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편함 속 문서 입주민 소유…문서 효용 해한 것"
재판장은 우편함에 투입된 문서는 해당 우편함의 입주민 소유이며, 이를 회수한 행위는 문서의 효용을 해한 것이라는 판단을 내놓았다.
광주지법 형사1단독 박옥희 판사는 문서은닉 혐의로 약식기소된 A(71)씨에게 벌금 50만 원을 선고했다고 9일 밝혔다.
관리소장으로 일하던 A씨는 2018년 11월 광주 모 아파트에서 관리사무소 직원과 경비원에게 '불법 우편물이 투입되고 있다. 이를 수거해 관리사무소에 가져다 달라'고 지시, 관리사무소 직원과 경비원이 아파트 3개동 우편함에서 해당 문서를 담은 봉투를 회수하도록 하는 등 입주민들이 문서의 내용을 읽지 못하게 한 혐의를 받았다.
이 아파트 입주민 B씨와 C씨는 관리사무소 직원들의 임금 인상과 관련한 주민 의견 수렴 안내 공고문에 대해 반대하는 내용의 글을 담은 문서를 각 세대 우편함에 투입했다.
앞서 입주자대표는 입주자대표회의에서 관리사무소 직원들의 급여를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또 이에 대한 입주민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공고 절차를 진행했다.
A씨와 변호인은 재판 과정에 '회수한 문서는 입주민 의사와 무관하게 우편함에 투입된 것으로, 이를 회수한다 해도 문서의 효용을 해했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아파트 관리규약에 위반해 투입된 만큼 이를 회수한 것이다. 건축물의 관리책임자는 우편함을 사용에 지장이 없도록 관리해야 할 의무가 있다. 문서 내용 자체가 부당한 것이며, 입주민의 의견수렴 절차를 거치기 전에 배포된 것'이라고 항변했다.
재판장은 "아파트 각 세대에는 입주민을 위한 우편함이 설치돼 있다. 그 우편함이 누구든지 그 안에 우편물 기타 문서를 투입할 수 있는 상태로 유지·관리되고 있었다면 해당 입주민의 의사는 우편함에 투입되는 우편물, 기타 문서를 본인이 소유하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를 회수했다면 이는 해당 입주민 소유 문서의 효용을 해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판장은 "B씨와 C씨는 관리주체의 동의를 얻지 않고 문서를 각 세대 우편함에 투입했다. 그러나 이는 광고물·표지물 또는 표지를 설치하거나 부착한 것이라고 볼 수 없어 아파트 관리규약에 따른 관리주체의 동의를 필요로 하는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또 "B씨와 C씨는 임금인상을 위한 관리비 지출에 관해 반대 의견을 개진하고, 보다 많은 입주민이 반대 의견에 동조하도록 하기 위해 각 세대 우편함에 해당 문서를 투입했다. 이를 회수해 입주민이 문서의 내용을 아예 접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라고 볼 수도 없다"고 밝혔다.
재판장은 "B씨와 C씨의 문서 투입은 입주민의 의견 수렴을 위한 정보 제공 행위로 볼 수 있다"며 A씨의 행위를 유죄로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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