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이상홍·김명기·권은혜·김예림, 국립극단 70주년 빛낼 배우들

기사등록 2020/02/02 12:51:09 최종수정 2020/02/05 10:15:00

국립극단 2020-2021 시즌제 배우들

[서울=뉴시스] 2020-2021 시즌단원 이상홍. (사진 = 국립극단 제공) 2020.02.02. realpaper7@newsis.com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우리 연극배우 판에는 보석 같은 공간이 있다. 국립극단 시즌단원제가 그것이다. 대학로에서 내공을 갈고 닦은 배우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2010년 전속단원제를 폐지한 국립극단은 2011년 재단법인으로 독립한 이후 2015년 시즌단원제를 도입(2018년 기존 1년에서 2년으로 재편)했다.

2020~2021 시즌을 함께하는 단원 14명이 관객들을 맞을 채비에 한창이다. 이번에 서류를 접수한 배우들이 600명가량이었으니, 어림잡아도 경쟁률은 40대 1이었다.

연기에 순위를 매길 수 없는 만큼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라는 '숫자 우위'의 표현은 쓰지 않으련다. 그럼에도 이들이 수많은 배우들 중에서도 개성을 인정받았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겠다.

14명의 배우 중 맏형인 배우 이상홍을 비롯해 김명기, 권은혜 그리고 막내 김예림 등 네 배우를 최근 서계동 국립극단에서 만났다. 올해 이들은 각각 국립극단의 세 작품씩 나눠 나온다. 올해는 국립극단이 70주년을 맞는 해라 더 의미가 있다. 각자 인터뷰 내용을 키워드로 정리했다.

◇이상홍, 연기철학과 생업의 조화 고민

▲데뷔 21주년 : 1999년 '신기루'로 연극계에 입성했다. 어느새 데뷔 20주년을 넘긴 배우가 됐다. 이상홍은 데뷔작 공연 당시를 잊을 수가 없다. '신기루'는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했던 작품. 당시만 해도 예술의전당과 건너편을 연결하는 횡단보도가 놓여 있지 않았을 때다. 지하도만 존재했다. 그런데 '신기루'를 관람하러 온 이상홍의 친형이 무작정 도로를 건너다 갈비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겪은 뒤 서울시에서 바로 횡단보도를 만들었단다.

▲국립극단 시즌제 4수생 : 2000년대 초반 극단 '동(動).시대'에서 활약한 이상홍은 영화 '실미도'에서 인간병기로 길들여진 훈련병을 연기하는 등 영화계에도 발을 들였다. 이후 연극과 매체를 오가며 활약 중이다.

이상홍은 국립극단 시즌제 단원 4수생이다. 지원할 때마다 거의 서류는 통과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합류가 불발됐다. '삼국유사 프로젝트'의 '멸', '그리스 희극 3부작' 중 하나인 '구름', '혜경궁 홍씨'에 출연하며 국립극단 작품과 인연을 맺어오기는 했다. "그 때마다 느낌이 좋았고 연극인들이 모이는 술자리에서 이성열 예술감독님과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고 전했다.

[서울=뉴시스] 2020-2021 시즌단원 김명기. (사진 = 국립극단 제공) 2020.02.02. realpaper7@newsis.com
▲세 아이 아빠의 현실적 고민과 연기철학 : 그는 자녀만 3명인 아빠다. 좋은 작품에 출연할 오디션이 부족한데다 그나마 출연하게 된 연극 공연 때는 경제적으로 가정을 꾸려나가기 힘들어진단다. 2년 간 안정적으로 꽤 많은 금액을 받을 수 있는 국립극단 시즌제 단원으로 뽑혀 감사하기는 하지만 다른 고민도 생긴다. 다른 프로젝트에 출연할 수 있는 기회를 버려야 하니까. 어떻게 하면 내 연기인생과 생업이 조화를 이룰까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연극계 전체로 볼 때는 한국연극인복지재단을 비롯해 혜택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그런데 어쩔 수 없는 사정 때문에 해당 기준에 벗어날 때가 있는데 그런 부분이 더 반영됐으면 한다.
 
▲라떼는 말이야 : 기성세대가 자주 쓰는 '나 때는 말이야'를 풍자하는 표현이다. 이상홍이 이번 시즌제 단원 중 맏형이라 과거 이야기를 자주 하다 보니 별명처럼 됐다. 하지만 그의 태도는 열려 있다. 술자리에서 술을 사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워크숍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다며 젊은 배우 못지않게 배움에 대한 갈망도 드러낸다. "이번에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Royal Shakespeare Company·RSC)가 국립극단 초청공연에 오지 않나. 공연과 함께 그 분들의 노하우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유학을 가지 못하는 배우들을 위해 해외 연극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레지던스 운영도 있었으면 한다."

◇김명기, 캐릭터보다 배우 김명기 

▲데뷔작은 뮤지컬 : 2005년 유신정권의 재야운동가 장준하 선생을 소재로 한 뮤지컬 '청년 장준하'의 앙상블로 데뷔했다. 당시 류정한, 조승우 등이 출연한 '지킬앤하이드'의 흥행 돌풍으로 뮤지컬 제작에 붐이 일었다. '청년 장준하' 오디션에서 가곡 '봉선화'를 너무 진지하게 부르는 김명기의 모습에 심사위원들 사이에서 웃음보가 터졌단다. 이후 현대극장 뮤지컬 '장보고' 등에 출연하기도 했다.

▲극공작소 마방진 : 2007년에 고선웅 예술감독이 이끄는 극공작소 마방진 1기 단원으로 뽑혔다. 오디션에서 고 감독과 한참 대화를 나눈 뒤 입단했다. 마방진의 배우 훈련 시스템은 특별하다. 하루 3시간, 1주일에 6일 총 3개월 동안 걸으면서 묵언수행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렇게 800㎞를 걸어야 이 극단의 정단원이 될 수 있다. 

▲대표작은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 김명기는 그간 출연한 작품이 모두 대표작이지만 그 중에서도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잊지 못할 작품으로 꼽았다. 이 작품은 고선웅 연출과 국립극단이 협업한 작품. 김명기는 이 작품에서 사람이 아닌 사냥개 역인 '신오'를 연기했다. 이 역에 대해 고민이 많았는데 고선웅 감독이 "네가 개라고 생각해라"라고 주문하는 순간, 몰입이 됐고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호평을 들었다. 이 작품은 국립극단의 대표 레퍼토리로 70주년을 맞는 올해도 공연하고 김명기도 나온다. 

▲캐릭터보다 배우 김명기의 존재감 : 김명기는 15년간 프로로 연기를 하면서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뿐 아니라 '나는 살인자입니다' 등 여러 작품을 통해 캐릭터를 인정 받았다. 하지만 '배우 김명기'는 아직 관객들이 인지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자가진단이다. 이제 마흔이 넘는 배우가 됐으니 배우로서 자신의 이름에 책임을 지고 싶단다. 결혼한 지 3년이 됐고 아이도 낳아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책임감도 늘었단다. 다양한 세대의 연출, 다양한 스타일의 예술가들과 안정적으로 협업할 수 있는 국립극단과의 작업에도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서울=뉴시스] 2020-2021 시즌단원 권은혜. (사진 = 국립극단 제공) 2020.02.02. realpaper7@newsis.com
▲민간 연합 오디션 : 대학로에는 인맥으로 하는 캐스팅이 많다. 국립극단을 비롯해 몇몇 국공립 극장을 제외하면 제대로 된 오디션 기회도 드물다. 민간 극단의 연합 오디션을 김명기가 제안하는 이유다.

◇권은혜, 에너지틱한 배우

▲춤추는 소녀 : 2012년 오세혁 작가가 쓰고 최현미가 연출한 극단 걸판의 '춤추는 민원실'에서 춤추는 소녀로 데뷔했다. 체대 출신으로 수영 강사를 하기도 했던 권은혜는 움직임이 좋은 배우로 이 연극의 율동신을 직접 만들기도 했다.

▲극단 여행자 : 2013년 극단 여행자에 들어가 산울림 소극장에서 일본 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원작인 바탕인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이대웅 연출과 작업했던 순간이 권은혜의 전환점이다. 당시 이 연출이 젊은 피들과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고 하면서 그녀가 배우로 발탁됐다. 네 달 동안 합숙을 하면서 준비했는데 그 기간들은 연극을 대하는 근육을 길러준 시간들이었다고 돌아봤다. "연극을 하는데 밑바탕이 됐다"는 것이다.

▲독립 : 권은혜는 국립극단 시즌단원에 뽑힌 동시에 독립도 꿈꿀 수 있게 됐다. 그간 부모님하고 함께 살았는데 경제적으로도 독립이 가능하게 됐다는 것이다. 극단 활동을 중심으로 하다 보니 다른 연극계 사람들과 만날 기회도 드물었는데 이번에 국립극단을 중심으로 여러 사람들과 만날 기회를 갖게 됐다며 즐거워했다. "새로 학교에 들어온 것 같아 설렌다"며 웃었다.

▲배움 : 권은혜도 역시 연극 관련 워크숍이 더 많이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연극을 하는 사람으로서 더 체험하고 싶은 것이 많다"는 것이다. "정부의 지원이 더 늘어 국립극단에서 하는 워크숍 문이 더 많은 배우들에게 열렸으면 한다."
 
◇김예림, 국립극단 최연소 시즌단원

[서울=뉴시스] 2020-2021 시즌단원 김예림. (사진 = 국립극단 제공) 2020.02.02. realpaper7@newsis.com
▲막내 : 1992년생인 김예림은 이번 국립극단 시즌단원 중 막내일 뿐만 아니라 역대 시즌제 최연소 단원이기도 하다. 그녀는 "배우에게 좋은 시스템이다. 2년 동안 오롯이 작품, 연기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까. 반신반의하며 지원을 했는데 합격을 해서 기쁘다"며 봄바람처럼 웃었다
 
▲데뷔와 성장 : 대학생이던 2011년 페스티벌 참가작 연극 '꿈속에서'에서 아낙네를 연기하기는 했다. 그런데 실질적 데뷔작인 2015년 연극 '밑바닥에서'에서 맡았던 '나타샤'다. 졸업과 동시에 맡았던 큰 역이었다. 이후 자신의 연기 이력이 잘 풀릴 줄 알았는데 이후 1년 동안 오디션 서류에서 줄줄이 낙방을 했단다.
 
▲전환점 : 그러다 스물일곱 살 때, 이미 매료돼 있던 '에쿠우스' 오디션에서 '질 메이슨' 역에 덜컥 합격하면서 전환점이 생겼다. "작품이 주는 힘 자체가 큰데다가 대사들이 절절했던 제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 같다"고 여겼다. "제게 달려본 적이 있는지 묻는 작품이었고, 연기에 부스터가 된 작품이었다. 아직도 심장을 뛰게 해준다"고 말했다.

▲오래 연기하기 위한 쉼 :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종종 연기가 자신에게 '양날의 검'이 될 때가 있다고 털어놓았다. "평생 연기를 하고 싶은데 어쩔 수 없이 찾아오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환기하는 것이 좋을까"가 요즘 고민하는 내용이다. 운동을 통해 풀 수 있을 것 같고, 다른 직업을 함께 가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연기를 즐길 수 있도록 새로운 취미를 가질 계획이다. 

▲연극 관련 수업이 많아졌으면 : 연극인복지재단 아카데미의 경우 수업료도 저렴하고 커리큘럼도 만족스럽단다. 그런데 수강생의 제한이 10여명이나 많은 사람들에게 기회가 제공되지 않는 점은 아쉬워했다. 국립극단을 비롯 많은 기관에서 배우들의 역량을 높일 수 있는 수업이나 워크숍을 좀 더 많이 열었으면 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