[서울=뉴시스] 김지현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역사적인 두 번째 만남을 가졌지만 비핵화 합의문에 서명하지 못하고 헤어진 지 1년이 지났다. 그간 협상 재개 노력은 있었지만 결실을 맺지 못했다. 올해 미국은 대통령 선거, 북한은 경제성과 창출에 집중하느라 북핵 이슈는 뒷전으로 밀려날 전망이다. 북미가 국내 정치의 숙제를 풀고 3차 정상회담에 이를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하노이에서 북한은 영변 핵시설 완전 폐기와 민생분야 대북제재 해제를 교환하자고 제안한 반면, 미국은 제재 해제를 위해서는 영변만 아니라 모든 핵 프로그램을 폐기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미국은 비핵화의 최종 상태를 담은 포괄적인 합의를 이끌어내려 했지만, 북한은 비핵화에 대응하는 미국의 상응조치를 단계적으로 합의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하노이에서 확인된 이 간극은 이후에도 좁혀지지 않았다.

북미는 하노이 결렬 직후부터 책임 공방을 벌였고, 비핵화 접근법의 차이는 선명해졌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4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미국에 연말까지 '새로운 계산법'을 가져오라고 촉구했다. 미국측에 북한의 비핵화만 앞세우는 협상 태도를 전환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이에 미국은 북한이 먼저 진정성 있는 비핵화 행동을 보여야 한다며 기존의 선(先)비핵화 협상 전략을 수정하지 않겠다고 맞받았다.

협상 교착 국면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해 6월30일 판문점에서 가진 깜짝 회동으로 풀리는 듯 했다. 당시 북미 정상은 비핵화 협상 재개를 위한 실무협상을 조속히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김명길 대사가 북측 실무협상대표로 나설 것으로 알려졌으나 실무협상 개최 소식에는 진전이 없었다. 오히려 북한의 잇따른 단거리 탄도미사일 시험발사에 북미 대화의 모멘텀은 좀처럼 잡히지 않기만 했다.

【서울=뉴시스】 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1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 청사에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4차 전원회의'를 주재했다고 11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회의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의 기본 취지와 당의 입장을 밝히며 "우리의 힘과 기술, 자원에 의거한 자립적 민족경제에 토대하여 자력갱생의 기치 높이 사회주의 건설을 더욱 줄기차게 전진시켜 나감으로써 제재로 우리를 굴복시킬 수 있다고 혈안이 되어 오판하는 적대세력들에 심각한 타격을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2019.04.11. (출처=노동신문)  photo@newsis.com
북미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9월 리비아 모델을 비판하며 '새로운 방법'을 언급한 것을 계기로 스톡홀름 실무협상에 나섰지만 입장 차이를 재확인했다. 북측 대표인 김명길 순회대사는 협상 결렬 직후 "미국이 아무것도 들고 나오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당분간 협상은 없다고 밝혔다. 반면 미국은 "싱가포르 합의 진전을 위한 많은 계획을 소개했다"며 수주 내에 실무협상을 다시 열기를 원했다.

미국의 기본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판단한 북한은 협상 채널을 닫다시피 하고 압박을 거듭했다. 대조선 적대 철회를 요구하는 담화에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원색적 비난 표현이 등장했고,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관련 '중대 시험'이 진행됐다. 북한이 연말 시한을 앞두고 ICBM 발사에 나설 수 있다는 위기론이 제기되면서 한반도의 긴장 수위는 최고조로 끌어올려졌다.

다행히 연말은 도발 없이 지나갔지만 북한은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대북제재라는 난관을 자력갱생으로 '정면돌파'하겠다고 강조하는 한편,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에 따라 한미연합훈련이 진행되는 오는 3월 북한이 도발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지만, 북한이 중국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에 사활을 걸고 있어 당분간 도발 가능성은 낮아진 상태다. 

【판문점=뉴시스】박진희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30일 판문점 자유의 집에서 북-미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2019.06.30. pak7130@newsis.com
북미는 비핵화 협상을 재개하더라도 올해를 넘길 가능성이 높다. 톱다운 협상을 이끌어온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 레이스에 집중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도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을 따져보며 협상에 임할 전망이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면 인력 교체 등으로 내년 상반기까지 별 액션이 없을 가능성이 크고,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된다면 내년 초 정도에 움직일 수 있다"고 예측했다.

북한도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을 마감하고, 노동당 창건 75주년을 성대하게 기리기 위해 경제성과 도출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비핵화 협상 대가로 대북제재 완화를 얻어내는 것은 힘든 만큼 증산, 기술 선진화 등을 독려하는 데 국가 역량을 집중할 전망이다. 보건 인프라가 취약한 북한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국경폐쇄 조치를 취하고 대중 교류를 제한하고 있어 경제 살리기에 더욱 안간힘을 쏟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양국의 협상 담당자들이 대거 교체된 것도 당분간은 대화 재개 가능성이 낮은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은 싱가포르·하노이 회담의 최전선에 있던 김영철 통일전선부장과 리용호 외무상을 직에서 배제하고 대미 협상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은 장금철과 리선권을 후임으로 임명했다. 미국 실무협상팀도 스티븐 비건 대북특별대표의 부장관 승진, 알렉스 웡 대북특별부대표의 유엔 발령 등으로 모두 흩어졌다.

【스톡홀름=AP/뉴시스】북미 실무협상 북측 수석대표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가 5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의 북한 대사관 앞에서 성명서를 낭독하고 있다.  김명길 대사는 성명을 통해 “미국과의 협상이 우리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결렬돼 매우 불쾌하다”라며 “미국이 구태의연한 입장과 태도를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모건 오테이거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북한 실무진과 좋은 논의를 했다"면서 2주 이내에 북미 간 실무협상을 재개하는 내용의 스웨덴 측 초청을 수락했으며 북측에도 이를 제안했다고 밝혔다. 2019.10.06.
그러나 북미가 협상 테이블에서 다시 마주 앉는다 해도 결과는 낙관하기 쉽지 않다. 미국 내에서 톱다운 방식의 싱가포르·하노이 회담에 대한 회의론이 커져 있는데다, 북한도 제재 완화를 비롯한 상응조치 요구를 수용하는 조건에서만 협상을 열겠다는 입장이 확고하다. 박 교수는 북미 대화 성립과 관련, "북한이 전향적인 비핵화 조치를 수용하느냐가 관건이고, 미국의 상응조치도 그에 맞게 진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fine@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