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직접 비판은 자제할 듯…평화경제 언급 속 '극일' 메시지
미완의 '신(新) 한반도 체제' 이번 8·15 경축사서 완성될 듯
3·1절 기념사, '하노이 노딜'에 급수정…개념 절반만 공개
남북 주도 동북아 새 질서…지정학 편견 탈피 '적극적 평화'
자연스럽게 대북·대일 메시지 동시에 충족하는 내용 예상
【서울=뉴시스】김태규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8·15 광복절 경축식에서 어떤 메시지를 던질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번 광복절 메시지는 절정의 한일 갈등 국면에서 맞게됐다는 점에서 역대 광복절 때보다 무게감이 더해진다.
광복절은 3·1절과 함께 남북 문제와 한일 문제를 비롯해 동북아 정세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과 철학, 정책방향 등이 녹아든 국가비전을 소개하는 무대로 여겨진다. 대통령의 구상이 집약돼 있어 향후 대내·외 정책추진 방향을 읽을 수 있는 가늠자 역할을 한다.
역대 대통령들은 큰 틀에서 독립운동 정신의 계승과 광복의 의미, 한반도 평화 구상, 한일 관계에 대한 메시지를 경축사 속에 담아오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등 비핵화 대화가 진행되던 지난해에는 '한반도 운전자론', '동아시아 철도공동체 구상' 등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메시지 위주로 채워졌다.
취임 첫해 한일 간 역사문제를 덮고 넘어갈 수 없다며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에 대한 정부 차원의 실태조사 필요성을 언급하는 등 대일(對日) 강경 메시지가 비중있게 다뤘지만 지난해에는 아예 원론적인 메시지조차 내지 않았다.
한일 간 과거사·역사문제가 미래지향적인 관계 발전 논의에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이른바 '투 트랙' 방침에 따라 일본과 관련해서는 간접 메시지도 담지 않았다.
한국을 향한 일본의 수출규제에서 출발한 한일 간 갈등은 단순 경제보복 양상을 넘어 역사전쟁 성격이 짙게 깔려 있다는 점에서 올해 광복절 경축사 속에는 어떤 식으로든 일본을 향한 메시지 발신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문 대통령은 이미 "다시는 지지 않을 것",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 등 최고 수위의 메시지를 쏟아냈던 만큼 이번 광복절 경축사에는 그 이상의 강경한 메시지는 담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문 대통령이 지난 12일 수석 비서관·보좌관 회의에서 "일본의 경제 보복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감정적이어서는 안 된다"며 냉정하면서도 차분함을 주문한 것도 광복절 메시지를 염두에 두고 수위를 낮춘 것으로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이 앞서 일본 경제에 대한 극복 방안으로 한 차례 '평화경제' 구상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이번 광복절 경축사에서 이를 확장·보완한 형태의 메시지가 나올 가능성이 제기된다.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처음 언급했던 평화경제는 올해 3·1절 기념사에서 '신(新) 한반도 체제' 구상을 뒷받침하는 주요 개념으로 등장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신한반도체제는 이념과 진영의 시대를 끝낸, 새로운 경제협력공동체"라며 "한반도에서 '평화경제'의 시대를 열어나가겠다"고 천명했다.
신한반도체제는 새로운 100년을 지속해 나갈 국가통치 철학이자 국가비전의 최상위 개념이다. '신 베를린 선언'을 구체화시킨 새로운 한반도 평화구상이면서, 혁신적 포용국가 개념을 접목한 국가정책방향이다.
문 대통령은 3·1절을 계기로 완성된 구상을 천명할 계획이었지만 '하노이 노딜' 탓에 축소 버전을 공개하는 데 그쳤다. 4·11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식에서의 제시 기회를 엿봤지만,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이 급히 잡히면서 무산된 바 있다.
이후 북유럽 순방 계기로 이뤄진 노르웨이·스웨덴 의회 연설 때 개념 일부를 조금씩 녹여내는 방식으로 소개해 왔었다. 순방 직전 사전 예고 형태로 독일 유력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 기고문을 빌려 그 개념을 밝히기도 했다.
노르웨이 오슬로 포럼 기조연설을 빌려 '적극적 평화'를 역설한 '오슬로 선언', 스웨덴 의회 연설에서 신뢰를 바탕으로 한 비핵화 대화를 북한에 제안한 '스웨덴 구상' 모두 신한반도체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과거 100년이 열강들의 침탈, 일제강점, 전쟁과 분단, 냉전으로 이어지는 등 국제질서의 틀 안에서 끊임없이 타자로부터 강요받아온 역사였다면, 새 100년은 남북이 주도적으로 새롭게 한반도 질서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신 한반도 체제'를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다. '한반도 운전자론'과도 맥이 닿아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동북아 6개국과 미국이 함께하는 동아시아철도공동체를 제안한다. 이 공동체는 우리의 경제지평을 북방대륙까지 넓히고 동북아 상생번영의 대동맥이 되어 동아시아 에너지공동체와 경제공동체로 이어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동북아 철도공동체 구상은 평화경제 구상으로 이어진다. 평화가 정착된 이후 그 토대 위에서 남북이 경제협력의 물꼬를 트고, 동아시아 철도공동체 구성, 동북아 다자평화안보체제 등을 순차적으로 이룰 수 있다는 내용을 포괄적으로 담고 있는 것이 바로 평화경제 구상이다.
세계 어느 나라든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 없이는 무한 군비경쟁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는 인식이 평화경제 구상 밑바탕에 깔려 있다. 거꾸로 평화체제가 구축 되면 안보유지 비용을 경제발전의 토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지난 6일 "이번 일을 겪으며 우리는 평화경제의 절실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며 "남북 간의 경제협력으로 평화경제가 실현된다면 우리는 단숨에 일본의 우위를 따라잡을 수 있다"고 한 것도 이러한 배경 위에서 해석 가능하다.
남북관계 발전이 전제되지 않은 궁극적인 평화경제 실현은 어렵다는 점에서 대북·대일 메시지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다. 평화경제 구상의 중요성 언급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극일(克日) 메시지가 녹아들 수 있다.
문 대통령이 일본 경제 극복 일환으로 평화경제를 언급하며 "남과 북이 함께 노력해 나갈 때 비핵화와 함께하는 한반도의 평화와 그 토대 위에 공동번영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으로 분석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신한반도체제 속에는 한반도 평화구상, 경제공동체를 바탕으로 다자안보협력체제를 모색하겠다는 동북아 철도공동체 구상이 모두 담겨 있다"면서 "직접적인 극일 관련 메시지보다는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현재 일본과의 갈등 상황이 언급되는 방향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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