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 달 만에 방한한 비건, 공개 기자회견서 대북 메시지
비건 "우린 여기 있고, 北은 우리와 접촉할 방법 안다"
"타당성 있는 단계와 유연한 조치 통해 균형 잡힌 합의"
연내에 북한과 마주앉을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
전문가 "美 비핵화 협상 입장 변화 없어…北 반발할 것"
"北이 원하는 건 대화 자체가 아니라 구체적 태도 변화"
비건 대표는 16일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이도훈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과 한미 북핵 수석대표협의를 진행한 후 약식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올해 2월, 5월, 8월에 이어 넉 달 만에 한국을 방문한 것으로 비건 대표가 브리핑룸에서 공식 메시지를 발표한 것은 처음이다. 사실상 북한을 향한 공개 메시지인 셈이다.
비건 대표는 "북한 성명에는 연말 데드라인을 두고 있다고 하지만 미국은 데드라인을 갖고 있지 않다"며 "우리는 역사적인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한 약속을 이루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우리는 북한 협상 파트너와 교섭할 준비가 돼 있다. 나 역시 모든 가능성에 대한 신뢰를 갖고 있지만 미국 혼자 할 순 없다"며 "이 자리에서 북한 협상 파트너에게 직접적으로 말한다. 이제 우리 일을 할 시간이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린 여기 있고, 북한은 우리에게 접촉할 방법을 알고 있다"고 회동을 전격 제의했다.
그는 김연철 통일부 장관과 오찬에서는 "미국은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미국과 북한 지도자가 천명한 약속을 대화를 통해 달성해 갈 것"이라며 "타당성 있는 단계와 유연한 조치를 통해 균형 잡힌 합의에 이를 준비가 됐다"고 강조했다
대화 상대는 북핵 협상의 카운터파트인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으로 보인다. 비건 대표는 오는 17일까지 한국에 머문 후 일본으로 넘어가는 일정인 만큼 판문점 방문을 통한 북미 회동을 시도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이 오는 25일부터 크리스마스 휴가에 들어가는 만큼 이번 방한이 연내에 북한과 마주앉을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다.
비핵화를 위한 북미 대화는 올해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노딜'로 끝난 데 이어 지난 10월 스웨덴 스톨홀롬 협상이 성과 없이 끝나며 중단 상태다. 이후 북미는 강도 높은 발언을 주고 받은 데 이어 '중대한 시험'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공개회의 소집 등을 통해 '강(强) 대 강' 대치 상태다. 북미간 협상 테이블이 마련된다면 반전의 계기를 만들 수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뉴시스와 통화에서 "북한이 원하는 것은 대화를 하자는 제의가 아니라 어떤 태도로 대화에 임할지에 대한 입장 변화를 시사해 달라는 것"이라며 "북한이 대화에 응할 가능성이 높지 않고, 오히려 미국이 고의적으로 시간을 지연시키고 진정성이 없다는 식의 부정적 공세를 펼치며 강하게 반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앞서 북한은 비건 대표의 방한을 앞두고 지난 7일에 이어 엿새 만에 또 다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엔진 시험으로 추정되는 '중대한 시험'을 단행했다. 북한은 이달 하순께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중대한 결정을 진행하겠다고 밝히는 등 크리스마스(25일) 전까지 미국의 태도 변화가 없을 경우 '새로운 길'을 걷겠다고 밝힌 상태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25일을 전후해 미국 본토를 위협할 수 있는 ICBM을 발사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북한의 도발 시 국제적인 제재를 위한 명분 쌓기라는 분석도 나온다. 비건 대표는 "지난 며칠간 주요 도발은 항구적 한반도 평화 달성을 위해 가장 건강하지 않은 행동이다. 이 방법으로 갈 필요 없다"고 비판했다. 북한이 강도 높은 도발 행위를 이어갈 경우 유엔 안보리에서 언급한 것과 마찬가지로 제재 동참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비건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 예방, 김연철 통일부 장관과 오찬에 이어 오후에는 한반도 전문가들과 만나 북핵 문제에 대한 의견을 논의하는 등 광폭 행보를 펼친다. 이후 한반도 업무 담당 외교당국자간 환영 리셉션이 열릴 것으로 전해졌다. 17일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다키자키 시게키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 등을 만날 예정이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은 "비건 대표가 뉴욕 채널 등을 통해 북한에 대화를 제의했지만 대답이 없어서 공개적으로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보인다"며 "최선희 부상과 만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미중 무역전쟁과 마찬가지로 북한에 휴전을 제의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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