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연구 획일화 깨고 항쟁 경험 못한 세대 공감 확장해야"

기사등록 2019/11/15 18:26:54

5·18 39주년 기념 5·18 연구의 계보학 학술대회

"은폐·왜곡 논리 반박에 몰두, 소모적 논쟁 반복"

"반공주의 대결도 갈등 배경, 연구 초점 바꿔야"

"5·18 후세, 항쟁 역사 공감하는 공간·기회 제공"


【광주=뉴시스】신대희 기자 = 5·18 민주화운동 관련 연구가 '역사 왜곡 근절'이란 틀에서만 진행돼 소모적 논쟁이 반복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항쟁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가 주체로 참여하는 공간·기회를 제공하고 5·18에 대한 관심을 확장시키는 다양한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봉국 전남대 호남학연구원 인문한국 연구교수는 15일 5·18 기념재단에서 열린 '5·18연구의 계보학'이란 39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5·18 왜곡·진실'과 관련한 주제 발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김 교수는 "5·18 진실 규명을 중심으로 한 조사·연구는 1980년 5월부터 신군부와 극우 세력이 만든 은폐·왜곡 논리에 대한 반박의 성격이 강했다. 2000년대 이후 5·18 연구의 지향·범위가 다양해졌는데도, 여전히 구조화된 담론장 내에서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는 형국"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5·18의 '왜곡·진실'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논란은 5·18 자체에 기인하기보다 한국 사회의 반공주의를 축으로 한 진영 대결에 보다 근원이 있다. 국가 주도의 진상 규명과 과거 청산 작업 또한 5·18의 다채로운 진실과 역사 왜곡 근절을 담보해주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또 '구조·획일화된 5·18 연구가 세대와 지역의 공감을 이끌지 못한 한 배경'이라고 짚었다.

김 교수는 "이른바 88만 원 세대(2007년 전후 20대 지칭)에게 5·18은 현재 자신의 삶과는 동떨어진 과거이자 민주화운동의 하나일 뿐이다. 이같은 표준화된 기억의 책임으로부터 5·18 연구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또 "왜 5·18이 교감을 형성하지 못하는 과거사 정도로 남겨지게 됐는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5월을 매개로 지역과 세대를 넘어 소통하기 위해서, 그 정신의 현재화·보편화를 위해서 40주년 이후 5·18연구는 왜곡과 무관심 중 '무관심과의 대화'로 재정향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경섭 전남대 5·18 연구소 전임연구원도 '5·18 제도화와 기억의 자리'라는 주제 발표를 하고 "그동안 5·18의 전국·세계화의 초점은 진실 규명과 정신 계승에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5·18 정신이 민주·인권·공동체·평화라는 추상적인 가치로 규정돼 구체적인 맥락을 상실하고, 5·18 다음 세대와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박 연구원은 "5·18 이후 세대가 정신 계승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로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특히 5·18기념시설들을 다음 세대의 시각에서 재검토해 일부를 변형하거나 운영·평가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5·18 피해·당사자 가족들의 기억 전승에 대한 연구 ▲공적 교육체계 안팎서 5·18 활용 검토 ▲5·18 관련 콘텐츠(영화·예술 작품 등)에 대한 각 세대의 기억 연구 ▲5·18에 대한 다양한 기억을 활성화하기 위한 질문·성찰 공간 확대 등도 함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5·18 관련 담론이 사회·역사공동체와 상호 작용을 겪으며 영구 해석될 운명에 맡겨져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정일준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5·18의 현재화'란 기조 강연에서 "5·18 담론이 생명력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후세의 재해석을 견뎌야 한다. 당사자가 해석을 독점하고자 하는 욕망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5·18담론을 한국에서의 여타 권력 담론과의 긴장 관계에서 항상 새롭게 재조명하고, 인류 보편적 가치의 언어로 승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5·18 관련 문학·예술, 정치, 젠더, 기억투쟁, 가해자, 트라우마를 중심으로 한 논의도 펼쳐졌다.


sdhdream@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