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한없다" "몰랐다"…빗물펌프장 참사 책임전가 급급

기사등록 2019/07/31 20:50:31 최종수정 2019/07/31 21:39:36

현대건설 "제어실 비밀번호…갔을 땐 이미 개방"

구청 "준공돼야 관리…작업자 있는지도 몰랐다"

실종자 가족 "그럼 긴급상황서 누가 판단하나"

【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31일 갑작스런 폭우로 작업자 3명이 고립돼 1명이 숨지고 2명이 실종된 서울 양천구 목동 빗물펌프장에서 소방관계자들이 야간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 2019.07.31.  bjko@newsis.com
【서울=뉴시스】안채원 기자 = 근로자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실종된 서울 '목동 빗물펌프장 참사'를 두고 구청과 시공사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31일 오후 열린 현장 브리핑에서는 수문 개방 시 작업자가 있었던 점을 지적하며 개폐(開閉)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지에 대한 공방이 벌어졌다.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날 오전 7시30분 호우주의보가 발효되자 양천구청 측은 오전 7시38분 현대건설 측에 수문 개방이 이뤄질 예정이라고 전했다.

시설의 각 저류조는 일정 정도의 수위를 넘으면 자동으로 수문이 열려 터널로 빗물을 흘려보내도록 설계돼있다.

이를 들은 현대건설 직원은 현장 제어실로 향했으나 수문은 이미 개방된 상태였고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현대건설 측 현장소장은 "우리는 수문개방 제어 권한이 없다"며 "직원이 (제어실에) 가긴 갔지만 비밀번호가 설정돼 있었고, 제어실에 들어갔을 땐 이미 수문이 개방이 돼 있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직원이 제어실 비밀번호를 몰랐다는 내용을 통해 권한이 없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그런데 양천구청 측은 공사가 진행 중이란 이유를 들어 수문 개폐 권한을 구청이 온전히 갖고 있진 않다고 주장했다.

구청 관계자는 "공사 중에는 구와 서울시, 현대건설이 (시설을) 합동운영한다"며 "준공돼 매뉴얼이 모두 넘어왔을 때 구가 관리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 관계자는 "작업자가 (시설에) 들어가있는지 여부를 우리는 모른다. 현대건설에서 양천구한테 '사람 있다, 없다'라고 통보하는 의무가 없고 한 적도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혹시라도 작업자가 있었다고 하면 (수문을 닫는) 조치를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봐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양천구청과 현대건설 사이 공방이 오가자 자신을 실종자 가족이라 밝힌 이는 "현대건설은 권한이 없다고 하고 양천구는 책임이 없다고 한다. 그런 긴급상황에서 판단은 누가하는 것이냐"고 항의했다.
【서울=뉴시스】서울 양천소방서에 따르면 31일 갑자기 쏟아진 폭우로 서울 시내 공사장에서 일하던 근로자 3명이 고립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구조작업에 나서 오전 직원 한 명을 구조해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진 것으로 파악됐다. (그래픽=전진우 기자) 618tue@newsis.com
한편 양천구청 측으로부터 수문개방 소식을 들었음에도 직원 A씨(30·실종)를 저류시설로 들여보낸 것 관련, 현대건설 측은 빠른 시간 내 유입수가 도달할 것이라고 예측하지 못했다고 했다.

현장소장은 "지난 28일 마지막 수문개방 시운전을 할 때 유입수가 종점까지 도달하는 데 49분이 걸렸다"며 "안씨가 그 시간(통보 12분 후)에 들어가도 충분히 작업자를 안전하게 데리고 나올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들은 안씨가 들어간 후 불과 20여분이 흐른 오전 8시10분께 고립됐다.

서울 양천소방서는 이날 오전 8시24분께 서울 목동운동장 인근 빗물펌프장 저류시설에서 근로자 3명이 고립됐다는 신고를 받았다.

앞서 오전 7시10분께 현대건설 협력업체 직원 K씨(65)와 미얀마 국적 직원은 시설점검을 위해 유지관리수직구를 통해 지하터널로 내려갔다.

이후 호우주의보가 발효되면서 터널 상류쪽인 수문이 열린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오전 7시50분 현대건설 직원 A씨가 들어갔고, 오전 8시10분 출구인 수문이 닫히면서 3명이 고립됐다.

사고 발생 약 2시간 뒤인 오전 10시26분께 K씨는 구조돼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오전 11시2분께 숨졌다. K씨와 함께 고립됐던 A씨와 미얀마 국적의 직원은 오후 8시30분 현재 발견되지 않았다.

소방당국은 오후 6시20분께 수중 수색에 투입된 구조대원들을 철수시키고 배수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배수시설 내에 있는 펌프 7대와 추가 수중펌프 1대가 투입됐다.

당초 3.5m였던 수심은 오후께 3m 이하로 내려가고 있다고 소방당국은 전했다.

소방 관계자는 "2~3시간이 흐르면 1m 이하가 될 것으로 보인다"며 "그때 구조대원들이 다시 들어가 수색작업을 벌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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