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정면돌파-美 대선국면…대화 불씨 있지만 어두운 그림자(종합)

기사등록 2020/01/01 17:53:49

김정은, 경제발전총력노선+국방력 강화로 정면돌파

트럼프 직접 비판 피하고 美와 대화 중단 선언도 없어

북미 교착 장기화 기정시실화 했지만 아직 문 열어둬

트럼프는 대선 국면 맞아 외교적 운신의 폭 더 좁아져

北, 중·러 등과 유착할 경우 북미 대화 복원 난항 예상

[서울=뉴시스]북한 노동신문은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에 관한 보도문과 함께 30여장의 사진과 함께 1일 인터넷판에 보도했다. (사진=노동신문 캡처) 2020.01.01.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김성진 기자 =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밝힌 '새로운 길'은 '정면돌파'였다. 지난 2018년부터 2년 동안 이어진 북미 비핵화 협상에서 결국 '제재의 벽'을 뚫지 못한 김 위원장이 선택한 '길'은 경제발전 총력과 전략무기 등을 통한 국방력 강화로 압축됐다.

북한이 경제총력 집중노선과 핵무력 강군화 노선에 힘을 싣기로 결정하고, 미국은 대선 레이스가 본격 가동됨에 따라 한동안 북미 대화 장기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1일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노동당 7기 5차 전원회의 보고에서 "미국이 우리 국가의 근본 이익과 배치되는 요구를 내대고 강도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어 조미(북미)간의 교착상태는 불가피하게 장기성을 띠게 돼있다"며 북미간 장기 대치를 예고했다.

또 김 위원장은 "미국의 강도적인 행위들로 여전히 적대적 행위와 핵 위협 공갈이 증대되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는 가시적 경제 성과와 복락(행복한 생활을 누리고 기쁨을 즐김)만을 보고 미래의 안전을 포기할 수 없다"며 "이제 세상은 곧 머지 않아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보유하게 될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김 위원장의 전원회의 보고에는 '정면돌파'라는 단어가 23번이나 언급돼, 제제 국면 속에서도 내부적으로 경제발전에 총력을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읽혔다.

김 위원장은 "적대 세력들의 제재 압박을 무력화시키고 사회주의 건설의 새로운 활로를 열기 위한 정면돌파전을 강행해야 한다"며 "모든 당 조직들과 일꾼들은 시대가 부여한 중대한 임무를 기꺼이 떠메고 자력갱생의 위력으로 적들의 제재 봉쇄 책동을 총파탄시키기 위한 정면돌파전에 매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의 전원회의 보고는 2년 가까이 진행된 비핵화 협상의 길을 잠정적으로 내려놓고, 장기화될 수 있는 제재 국면을 대비해 대내적으로 경제발전과 국방력 강화에 집중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김 위원장은 하노이 회담 결렬로 지난 2018년부터 이어온 북미 대화에 대한 기대가 잘못된 길이었다고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며 "대내와 대외, 군사를 합친 정면돌파가 김 위원장이 말한 새로운 길"이라고 밝혔다.

【서울=뉴시스】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국방과학원에서 진행한 초대형 방사포 시험사격을 참관했다고 조선중앙TV가 29일 보도했다. (사진=조선중앙TV 캡처) 2019.11.29.  photo@newsis.com
김 교수는 "결국은 북한은 외부로 한눈을 팔지 않고 정도를 걷겠다, 자신들이 생각한 로드맵대로 가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며 "미국에 대한 기대를 걸었다가 미국은 바뀌지 않는다고 인식했기 때문에 지름길로 가지 않고 정면돌파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미 대화의 장기화 가능성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지난해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노딜'(no deal)로 끝나면서 북미 관계는 교착 상태에 빠지기 시작했다.

6월 판문점에서 남북미 정상이 역사적인 만남을 가졌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이후 이어진 10월 스톨홀롬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 역시 '결렬'로 마무리됐다.

여기에 북한은 지난해 4월 김정은 위원장의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 이후, 미국을 향해 꾸준하게 비핵화 협상 시한인 연말 안에 '새로운 셈법'을 가져올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미국은 거듭 대화만 요구한 채 북한의 '새로운 셈법'에 대해서는 응하지 않았다. 북한은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중단에 따른 상응조치를 요구했고 미국은 비핵화 로드맵을 우선 요구하며 맞섰다.

이 같은 지난해 교착 국면의 연속은 김 위원장이 현 상황을 미국의 '시간끌기'로 판단하도록 이끈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미국을 향해 "애당초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고 관계를 개선하며 문제를 풀 용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사면초가의 처지에서 우리가 정한 연말 시한부를 무난히 넘겨 치명적인 타격을 피할 수 있는 시간벌이를 해보자는 것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서울=뉴시스]박미소 기자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2020년 신년사 발표가 나지 않은 가운데 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2020.01.01.  misocamera@newsis.com
아울러 김 위원장이 북한의 핵실험·ICBM 시험 발사 모라토리엄을 외교 성과로 꼽으며 진전된 대화 없이 상황 관리만 미국의 태도를 꼬집은 부분도 이같은 인식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파렴치한 미국이 조미 대화를 불순한 목적 실현에 악용하는 것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제껏 인민이 당한 고통과 억제된 발전의 대가를 받아내기 위한 충격적인 실제 행동에 넘어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만 김 위원장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개인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삼갔다. 또 북미 대화와 관련해서도 직접적인 중단 선언을 하지 않았다.

이와 함께 "우리의 억제력 강화의 폭과 심도는 미국의 금후 대조선 입장에 따라 상향 조정될 것"이라고 말하며, 협상의 여지도 남겨뒀다.

이는 결국 미국을 최고 수위로 압박했지만 여전히 '선(先) 체제보장, 후(後) 비핵화'로의 태도 전향을 강하게 촉구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또 지난 2017년 '화염과 분노' 시절의 극한 대립에서 2018년 평화 모드로 어렵게 돌아선 만큼 섣불리 협상 테이블을 걷어차지 않겠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특히 국문판 보도에서는 '억제력 강화의 폭과 심도가 미국의 입장에 따라 상향 조정될 것'이라고 발표됐지만, 영문판에는 '상향 조정'이 '적절히 조정'(properly coordinate)으로 표기돼 이같은 분석을 뒷받침한다.

[서울=뉴시스]북한 노동신문은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에 관한 보도문과 함께 30여장의 사진과 함께 1일 인터넷판에 보도했다. (사진=노동신문 캡처) 2020.01.01.  photo@newsis.com
미국 역시 북한이 도발할 경우 강경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도, 북한을 향해 대화 재개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전망은 밝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우리(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는 비핵화에 관한 계약에 서명했다. 첫번째 문장이 '비핵화'였다"며 "그게 싱가포르에서 한 것이었다. 나는 그(김정은)가 자신의 말을 지키는 남자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전원회의 직후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김위원장이 다른 길을 택하기를 희망한다"며 "김위원장이 옳은 결정, 갈등과 전쟁 대신 평화와 희망을 선택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폼페이오 장관의 발언은 표면적으로는 대화 제의로 읽히지만, 비핵화 협상 재개를 위해 '변화된 입장'이라기보다는 대선을 앞두고 국내 강경파의 반발을 예상해 위기관리를 해나가겠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향후 북미 비핵화 협상 결렬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대선 기간 미국 내에서 책임론이 나올 경우, 그 책임을 북한에 돌리기 위한 일종의 사전 작업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미국 내 매파 인사들이 전면에 나설 경우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으로 악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까지 제기된다.

당분간 북미관계가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은 자명해 보인다. 김 위원장이 '정면돌파'를 하기로 결정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을 앞두고 외교적 운신의 폭까지 좁아진 만큼 북미가 긴장국면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하노이=AP/뉴시스】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28일(현지시간) 하노이 메트로폴 호텔 회담장에서 회담하고 있다. 2019.02.28.
더불어 대외 정책 부문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김 위원장이 제재 국면 장기화를 기정사실화한 상황에서 중국, 러시아 등을 중심으로 한 국제협력을 통해 우회로를 개척할 경우 북미 대화 복원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다만 북한이 중국과 러시아와 연대하면 미국에 대한 전략적 도발을 억지할 수 있다는 의견도 대립한다.

국정원 산하 연구기관인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7기 5차 전원회의 특징 분석' 자료에서 "북중, 북러 관계 등 우방과의 연대 강화 전략의 지속을 예고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같은 연대가 "대미 전략적 도발을 억제하는 요인으로 작용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대외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바뀌든 북한 입장에서 미국과의 대화가 가장 빠른 '지름길'임은 아직까지 유효해보인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는 '북한의 새로운 길, 장기전을 대비한 정면돌파'라는 제목의 자료에서 "북한이 '정면돌파전'으로 간다고해서 영원히 미국과의 관계를 종언하는 것은 아니다"며 "여전히 북한에게 가장 매력적인 돌파구는 미국을 통한 해법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연구소는 그러면서 "2020년 북한이 이번 전원회의를 통해 제시한 경제발전 등 내부적인 과제를 해소하고 노동당창건 75주년을 성대하게 기념하고 2021년 봄 제8차 당대회를 개최한다면, 미국 대선이 끝나고 전반기 새 정부 진용이 갖추어진 이후 본격적인 북미협상의 2라운드 시작이 가능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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