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분계선 앞에서 연주된 바흐 첼로곡…"가야 할 먼 길"

기사등록 2019/04/27 21:24:47 최종수정 2019/04/27 21:31:10

판문점선언 1주년 기념행사 '평화 퍼포먼스'

4·27 정상회담 주요 장소 따라 연주 펼쳐져

군사분계선 앞에서 연주된 평화 음악 향연

文대통령 "우리는 평화롭게 살 자격 있다"

【판문점=뉴시스】사진공동취재단 = 27일 경기도 파주시 판문점에서 열린  '4.27 판문점선언 1주년 기념식'에서 남북 정상이 처음 조우한 군사분계선에서 미국의 첼로 거장 린 하렐이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 1번을 연주하고 있다. 2019.04.27.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김성진 기자, 통일부공동취재단 = 1년 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처음 손을 맞잡았던 판문점 군사분계선(MDL) 앞에서 바흐의 무반주 첼로 곡이 울리기 시작했다.

판문점선언 1주년 행사 '평화 퍼포먼스'의 시작은 오후 7시 세계적인 첼리스트 린 하렐의 연주로 문을 열었다.

린 하렐이 연주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중 1번 프렐류드는 1989년 베를린 장벽 앞에서 러시아의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가 연주하던 곡으로 유명하다.

판문점선언의 시작이자 또한 분단의 상징인 T2(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실)와 T3(군사정전위원회 소회의실)건물 옆에 장병들이 비무장으로 근무를 하고 있는 가운데 연주는 흘러나왔다.

이어 4·27 정상회담 당시 심은 기념식수 앞에서 작곡가 윤이상의 음악이 울려 퍼졌다. 이곳은 고(故) 정주영 회장의 소떼 루트이자,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의장대의 사열을 받으며 평화의 집으로 갔던 길과도 닿아있다.

일본 플루이스트인 타카기 아야코는 기념수 옆에 설치된 평화의 탑과 어우려져 윤이상의 '플루트를 위한 에튀드'를 연주했다. 윤이상은 남과 북 모두에서 인정을 받는 몇 안 되는 음악가다.

【판문점=뉴시스】사진공동취재단 = 27일 경기도 파주시 판문점에서 열린 '4.27 판문점선언 1주년 기념식'에서 다카기 아야코 일본 플루티스트가 연주하고 있다. 2019.04.27.  photo@newsis.com
일본인 피아니스트 우에하라 아야코는 슈만의 '어린이 정경' 가운데 '트로이메라이'를 4·27 기념식수와 비석 앞에서 연주했다.

트로이메라이는 61년 만에 고국 러시아에 돌아간 피아니스트 호로비츠가 동포들 앞에서 가슴으로 연주했던 곡으로 알려졌다. 남북 이산가족, 고향을 그리워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선곡한 것으로 전해졌다.

타카기 아야코와 우에하라 아야코는 일본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의 대표적인 애니메이션인 '하울의 움직이는 성' OST 가운데 '매리 고 라운드'(Marry-go-round)를 협연했다. 여러 해석이 갈리지만 애니메이션의 대표적인 메시지 중 하나는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소원하는 것이다.

4·27 정상회담에서 가장 주목을 받았던 장소 중 하나였던 도보다리에서도 음악이 울렸다. 한국인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은 바하의 '샤콘느'를 여주했다. 도보다리 테이블에는 회담 당시 다과 세팅이 재현됐고, 그 뒤로 MDL 표지가 눈에 들어왔다.

4·27 정상회담의 기억을 더듬듯 연주는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사열을 받았던 판문점 주차장 자리로 무대를 옮겼다. 중국 출신의 역시 저명한 첼리스트 지안 왕과 함께 한국의 첼리스트들이 바하의 G선상의 아리아를 연주했다.

【판문점=뉴시스】사진공동취재단 = 27일 경기도 파주시 판문점에서 열린  '4.27 판문점선언 1주년 기념식'에서 다카기 아야코 일본 플루티스트와 우에하라 아야코가 피아니스트가 연주하고 있다. 2019.04.27.  photo@newsis.com
한국전쟁 당시 아수라장이 됐던 피난 열차에서 어느 음악평론가가 축음기를 꺼내 이 곡을 틀었는데 열차 안이 갑자기 조용해졌다는 이야기가 회자되는 곡이기도 하다.

악동뮤지션의 이수현씨는 애니메이션 '포카혼타스'의 OST 가운데 '바람의 빛깔'을 불렀다. 이 노래는 나무와 바람, 새들과 사람은 각기 다른 모습을 가졌지만 모두 함께 마음의 문을 열면 마침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평화 퍼포먼스의 대미는 소리꾼 한승석과 가수겸 작곡가 정재일, 국악합창단과 오케스트라가 협연한 '저 물결 끝내 바다에'로 장식됐다. 장소는 '판문점선언'이 발표됐던 '평화의 집' 앞이었다.

이번 퍼포먼스의 주제인 "멀지만 가야할 먼 길"을 함축하듯, 우리 민족이 하나의 마음을 모아 비록 멀고 험한 길일지라도 뚜벅뚜벅 걷는다면 마침내 통일과 평화가 이뤄질 것이라는 서사를 담아냈다. 가사는 작가 황석영의 '장길산'에서 따왔다.

곡의 마무리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월 능라도 '5월1일 경기장'에서 15만 평양시민을 상대로 했던 연설로 마무리됐다. 당시 문 대통령은 평양시민 앞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연설했다.

【판문점=뉴시스】사진공동취재단 = 27일 경기도 파주시 판문점에서 '4.27 판문점선언 1주년 기념식' 공연이 열리고 있다. 2019.04.27.  photo@newsis.com
"우리는 5000년을 함께 살고 70년을 헤어져 살았습니다"라는 당시 문 대통령의 육성이 판문점에 울려 퍼졌다.

이날 문 대통령은 참석하지 못했지만 영상 메시지를 보냈다.

문 대통령은 "우리는 평화롭게 살 자격이 있다. 우리는 한반도를 넘어 대륙을 꿈꿀 능력이 있다"며 "우리는 이념에 휘둘리지 않을 만큼 지혜로워졌으며, 공감하고 함께해야 새로운 미래를 열 수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새로운 길이기에, 또 다 함께 가야하기에 때로는 천천히 오는 분들을 기다려야 한다"며 "때로는 만나게 되는 난관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함께 길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영상 메시지를 보내 "인내심 있고 끈기 있는 노력을 통해 화합과 우호를 추구함으로써 분열과 대립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판문점=뉴시스】사진공동취재단 = 27일 경기도 파주시 판문점에서 열린  '4.27 판문점선언 1주년 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이 정상 회담 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2019.04.27.  photo@newsis.com
이날 행사 전 주요 인사들의 만찬도 있었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축사에서 "지난 1년 동안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그러나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며 "남과 북 모두 판문점 선언을 이행하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있기 때문에 어떠한 난관도 헤쳐 나갈 것"이라고 했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 겸 유엔군 사령관은 만찬 건배사에서 "(남·북·유엔사 3자가 함께) 서로 일을 하면서 전문성을 지켰고 예의를 지켰으며 서로 간에 대화도 나눴다"면서 "어떤 미래가 다가올 수 있는지에 대해 잠깐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행사에는 주한 외교사절과 서울시·경기도 주민 200여명, 어린이·청소년·대학생·문화·예술·체육계 인사, 정부·국회 인사, 유엔사·군사정전위 관계자 등 내·외빈 410명이 참석했다.

행사에 참석한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김근호씨는 "세계 각지에서 유명한 연주자들이 가장 평화롭지 않은 공간인 JSA에 와서 평화를 노래하는 장면이 매우 인상 깊었다"며 "작년에 비해 남북관계가 교착상태에 있는데, 다시 작년 기억을떠올려서 자유롭게 교류협력하는 분위기가 찾아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동국대학교 학생인 문수영씨는 "(오늘 프로그램 중에) 통일과 평화, 번영을 심다라는 영상을 봤는데 그것처럼 한반도 평화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며 "북한과 잠시 살짝 경색된 것 같아서 좀 아쉽긴 한데, 2주년 때는 꼭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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