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법률대리인 통해 입장 발표
"조원태, 가족간 공동경영 협의 무성의·지연으로 일관"
공정위 동일인 지정 과정서 불거진 불화설 수면 위로
조현아-다른 주주 연대 가능성도…조원태 대응에 관심
[서울=뉴시스] 고은결 기자 = 3세 경영 체제에 돌입한 한진그룹이 조원태 회장 취임 반 년 만에 '남매의 난'의 위기에 처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조원태 회장이 선친의 유훈과 달리 그룹을 운영해 왔으며, 가족 간 협의에 무성의와 지연으로 일관한다"며 동생 조원태 회장에 대한 공격에 나선 것이다.조 전 부사장은 지난 2014년 '땅콩회항' 사건 이후 지난해 3월 칼호텔네트워크 대표이사로 복귀를 시도했지만, 조현민 전무의 '물컵 갑질' 논란이 불거지며 다시금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던 상황이다.
지난 4월8일 별세한 고(故) 조양호 전 한진그룹이 조현아 전 부사장,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조현민 한진칼 전무 등 자식들에게 유언으로 "가족들과 잘 협력해서 사이좋게 이끌어나가라"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공동 경영 논의 과정에서 이견이 발생하며 갈등을 빚은 것으로 풀이된다.
조현아 전 부사장은 특히 조원태 회장이 "조 전 부사장과 법률대리인의 거듭된 요청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사전 협의도 하지 않고 경영상의 중요 사항들이 결정되고 발표됐다"라고 언급하며 한진가 3세 간 불화설을 공식화했다.또한 "한진그룹의 발전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기 위해 향후 다양한 주주들의 의견을 듣고 협의를 진행해 나가고자 한다"며 독자노선을 걸을 것을 시사했다.
◇조현아 "조원태, 공동 경영에 대한 가족 간 협의에 무성의로 일관" 공격 나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원은 23일 '한진그룹의 현 상황에 대한 조현아의 입장'이란 제목의 자료를 통해 "조원태 대표이사는 공동 경영의 유훈과 달리 한진그룹을 운영해 왔고, 지금도 가족간의 협의에 무성의와 지연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법무법인 원은 "조 전 부사장은 작고하신 고(故) 조양호 회장님의 상속인 중 1인이자 한진그룹의 주주로서, 선대 회장님의 유지에 따라 한진그룹을 지속적으로 성장, 발전시키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고, 이에 대해 깊은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선대 회장님은 생전에 가족들이 협력해 공동으로 한진그룹을 운영해 나가라고 말씀하시는 등 가족들에게 화합을 통한 공동 경영의 유지를 전하셨다"며 "또한 선대 회장님은 임종 직전에도 3명의 형제가 함께 잘 해 나가라는 뜻을 다시 한 번 밝히시기도 하셨다"고 강조했다.
조 전 부사장 측은 조원태 회장이 선친의 유훈에 거스르며 공동 경영 방안에 대한 논의에 무성의하다는 취지의 주장을 이어나갔다. 조원태 회장은 조양호 전 회장이 별세한 이후 보름 여 만인 4월24일에 회장직에 올랐다.
법무법인 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원태 대표이사는 공동 경영의 유훈과 달리 한진그룹을 운영해 왔으며 지금도 가족간의 협의에 무성의와 지연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그 결과 한진그룹은 선대 회장님의 유훈과 다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법무법인 원은 특히 공정거래위원회가 조원태 회장을 동일인(총수)으로 지정한 것과 조 전 부사장의 복귀와 관련해 가족 간 어떠한 합의도 없었는데도 불구, 마치 대외적인 합의가 있었던 것처럼 공표됐다고 강조했다.
법무법인 원은 "조 전 부사장과 법률대리인의 거듭된 요청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사전 협의도 하지 않고 경영상의 중요 사항들이 결정되고 발표됐다"라며 "이에 조 전 부사장은 한진그룹의 주주 및 선대 회장님의 상속인으로서 선대 회장님의 유훈에 따라 한진그룹의 발전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기 위해 향후 다양한 주주들의 의견을 듣고 협의를 진행해 나가고자 한다"고 전했다.
◇수면 위로 불거진 불화설…조양호가 우려한 '남매의 난' 벌어지나
조 전 부사장의 이같은 입장 발표에 재계에선 한진그룹이 또 한 번 경영권을 둘러싼 갈등을 빚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한진그룹 2세들이 벌였던 '왕자의 난'에 이어 3세들 간 '남매의 난'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지적이다.
조양호 전 회장은 가족들에게 유언으로 "가족들과 잘 협력해서 사이좋게 이끌어나가라"는 남겼다고 한다. 이는 생전 자신이 겪었던 형제 간 갈등을 걱정했기 때문으로 풀이됐다. 2002년 한진그룹 창업주 조중훈 선대회장의 별세 이후, 한진가 2세들은 경영권을 놓고 형제 간 다툼을 벌인 바 있다.
한진그룹 3세들의 불화설은 지난 5월 공정위의 동일인 지정 과정에서 비롯됐다. 당시 한진그룹이 공정위에 동일인 관련 자료를 내는 과정에서 가족 간 이견이 존재했으며, 상속 계획은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며 갈등설이 불붙었다. 한진그룹은 조 회장이 동일인이 됐을 경우 형성될 지배구조와 관련한 자료를 내면서도 조 회장을 동일인으로 변경한다는 신청 서류는 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기자간담회 중 조원태 회장의 발언, 조현민 한진칼 전무 등 복귀가 이어지며 불화설도 조금씩 수그러들었다. 조 회장은 지난 6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연차총회 기간 중 진행된 대한항공 기자간담회에서 "선대회장께서 평소에 말씀하셨던 내용이 '가족 간 화합에서 회사를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라며 "지분 상속과 관련해 "가족과 많이 협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조현민 전무가 '물컵 갑질'로 그룹 내 모든 직책에서 물러난 지 14개월 만인 지난 6월에 한진칼 전무 겸 정석기업 부사장으로 경영에 복귀하며 삼남매의 경영승계에 대한 잠정 합의가 이뤄진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기 시작했다. 아울러 조 회장이 지난달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가진 특파원들과의 기자간담회에서 "아버님 뜻에 따라서 맡은 분야를 충실하기로 셋이 합의했다. 때가 되고 준비가 되면 그렇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언급하며 한진그룹의 분할 경영 체제가 본격화될 것이란 전망에 보다 힘이 실렸다.
하지만 조 전 부사장이 갑작스러운 입장 발표를 통해 조 회장에 대한 반기에 나서며, 불화설이 현실화됨과 동시에 향후 공동 경영 논의 과정에서도 적지 않은 갈등이 빚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경영권 다툼' 격랑 속으로…조원태 반격 나서나
조현아 전 부사장이 '조원태 체제'에 반기를 든 가운데, 한진그룹이 '경영권 다툼' 격랑에 빠질 가능성도 부상한다. 당초 그룹 안팎에서는 한진가 3세들이 ▲조원태 회장이 대한항공과 그룹 총괄 ▲조현아 전 부사장이 칼호텔네트워크 ▲조현민 전 전무가 진에어 등을 나눠 이끌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그러나 공동 경영 논의 과정에서 남매 간 갈등이 심화하면 사이 좋은 분할 경영과 거리가 멀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이어진다. 앞서 한진그룹 2세들이 형제 간 다툼 끝에 계열분리를 했듯이, 3세들 또한 회사를 쪼개는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조현아 전 부사장의 갑작스러운 공격에 조원태 회장이 나설 대응 방향에도 관심이 쏠린다. 조양호 전 회장이 보유했던 한진칼 지분 17.84%는 이명희 고문과 조원태·현아·현민 3남매가 각각 1.5:1:1 비율로 상속받았다. 조 회장의 한진칼 지분은 기존 2.32%에서 6.46%로 확대됐다. 이 고문의 지분은 5.27%, 조 전 부사장과 조 전무의 한진칼 지분율은 6.43%, 6.42%다.
조 회장 입장에서는 향후 조 전 부사장이 다른 주주들과의 연대에 나선다면 경영상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오너 일가의 불협화음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분쟁이 본격화할 경우, 어느 편에 무게 중심이 실리느냐에 따라 그룹 경영권의 향배가 결정될 수 잇기 때문이다. 한진그룹 측은 "아직 정확한 내용을 파악 중"이라며 공식 입장을 내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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