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요한씨 죽음에 고용부장관 '무반응'…장애인단체 뿔났다

기사등록 2020/01/03 16:32:28

정부가 준 업무 중 투신…"미안하다" 투신

장애인 찾아 상담 지원하는 '동료지원가'

장애인 단체 "연간 48명 5번씩 만나야"

"이런 나쁜 곳에서 여전히 200명 일해"

현직 지원가 "업무 시간 내 처리 불가"

"밤 12시까지 야근해…월급은 60만원"

[서울=뉴시스]이윤청 기자 = 지난 2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청장실 앞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의 중증장애인 일자리 개선을 촉구하는 문구가 붙어있다. 2020.01.02. radiohead@newsis.com
[서울=뉴시스] 이기상 기자 = 정부 추진 장애인 취업 사업으로 일자리를 얻었던 고(故) 설요한(25)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후 한 달이 다 되도록 정부 기관에서 별다른 대응이 없자, 장애인단체 등이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사과를 촉구하는 등 규탄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3일 공공운수노조 장애인노동조합지부(장애인노조)는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설씨의 죽음, 고용노동부가 책임져라"고 촉구했다.
 
전날에는 전국장애인부모연대·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등이 주축이 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서울고용노동청 5층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장관의 직접 사과를 촉구한 바 있다.
 
설씨는 지난해 4월부터 여수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진행하는 '중증장애인 지역 맞춤형 취업 지원 시범사업'에 참여해 '동료지원가'로 활동하다 지난해 12월5일 동료들에게 '미안하다'는 문자메시지를 남기고 투신했다.
 
동료지원가는 중증장애인을 찾아 구직상담이나 직장 적응을 지원하는 업무를 하는데, 이들은 2019년 기준 월 4명, 연간 48명의 새로운 중증장애인을 1명당 5회씩 반드시 만나야 해 장애인에게는 지나치게 과중한 업무라는 주장이 나온다. 설씨는 중증 뇌병변장애인이었다.
 
장애인노조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중증장애인의 몸으로 감당하지 못할 노동강도를 견뎌내고 받는 돈은 월 60여만원 정도에 불과했다"며 "설씨가 마주했던 나쁜 일자리에 여전히 200명의 장애인 동료지원가들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과중한 업무뿐 아니라 실적을 채우지 못했을 때 장애인을 동료지원가로 받아 준 위탁기관에 책임이 전가되는 방식도 문제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장연이 진행한 기자회견에 발언자로 나섰던 박경석 상임공동대표는 "동료지원가가 자기가 맡은 업무를 다 수행하지 못하면, 국가는 해당 지원가를 고용한 위탁기관에 부담금을 압류하겠다고 반협박을 했다"며 "그런 일들에 부담을 느낀 설씨는 동료들에게 미안하다며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직 동료지원가들도 비판의 목소리를 더 했다.
 
김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동료지원가로 일하는 이도훈 활동가는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동료지원가는 일주일에 3회, 월 15회 출근해 총 60시간 일한다"며 "이 시간에 맞추려면 보통 오후 1시에 출근에 6시에 퇴근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근무시간 안에서 달마다 4명의 새로운 중증장애인을 발굴하고, 이들과 5번씩 상담업무를 진행하는 것은 (중증 장애인에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며 "만나서 상담을 진행한 내용은 모두 서류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업무시간은 더 늘어난다"고 주장했다.
 
또 "중증장애인에게 구직 상담을 해도 실제 일자리 연계까지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애초에 중증장애인 일자리가 없는 상황인데, 그저 실효성 없는 상담업무를 실적만 채우려 억지로 진행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이날 장애인노조 기자회견장에서 발언한 박종희 조합원도 현직 동료지원가로 활동하고 있다. 박씨는 사회자 대독으로 전한 발언문에서 "실적을 채우고, 문서 작업을 하기 위해 밤 12시까지 야근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중증장애인을 찾아야 한다는 부담감에 밤잠을 설치는 경우도 많았다"고 전했다.
 
한편 전장연 측은 전날 고용노동부 통합지원국 송흥석 국장과 면담을 진행했다고 이날 밝혔다. 전장연은 이 자리에서 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에 대해 오는 2월부터 고용노동부를 중심으로 보건복지부 등과 함께 '권리중심-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 마련 태스크포스(TF)' 구성을 논의할 것과 2021년 시행을 위한 예산반영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검토하겠다는 의견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설씨의 분향소가 차려진 국가인권위원회 건물에 이 장관이 조문을 와 사과하라는 요청에 대해서는 고용노동부 측에 명확한 답변을 듣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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