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간 새 불씨 '적반하장'…"번역이 논란 키웠다"마이니치

기사등록 2019/08/07 15:55:19

일본언론들, 문대통령의 '적반하장'을 "도둑이 뻔뻔스럽다"고 번역

외무성 부대신 "품위없는 말을 썼다" 비판

청와대 "차관급 인사가 상대국 정상에 막말"

【서울=뉴시스】

【서울=뉴시스】김예진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의 일본에 대한 ‘적반하장(賊反荷杖)’에 대한 발언을 둘러싼 논란을 둘러싸고, 일본 언론에서 번역이 불씨를 키운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왔다.

마이니치 신문은 7일 “문 대통령은 ‘도둑이 뻔뻔스럽다(盗っ人たけだけしい)’고 말한 것인지 프로 통역과 해독해봤다”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지난 2일 문 대통령은 일본이 전략물자 수출우대국인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에서 한국을 배제하겠다는 각의 결정하자 “적반하장”이라고 비판했다. 그러자 공영 방송인 NHK를 비롯한 일본 언론들은 당시 문 대통령의 이 발언을 “도둑이 뻔뻔스럽다”는 표현으로 받아썼다.

기사를 쓴 호리야마 아키코(堀山明子) 마이니치 서울 지국장은 '적반하장'이 위와같은 표현으로 번역된데 대해 일본어로 직역할 수 없는 표현이기 때문이라면서, 사전에도 이같이 나와 있어서 틀렸다고는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다만, 자신은 ‘정색하며 뻔뻔하게 나온다(開き直る)’는 표현으로 의역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적반하장'은 '도둑이 도리어 몽둥이를 든다'는 뜻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보통 물건을 훔친 ‘도둑’ 보다는 ‘잘못한 사람’이 오히려 화를 낸다는 의미로 쓰인다. ‘정색하며 뻔뻔하게 나온다’고 의역한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적반하장'에 대해 ‘도둑이 뻔뻔스럽다’는 표현으로 전달한 일본 언론의 보도를 들은 일본 정부 대변인 스가 요시히데 장관은 “과잉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차관급인 사토 마사히사(佐藤正久) 외무성 부(副)대신은 "품위 없는 말을 쓰는 것은 정상적이지 않다(異常だ)"면서 일본에 “무례하다"고 주장했다.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사토 부대신의 발언에 "차관급 인사가 상대국의 정상을 향해 이런 막말을 쏟아내는 게 과연 국제적 규범에 맞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며 맞받아쳤다. 문 대통령의 적반하장 발언으로 양국 간 골이 더 깊어진 것이다.

한국 국회의원과 동행해 한일 통역을 한 경험이 있는 국제회의 통역사 B씨는 신문에 “한국인의 감각으로 교양 높은 사자성어로 표현했는데 일본 번역을 통했더니 불량 대통령이 되어버렸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꼬집었다. 또 ‘도둑’이라는 표현에 위화감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도둑이란 표현은 일본 내에서 파문을 일으켰다.

최은주 동시통역가는 신문에 “통역에서 중요한 것은 사전적 의미가 아닌 말의 문맥, 어감의 힘, 품위를 전부 표현하는 것”이라면서 “내가 번역한다면 적어도 ‘도둑’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겠다”고 지적했다.

 호리야마 지국장은 적반하장은 한국에선 여성들끼리의 언쟁에서도 일상적으로 쓰이는 말로, 사토 부대신의 말처럼 품위 없는 표현이 아니라면서 “사자성어는 교양 높은 사람도 사용하며 품위 없는 표현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호리야마는  “커뮤니케이션 결여로 갈등이 일어났다”며 “이번 적반하장 번역을 둘러싼 엇갈림은 본질적인 번역 문제보다도 한일 정상회담도 열리지 않을 정도의 상대에 대한 불신에서 태어난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경직된 한일 분위기 속, 서로에 대한 이해와 커뮤니케이션이 부족한 상황 가운데 번역이 불씨를 키웠다는 것이다.

아울러 필자는 결국 한일 갈등의 본질은 번역 보다 한일 정상간 역사 인식에 대한 큰 간극에서 오고 있다면서, 상대의 얼굴을 보고 하는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aci2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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