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1979년 미대사관 억류 52명 연관된 "이란 52곳 공격"
로하니, 1988년 미 오인사격에 숨진 290명 "기억하라"
[서울=뉴시스] 이재우 기자 = 미국이 지난 3일 이라크에서 거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을 살해한 이후 미국과 이란간 신경전이 격화되고 있다. 1979년 테헤란 주재 미 대사관 점거사건, 1988년 이란항공 655편 격추사건 등 수십년간 쌓여왔던 양국간 구원(舊怨)이 솔레이마니 사망을 계기로 폭발하는 모양새다.
6일(현지시간) AP통신과 이란 국영방송 등 외신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4일 솔레이마니 사후 보복을 다짐하고 있는 이란을 향해 이란이 미국 시설들을 타격할 경우 미국은 매우 신속하고 강력하게 52곳의 이란 목표물들을 겨냥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에 "미국은 이미 이란과 이란 문화에 매우 중요한 52곳의 목표물들을 선정해 놓았다. 이란이 미국을 공격한다면 매우 신속하고 강력하게 이들에 대한 공격이 가해질 것"이라며 "미국은 더이상 위협받는 것을 원치 않는다"라고 으름장을 놨다.
그는 목표물이 52곳인 것에 대해서는 1979년 이란혁명 이후 테헤란 주재 미 대사관 외교관과 직원 52명이 444일간 됐던 것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란 대학생들은 1979년 11월4일 미국 정부가 이란혁명으로 권좌에서 쫓겨난 리자 샤 팔레비에게 췌장암 치료를 이유로 입국허가를 내주자 분노해 테헤란에 위치한 미국 대사관 담을 넘어가 외교관과 직원 90명을 인질로 잡았다.
이들은 여성과 흑인을 풀어준 뒤 52명을 인질로 잡고, 미국 정부에 레자 샤 팔레비의 즉각적인 인도를 요구했다. 1980년 4월24일 지미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은 특공대원을 투입해 인질을 빼내오려 했지만 작전은 실패하고 특공대원 8명만 죽거나 다쳤다.
결국 이듬해 1981년 1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취임식에 맞춰 인질들이 풀려나면서 테헤란 미 대사관 점거 사태는 444일 만에 종결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단절된 양국 외교관계는 40년이 넘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산 로하니 대통령은 6일 테하란 미 대사관 인질 사건을 꺼내는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1988년 미 해군 함정의 오인 사격으로 민간인 290명이 숨진 이란항공 655편 격추 사건을 언급하며 맞섰다.
로하니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 올린 글을 통해 "숫자 52를 언급하는 사람들은 290이라는 숫자도 기억해야 한다"며 "절대 이란을 위협하지 마라"고 응수했다.
이란 국영방송과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290이라는 숫자는 지난 1988년 7월3일 이란 영공인 호르무즈해협 상공에서 미국 해군 이지스함 빈센스함의 미사일이 피격돼 사망한 이란항공 655편 승무원과 승객 290명(어린이 66명 포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1988년은 이란-이라크 전쟁 말기로 이라크를 지지하던 미국은 국제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해협 항로를 보호하기 위해 페르시아만 일대를 순찰하고 있었다.
하지만 공격 시점에 빈센스함은 공해가 아닌 이란 영해에 진입해 있었고 이란항공 655편은 이란 영공에 있었다. 해당 함장은 이란항공 655편을 이란 공군 F-14 전투기로 오인해 공격했다고 주장했지만 이란 정부는 민항기임을 알고도 격추했다고 맞섰다.
이란 방송은 이란 해역에 떨어진 기체 잔해 사이로 시신들이 떠 있는 장면을 방송으로 내보냈고 미국은 한달간 자체조사 뒤 교전지역에 민항기 비행을 허가한 이란이 책임을 져야한다면서 해당 함장과 승무원에게는 어떠한 과실도 없다고 면죄부를 줘 이란내 반미 감정에 기름을 부었다.
유가족들은 1989년 미국을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했고 1996년 양국 정부간 합의에 따라 소송이 취하됐다. 미국은 끝내 격추사건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고, 다만 인명 손실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시하고 6180만달러를 지불하는데 그쳤다.
양국간 앙금은 해소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NYT는 이란항공 655편은 미국에서는 거의 잊힌 사건이지만 아직까지도 이란 정부내 많은 강경론자들은 미국이 의도적으로 이란항공 655편을 격추했다고 믿고 있다고 전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ironn108@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