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비건 "우린 여기 있다" 北에 전격 회동 제안…최선희 응할까

기사등록 2019/12/16 17:00:27

넉 달 만에 방한한 비건, 공개 기자회견서 대북 메시지

비건 "우린 여기 있고, 北은 우리와 접촉할 방법 안다"

"타당성 있는 단계와 유연한 조치 통해 균형 잡힌 합의"

연내에 북한과 마주앉을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

전문가 "美 비핵화 협상 입장 변화 없어…北 반발할 것"

"北이 원하는 건 대화 자체가 아니라 구체적 태도 변화"

[서울=뉴시스]홍효식 기자 = 미국 국무부 대북 특별대표인 스티븐 비건 국무부 부장관 지명자가 16일 오전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을 만나기 위해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 접견실로 이동하고 있다. 2019.12.16.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이국현 기자 = 북한이 제시한 비핵화 협상 시한인 연말을 보름 앞두고, 스티븐 비건 미국 대북특별대표가 북한에 전격 회동을 제안했다. 특히 비건 대표는 '데드라인은 없다'는 점을 확인하며, '새로운 길'이 아닌 '더 나은 길'을 논의하자고 제의했다. 하지만 북한이 요구하는 비핵화 협상에 대한 미국의 태도 변화가 없다는 점에서 북한의 호응은 불투명한 것으로 보인다.
 
비건 대표는 16일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이도훈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과 한미 북핵 수석대표협의를 진행한 후 약식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올해 2월, 5월, 8월에 이어 넉 달 만에 한국을 방문한 것으로 비건 대표가 브리핑룸에서 공식 메시지를 발표한 것은 처음이다. 사실상 북한을 향한 공개 메시지인 셈이다.

비건 대표는 "북한 성명에는 연말 데드라인을 두고 있다고 하지만 미국은 데드라인을 갖고 있지 않다"며 "우리는 역사적인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한 약속을 이루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우리는 북한 협상 파트너와 교섭할 준비가 돼 있다. 나 역시 모든 가능성에 대한 신뢰를 갖고 있지만 미국 혼자 할 순 없다"며 "이 자리에서 북한 협상 파트너에게 직접적으로 말한다. 이제 우리 일을 할 시간이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린 여기 있고, 북한은 우리에게 접촉할 방법을 알고 있다"고 회동을 전격 제의했다.

[서울=뉴시스]배훈식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청와대 본관에서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와 대화하고 있다. 2019.12.16. dahora83@newsis.com
비건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도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구축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이루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나가겠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고 거듭 확인했다.

그는 김연철 통일부 장관과 오찬에서는 "미국은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미국과 북한 지도자가 천명한 약속을 대화를 통해 달성해 갈 것"이라며 "타당성 있는 단계와 유연한 조치를 통해 균형 잡힌 합의에 이를 준비가 됐다"고 강조했다

대화 상대는 북핵 협상의 카운터파트인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으로 보인다. 비건 대표는 오는 17일까지 한국에 머문 후 일본으로 넘어가는 일정인 만큼 판문점 방문을 통한 북미 회동을 시도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이 오는 25일부터 크리스마스 휴가에 들어가는 만큼 이번 방한이 연내에 북한과 마주앉을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다.

비핵화를 위한 북미 대화는 올해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노딜'로 끝난 데 이어 지난 10월 스웨덴 스톨홀롬 협상이 성과 없이 끝나며 중단 상태다. 이후 북미는 강도 높은 발언을 주고 받은 데 이어 '중대한 시험'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공개회의 소집 등을 통해 '강(强) 대 강' 대치 상태다. 북미간 협상 테이블이 마련된다면 반전의 계기를 만들 수 있다.

[서울=뉴시스]추상철 기자 = 김연철(오른쪽 두번째) 통일부 장관이 16일 서울의 한 모처에서 스티븐 비건(왼쪽 두번째)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와 오찬 간담회를 하고 있다. 2019.12.16.   photo@newsis.com
하지만 북한이 비건 대표의 공개적인 만남 제의에 북한이 응할지는 미지수다. 비건 대표는 "지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때 밝혔듯이 양측의 목표에 부합하는 균형 있는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 창의적이고 현실 가능성 있는 해법을 제안했다"고 확인하는 데 그쳤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뉴시스와 통화에서 "북한이 원하는 것은 대화를 하자는 제의가 아니라 어떤 태도로 대화에 임할지에 대한 입장 변화를 시사해 달라는 것"이라며 "북한이 대화에 응할 가능성이 높지 않고, 오히려 미국이 고의적으로 시간을 지연시키고 진정성이 없다는 식의 부정적 공세를 펼치며 강하게 반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앞서 북한은 비건 대표의 방한을 앞두고 지난 7일에 이어 엿새 만에 또 다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엔진 시험으로 추정되는 '중대한 시험'을 단행했다. 북한은 이달 하순께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중대한 결정을 진행하겠다고 밝히는 등 크리스마스(25일) 전까지 미국의 태도 변화가 없을 경우 '새로운 길'을 걷겠다고 밝힌 상태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25일을 전후해 미국 본토를 위협할 수 있는 ICBM을 발사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북한의 도발 시 국제적인 제재를 위한 명분 쌓기라는 분석도 나온다. 비건 대표는 "지난 며칠간 주요 도발은 항구적 한반도 평화 달성을 위해 가장 건강하지 않은 행동이다. 이 방법으로 갈 필요 없다"고 비판했다. 북한이 강도 높은 도발 행위를 이어갈 경우 유엔 안보리에서 언급한 것과 마찬가지로 제재 동참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판문점 =뉴시스】박진희 기자 = 30일 판문점 자유의 집에서 열린 북미 판문점회동에 수행한 장금철 통일선전부장,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 리용호 외무상, 김여정 제1부부장,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오른쪽부터). 2019.06.30.pak7130@newsis.com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북한이 요구하는 셈범이 구체적이지 않으면 나올 리 없다"며 "미국은 최대한 대화에 노력했지만 북한이 호응하지 않았다는 명분 축적용인지, 북미 간에 소통이 있어 만날 가능성을 두고 하는지는 지켜봐야 한다. 미국은 물론 한국도 북한이 새로운 길로 가지 않도록 상황을 관리하려는 노력을 보여주는 차원"이라고 해석했다.

 한편 비건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 예방, 김연철 통일부 장관과 오찬에 이어 오후에는 한반도 전문가들과 만나 북핵 문제에 대한 의견을 논의하는 등 광폭 행보를 펼친다. 이후 한반도 업무 담당 외교당국자간 환영 리셉션이 열릴 것으로 전해졌다. 17일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다키자키 시게키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 등을 만날 예정이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은 "비건 대표가 뉴욕 채널 등을 통해 북한에 대화를 제의했지만 대답이 없어서 공개적으로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보인다"며 "최선희 부상과 만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미중 무역전쟁과 마찬가지로 북한에 휴전을 제의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lgh@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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