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 '혐오 표현 리포트' 보고서 발간
"혐오표현? 성별,장애 등 이유로 차별 정당화"
'장애인 착하다' 칭찬도 편견 공고화하면 혐오
맥락 생략된 통계수치, 차별 따른 결과일수도
소수자 대상 범죄 부정 발언도 결국 '혐오표현'
"사회전체 해악…결국 혐오 뿌리 뽑아야" 제안
"대기업 임원 수를 봐. 남성이 여성보다 일을 잘한다니까."
"일본군 위안부는 매춘의 일종."
긍정의 의미로, 통계적 사실로, 역사에 대한 주장으로 받아들여졌던 말들을 '혐오표현(Hate Speech)'으로 봐야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발간한 '혐오표현 리포트'에 담긴 내용이다.
30일 이 보고서에 따르면 혐오표현은 '성별, 장애, 종교, 나이, 출신지역, 인종, 성적지향 등을 이유로 어떤 개인이나 집단에게 ▲모욕, 비하, 멸시, 위협 ▲차별, 폭력의 선전과 선동을 함으로써 차별을 정당화, 조장, 강화하는 효과를 갖는 표현'이다.
이 기준대로라면 우리가 흔히 접하는 말 중 상당수가 혐오표현이다. 온라인 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김치녀', '된장녀'라는 말이 대표적이다. 해당 표현들은 여성이 과소비를 일삼고 허영심이 있는 것처럼 규정하고 있다.
주목할만한 점은 긍정적인 의미, '칭찬'으로 하는 말들도 혐오표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특정 집단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화할 때 그렇다. 예를 들어 덕담을 건넨다는 취지로 "장애인들은 너무 착해"라는 말은 혐오표현에 해당한다. 장애인은 '선한 사람'이라는 편견을 공고화 하기 때문이다. 신체적 능력이 뛰어난 흑인을 치켜세우는 말도 특정 인종에 대한 편견을 기반으로 한 것으로 혐오표현으로 분류된다.
우리가 사실이라고 믿은 통계적 수치도 문제가 된다. 맥락이 제거된 채로 제시된 '숫자'들이 어쩌면 차별에 따른 결과일 수도 있는 탓이다. 미국 일부 지역의 흑인 범죄율이 다른 유색인종에 비해 높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백인과 비교해 흑인에 대한 불심검문을 하는 비율이 높거나, 법집행 과정에서 흑인에 대한 유죄 판결이 높게 내리는 경향 등이 존재한다. 이런 맥락을 생략한 사실의 표현은 혐오표현으로 분류된다. 대기업 임원 수를 근거로 남성이 여성보다 업무적으로 뛰어나다는 것도 '유리천장' 등 사회구조적 배경을 무시한 혐오발언이 된다.
반인륜 범죄를 부정하는 역사적 의견도 결국 혐오표현이라는 것이 이 보고서의 주장이다. 반인륜 범죄의 대상은 대개 사회적 소수자 집단일 가능성이 높은데, 이 범죄를 부정하는 것은 결국 소수자를 상대로 한 차별을 정당화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5.18 민주화 운동은 폭동"이라는 주장이 혐오표현이 되는 이유다. 최근 류석춘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의 '위안부는 매춘의 일종'이라는 발언도 마찬가지다. 류 교수는 최신 학문연구 결과라고 했으나 이 보고서에 따르면 류교수의 발언은 명백한 혐오표현이다.
보고서는 이런 혐오표현이 인간의 존엄성을 부정하는 동시에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등 사회전반적으로 악영향을 끼친다고 강조하면서, 다양한 대응 방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차별금지법 제정 등 차별을 처벌하는 법률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과 동시에 간접적인 방식으로 혐오표현을 규제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근본적으로는 혐오표현이 나타날 수 있는 환경적 요인을 제거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보고서는 "혐오표현이 뿌리 깊은 편견과 혐오에서 기인하는 것이고 그 뿌리를 제거하지 않은 상태에서 혐오표현 대응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 방법으로 보고서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혐오표현 관련 교육을 진행하거나 관련 가이드라인을 제시, 대학이나 기업 등에서 이를 따르도록 하는 방안들이 제시했다.
newkid@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