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주미영, 바로크~현대음악 관통하는 소프라노

기사등록 2019/09/01 09:53:38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 독창회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자세히 봐야 예쁘고, 오래 봐야 사랑스럽다는 시 구절이 있다. 클래식음악 중에서도 난해한, 바로크 음악과 현대음악에게도 적용되는 말이다.

흘려서 들으면 단순 배경음악에 지나지 않지만, 집중해서 들으면 '이런 신세계가!'라는 감탄사를 연발하게 된다.

소프라노 주미영이 30일 밤 서울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연 독창회는 바로크음악부터 현대음악까지를 미분(微分)한 공연이다. 400년가량의 시공간을 2시간 동안 압축해 여행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1부에서는 1600~1750년 바로크시대 음악을 그대로 재현했다. 바로크 음악은 당대의 건축물처럼 매우 화려했다.
 
'사계' 작곡가로 친숙한 비발디의 성악과 앙상블을 위한 모테트 작품 '이 세상에 참 평화 없어라'는 청명하면서도 화사했다. 주미영은 찬송가 같은 이 곡을 명상적으로 재해석했다. 라틴어가 내뿜는 생명력이 꿈틀거렸다. 1735년 바로크 음악의 발상지인 이탈리아의 3대 중심 도시 중 하나인 베네치아가 보이고 들렸다.

영화 '파리넬리'로 익숙한 카스트라토 가수 파리넬리의 음악교사인 작곡가 포르포라의 칸타타 '그 무서운 겨울이'는 나폴리를 경험하게 만들었다. '이 세상에 참 평화 없어라'보다 세속적인 노래다. 온갖 사랑에 관한 미사여구와 음표가 하늘하늘 눈송이처럼 흩어졌다.


'이 세상에 참 평화 없어라'와 '그 무서운 겨울이'의 반주는 쳄발리스트 김희정의 리드 아래, 전원 유럽에서 고전음악을 전공한 연주자로 구성된 바로크 앙상블 팀이 맡았다. 한번도 가 본 적 없는 바로크 시대로 청중을 초대했다.

2부에서는 독일 낭만주의 시대로 건너뛰었다. 주미영은 피아니스트 함유진의 반주로 독일 시인 괴테의 작품에 등장하는 줄라이카 여인에 대한 시를 주제로 한 독일 낭만주의 작곡가들의 대표작들을 들려줬다.

같은 노랫말을 사용한 슈베르트의 줄라이카Ⅱ가 불안과 초조함을 표현했다면, 멘델스존의 줄리아카는 기대감과 흥분을 더 부각시킨다. 이 두 곡을 연달아 들으니, 그 차이가 더 분명해졌다.

마지막으로 신대륙으로 시간과 공간을 옮겼다. 현대 미국작곡가 아르젠토의 자유분방하고 명랑한 음악의 세계가 주미영의 입을 통해 펼쳐졌다.

'엘리자베스 시대의 6개의 노래'다. 토머스 내시, 셰익스피어 등 영국 문학의 황금기로 통하는 엘리자베스 1세 집정 당시(1558~1603) 시인들의 작품이 가사로 사용됐다. 영어의 운율과 억양을 살린 서정적인 선율이 인상적이다.

아르젠토는 미국 피바디 음악원에 피아노를 전공하고 이탈리아에 유학했으며 미국 미네소타주립대에서 음악이론과 작곡을 가르쳤다.

이탈리아밀라노 국립음악원에서 박사과정, 피바디음악원에서 최고연주자과정을 밟은 주미영은 미네소타주립대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자신이 존경하는 아르젠토에게 이 곡을 직접 사사하려했으나 그가 지난 3월 세상을 뜨면서 무산됐다. 주미영은 이날 무대를 아르젠토에게 헌정했다.


주미영은 서강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다. 음악을 향한 열정을 굽히지 않고, 스물여덟살에 숙명여대대학원에 입학해 석사학위를 따내며 서양음악의 기초를 다졌다.

밀라노 국립음대에서 헨델의 로마 체류 시절 성악곡을 연구한 논문으로 밀라노 국립음대 최초로 바로크 성악부문 최고연주자 1호 학위를 받기도 했다.

이날 공연이 음악 위주의 일방적인 공연이 아니었던 이유다. 아마추어 테너이기도 한 윤정진 치의학박사가 뮤직 큐레이터를 맡았는데, 주미영이 새로운 곡을 들려주기 직전마다 해당 곡의 시대 배경과 의미를 유머 등을 섞어 객석이 알기 쉽게 풀어줬다.
 
앙코르는 정훈희의 '꽃밭에서'. "이렇~게 좋은 날엔", 성악가가 들려주는 가요에는 운치와 기품이 배어 있었다. 클래식음악의 대중화는 멀리 있지 않다. 음표가 저 멀리 시간의 강물 위로 자연스럽게 흘러나와, 우리의 현재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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