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다음주 재판재개…사법농단 잇단 무죄에 미소?

기사등록 2020/02/15 13:45:12

양승태, 폐암 수술…두달만 재판재개

안태근 판결서 '인사재량권' 넓게 봐

'블랙리스트' 판결 직권 남용 엄격히

'사법행정권 남용' 판결 줄줄이 무죄

[서울=뉴시스]이윤청 기자 = 사법농단 의혹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해 12월1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52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19.12.18. radiohead@newsis.com
[서울=뉴시스] 옥성구 기자 =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폐암 수술을 받아 재판이 잠시 멈췄던 가운데, 재판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판결들이 연달아 나오면서 양 전 대법원장을 '흐뭇'하게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15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판사 박남천)는 오는 21일 오후 2시 양 전 대법원장 등의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 54차 공판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는 양 전 대법원장이 폐암 의심 진단을 받고 지난달 수술을 받으면서 지난해 12월20일 공판을 끝으로 재판이 잠시 멈춘 뒤 두 달 만에 다시 열리는 것이다.

재판이 수술로 멈춘 동안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관련 판결이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판결들이 여럿 나왔는데, 이같은 판결들이 사실상 양 전 대법원장에게 유리하게 나왔다는 것이 법조계의 주된 평가다.
[서울=뉴시스] 최진석 기자 = 서지현 검사를 성추행하고 인사 불이익을 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안태근 전 검사장이 지난달 9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구치소에서 석방돼 나오며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2020.01.09.myjs@newsis.com
후배 검사를 성추행하고 인사 불이익을 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안태근 전 검사장 판결은 그 시작이었다. 대법원은 지난달 9일 안 전 검사장의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 상고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특히 검찰 인사 재량권을 넓게 보고 안 전 검사장이 인사 담당 검사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양 전 대법원장 혐의 중에는 대법원에 비판적 견해를 드러낸 판사들을 희망하지 않는 근무지에 배치하는 방법 등으로 인사 불이익을 주도록 담당 심의관에게 지시한 혐의가 있다.

안 전 검사장 상고심에서 검찰 인사 재량권이 넓게 해석된 만큼 법관에 대한 인사 재량권의 해석 범위가 넓게 판단된다면 양 전 대법원장의 인사 불이익 지시 혐의 역시 처벌이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첫 판결인 유해용 전 대법원 재판연구관의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에 대한 무죄 판결 역시 양 전 대법원장을 미소 짓게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부장판사 박남천)는 지난달 13일 "유 전 연구관이 문건 작성을 지시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전달하거나 공모한 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무죄 판결했다.

유 전 연구관의 혐의는 양 전 대법원장과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지만,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첫 판결이 무죄로 나온 만큼 상징성이 있었다.
[서울=뉴시스]김선웅 기자 =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외 6명에 대한 항소심 선고를 내리고 있다. 2020.01.30. mangusta@newsis.com
또 대법원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를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본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 상고심은 특히 양 전 대법원장을 함박웃음 짓게 할 수 있는 판결이었다.

대법원은 지난달 30일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의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 상고심에서 각각 유죄를 인정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직권남용죄의 구성 요건이 되는 '의무 없는 일'에 대해 보다 엄격하게 심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판단 기준에 따르면 직권남용죄를 적용함에 있어서 직권에 포함하고 이를 남용한 것인지에 더해 공무원이 지시받고 한 행위가 '의무 없는 일'인지도 다퉈봐야 한다. 직권남용죄 법리 적용이 더 복잡해진 것이다.

양 전 대법원장이 받는 혐의 중 핵심은 사법행정의 최고 책임자 권한을 남용해 판사들에게 업무범위를 벗어난 부당한 지시를 했다는 것이다. 실제 재판에서는 이같은 지시가 대법원장의 권한을 넘어 위법한 것인지를 두고 첨예한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이에 더해 양 전 대법원장은 대법원 판단을 근거로 자신의 지시를 수행한 법관들의 행위가 과연 '의무 없는 일'인지도 직권남용죄 적용에 엄격하게 판단돼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게 됐다.
[서울=뉴시스]김선웅 기자 = 양승태 사법부 시절 검찰 수사자료를 법원행정처에 누출한 혐의로 법정에 선 신광렬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가 지난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후 법정을 나서고 있다. 2020.02.13. photo@newsis.com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현직 판사들에 대한 판결 역시 줄줄이 무죄가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판사 유영근)는 지난 13일 '정운호 게이트' 수사기록을 유출한 혐의로 기소된 신광렬·조의연·성창호 부장판사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신 부장판사 등의 행위가 사법행정 차원의 보고였을 뿐, 직무상 정당성을 갖는다고 무죄 이유를 설명했다. 재판부가 사법부 내부의 공모 관계를 인정하지 않은 만큼 이 역시 양 전 대법원장에게 유리한 판결로 평가된다.

아울러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임성근 서울고법 부장판사도 무죄 판결을 받았다. 임 부장판사는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으로 근무하며 가토 다쓰야 사건, 민변 관련 사건 등에 직권을 남용해 재판에 개입한 혐의 등을 받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판사 송인권)는 지난 14일 임 부장판사의 행위를 대부분 사실로 인정하면서도 "형사수석부장이 독자적인 사법행정권이 없고 형사책임을 지게 하는 것은 범죄구성요건을 확장 해석하는 것"이라며 무죄 판단했다.

법관에게 재판에 개입할 직권이 없다고 판단한 임 부장판사의 판결은 일제 강제징용 소송 등 재판에 개입한 혐의를 받는 양 전 대법원장에게 또 하나의 무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장 역시 재판에 개입할 직권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양 전 대법원장이 폐암 수술을 받으며 재판이 멈춘 동안 연이어 미소지을 만한 판결들이 나오면서 향후 양 전 대법원장 측은 이같은 판결들을 다양한 재판 전략으로 활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공감언론 뉴시스 castlenine@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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