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년전 원나라 전한 독성 식물, 탐라인들 지혜 깃든 음식으로
속이 더부룩한 단점, 소화효소인 무 곁들여 '소박한 맛' 탄생
실향민에겐 '망향 음식' 관광객·젊은이엔 '영양 간식'으로 각광
빙빙 돌려서 만드는 떡이 많이 있겠지만, 이름은 그렇다 해도 만드는 방법만은 이 의태어가 주는 의미만큼 간단해 보인다.
대충 그려보면 고운 메밀을 빻아 가루로 만들어 반죽을 만든다. 프라이팬에 그 반죽을 두르고 전 지지듯 지져내 익힌 무채로 싸면 끝이다. 요즘 들어 몸에 좋다고 해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 메밀로 만든 건강떡이다.
이름 중에는 전기떡, 쟁기떡, 멍석떡 등도 있다고 하지만 제주도에서는 대부분 빙떡으로 불리운다.
◇고기국수, 몸국 등과 함게 '제주도 향토음식 20선'에 올라
이때 사용하는 기름은 식용유다. 지금이야 온갖 종류의 식용유가 지천이지만 옛날 기름이 귀한 시절에는 돼지기름을 이용했다.
1년에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몇 번 하는 동네 돼지 추렴에 한 몫 붙어, 고기는 고기대로 가져오고 덤으로 기름을 얻어다 바짝 졸여 라드(lard·돼지고기 지방을 녹여 표백,여과, 수소를 첨가해 만듬)로 만들어 둔 것을 솥뚜껑에 둘러 지져냈다. 프라이팬이 없던 시절 제주 사람들에게도 솥뚜껑은 전을 지지는 유일한 주방용품이었다.
제주도를 자주 여행 해본 사람들은 혹시 제주시 민속오일장이나 향토음식 전문매점에서 맛 봤을 지도 모르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는 낯선 음식이다.
빙떡은 고기국수, 몸국 등과 함께 제주도와 제주대가 공동으로 펴낸 ‘제주도 향토음식 20선’에 올라있다.
◇오사카 한인시장 대표적인 제사음식은 빙떡과 산적
일본 오사카 이쿠노쿠(生野區) 한국인 시장에 가면 제주도의 제사상에 오르는 음식을 맛볼 수 있는데, 대표적인 게 빙떡과 산적(散炙)이다.
아마도 어렸을 적 가난을 이기려고 아니면 4·3사건이나 6·25 전쟁을 피해 일본으로 건너간 재일제주인 1세대들이 고향 제주를 잊지 못해 이런 제사음식을 만들어 내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그분들에겐 추억의 음식이다.
고향을 떠난 50대 이상의 사람들에겐 망향(望鄕)의 음식이고. 제주도에 사는 사람들과 관광객들에겐 건강식으로, 젊은 사람들에게는 뉴트로 푸드으로 의미부여가 가능하다.
빙떡 맛을 딱히 무엇이라고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어떤 이는 담백한 맛이라고도 하고, 어떤 이는 소박한 맛이라고도 하는데, 한마디로 표현 할 수 없다.
제주향토음식보전연구원 양용진 원장은 “심심하면서 메밀의 깊고 은은한 향이 느껴진다”며 “요즘 사람들은 그 맛을 느끼기가 힘든데, 만약 육지에서 온 분이 이를 먹고 은은한 향을 느끼면 제주사람이 다 된 것이다”고 말했다.
빙떡은 아주 맛있게 먹는 방법이 있다. 제주도의 특산물인 말린 옥돔구이와 함께 먹는 방법이다. 짭조름하게 구워진 옥돔이 빙떡의 이런 맛을 보충해 주면서 현대의 기름지고 달짝지근한 요리와는 아주 다른 독특한 맛을 느끼게 해준다.
점심시간이 한 참 지난 시간, 가끔 사무실에 누군가의 한턱거리로 빙떡 한 상자가 배달된다. 3만∼4만 원정도 하는데 10명 정도가 먹을 수 있는 양이다. 웬걸 그 유래를 모르는 젊은이들도 맛있게 먹는다.
미각중추가 피자 맛으로 길든 젊은이들도 “맛있다” 하면서 먹는 걸 보고 제주사람들에게만 전해지는 ‘빙떡맛 DNA’가 있음을 실감한다. ‘밋밋하면서도 은은한 향’을 느끼는 DNA다.
빙떡의 유래는 기록이 없어서 정확히 알 수 없다. 몇몇 항토음식 연구가들이 옛날부터 전해오는 구전(口傳)을 바탕으로 만들어 전해주는 스토리가 있을 뿐이다.
빙떡의 주재료가 메밀인 것으로 봐 메밀이 제주도에서 재배된 역사를 거슬러 따져 보고 이를 빙떡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시대로 보고 있다.
메밀은 연대로는 탐라가 고려 말 100년간 원(元)의 지배를 받을 때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600∼700년 전이다.
구전은 지배했던 원의 관료들이 탐라총관부 시절 제주사람들을 골탕 먹이기 위해 소화도 잘 안되고 독성이 있는 작물로 알려진 메밀을 전해 줬다는 얘기로 구성된다.
대부분 설화가 ‘고생 끝에 낙’이거나 ‘해피엔딩’ 프레임이 듯, 이 구전 또한 ‘독(毒)이 약’이 되는 틀로 전해지는 게 흥미롭다.
양용진 원장에 따르면 원 나라의 관리들이 메밀을 제주도에 재배하고 이를 제주사람들에게 줘 먹도록 한 것은 “독성이 있는 메밀을 제주 남자가 먹도록 해 그 ‘씨’를 말리려는 뜻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제주사람들은 이를 듣고 등골이 오싹했을 터이지만, 현대 의학적 관점에서 보면 음식으로 남자의 정자가 줄어들거나 없어졌다는 문헌이 없는 것으로 봐 이런 깜깜무식이 세상에 없다. 그런 용도라면 ‘독약’이라고 할 수 있는데, 메밀을 독약으로 생각해 이를 제주사람들이 먹도록 했다는 것으로, 웃기는 얘기다.
현대 영양학은 메밀이 식이섬유·단백질·루틴 등 영양소가 풍부하고 특히 혈관을 건강하게 하는 곡식으로 규정한다. 칼륨·엽산·마그네슘·섬유질을 비롯해 8종의 필수 아미노산이 풍부하다.
제주 사람들은 몇 백 년 전부터 체험적으로 이를 알아채고 빙떡을 만들어 냈다. 빙떡뿐이 아니다. 메밀로 밥도 해 먹었고 국에도 넣었고, 죽도 쑤어 먹었다.
◇메밀 속껍질이 더부룩한 느낌 줘 이걸 '독'으로 착각
메밀 범벅은 빙떡에 버금가는 전통음식이다. 조베기나 칼국수는 건강식 중 건강식으로 꼽는다. 꿩메밀 칼국수는 어떤가. 제주에 오는 관광객이 한번은 먹고 가야 할 음식이다.
메밀에 독성이 있다고 하는 이유는 알갱이가 삼각뿔 모양으로 수확되고, 이게 도정이 잘 안 돼 속껍질을 같이 갈아서 먹을 경우 속이 더부룩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원나라 관리들은 이걸 독이 있는 것으로 여겨 제주사람들에게 줬다는 것이다.
어쨌든 제주사람들은 이것을 받았으나 그대로 먹지 않고 소화효소가 풍부하고 제주의 토양에서 잘 자라는 무와 함께 전병을 만들어 먹었다. 여기에 들어간 무는 원래는 제주 토착형인 ‘단지무’였다.
피지배 백성으로 고통을 겪던 제주 백성들이 원의 벼슬아치들이 악의로 건넨 메밀을 빻아 가루를 만들고, 여기에다 소화효소제인 무를 더해 빙떡으로 만들어 당대의 훌륭한 건강식을 탄생시킨 것이니, 그 지혜가 놀랍다.
메밀은 제주도에서도 제주시 동부지역에서 특히 많이 재배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동부지역은 빌레왓(‘돌밭’의 제주어)이 많아 예부터 메밀농사를 많이 지었다. 메밀이 이 같이 풍부하니 자연스레 명절이나 제사음식으로 이용됐다. 서부지역은 콩이 많이 나니까 '둠비(두부의 제주말)'적을 올렸고. 동부지역은 메밀청묵적을 올렸다 한다.
빙떡이 둥그런 모양으로 만들어 지는 것은 보자기 모양을 딴 것이란다. “제사 음식을 먹으러 오는 조상님께서 돌아가실 때 음식을 여기에 싸 갖고 가시도록 하는 배려에서 이렇게 만들어 졌다”고 양 원장은 설명했다.
◇글루텐 함량이 적어 전병 부치는 기술 필요
앞에서 빙떡을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고 했지만, 나름 기술은 필요하다. 메밀가루로 얇게 전병을 부치고 그 안에 팥고물이나 양념한 무채를 속에 넣는다.
의례음식으로는 원래 소로 팥고물을 넣었으나 요즘에는 무채를 넣는다. 메밀에는 점탄성을 주는 글루텐 함량이 적어 쉽게 찢어지기 때문 전병을 부치는 기술이 필요하다.
요즘에는 완전히 메밀로 만 만든 빙떡은 보기 어렵다. 양 원장은 “메밀이 쫄깃쫄깃한 맛이 없기 때문 점착력이 생기도록 계란흰자를 넣거나 찹쌀이나 밀가루를 섞어서 만든다”며 “대략 10% 정도를 섞는다”고 덧붙였다.
①메밀가루에 소금과 잘 풀어 놓은 달걀과 미지근한 물을 부어 반죽한다.
②달궈진 팬에 식용유를 두른 후 여분의 식용유를 닦아내고 메밀반죽 한 국자를 떠서 팬에 붓고 국자로 반죽을 밀면서 얇게 원형으로 펴서 익힌다.
③다 익으면 윗 부분의 색이 변하면서 가장자리가 약간 들리는데 그 때 꺼내면 된다.
④대나무로 만든 밑이 둥근 소쿠리를 엎어서 팬에 닿았던 부분이 위로 올라오게 놓고 그 위에 준비해 중 무채 속을 넣고 둘둘만 후 가장자리를 꾹 눌러준다.’
이 책은 ‘20㎝ 크기의 빙떡 한 개에는 85Kcal의 열량과 3g의 단백질, 3g의 지방이 들어 있다’고 밝혔다.
빙떡은 아쉽게도 이것만 오로지 만들어 파는 전문 매장이 없다. 자세한 이유는 모르지만 아마 이것만 만들어 파는 것이 큰 장사가 안되기 때문으로 보인다. 빙떡 속에는 무 무침이 들어가야 하는데, 이 무침이 매우 상하기 쉬워 저장이 어려운 것도 이것만 전문적으로 만들어 파는 것을 어렵게 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향토음식점이라고 해서 모두 빙떡을 만들어 판매하지도 않는다.
제주도청에 등록된 자료에 따르면 제주시 정든로(이도이동)에 메밀국수와 함께 파는 곳이 있고, 연동 에도 이 기사를 작성하면서 인터뷰한 양 원장이 직접 경영하는 낭푼식당에 가면 빙떡을 먹을 수 있다. 이외에는 민속오일장과 제주시 전통재래시장 등에서 파는 곳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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