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열 예술감독의 연출로 28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하는 국립극단의 신작 '갈릴레이의 생애'는 과학자로서 갈릴레이의 얼굴보다 그 안의 고뇌와 의지를 톺아본다.
이성을 광적으로 믿지만, 포도주를 비롯한 미식을 좋아하는 갈릴레이는 몸의 감각도 중요하게 여긴다. 고문 기구를 본 것 만으로 종교재판에서 지동설을 철회한 이유다.
이런 갈릴레이를 용기가 없다고 힐난하기에는 이르다. 몰래 연구를 계속해 과학적 과업을 완성한 갈릴레이의 삶은 '지식인의 용기'가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순간의 객기로 화염에 내던져 육신과 함께 지식까지 불 태워지는 것을 그는 경계한다. 자신을 믿고 따르는 이들의 기대를 배반했다는 이유로 치욕을 감당하고 감시까지 묵묵히 감당한 뒤 눈까지 버려가며 몰래 연구한 갈릴레이는 누구보다 용맹하다. 폭력에 희생되는 것이 아닌, 폭력을 피해 오래 살아남는 방법을 안다. '장애물을 피하는데 곡선이 지름길'일 수 있음을 아는 지식인의 현명함이다.
국내에서 드물게 공연한 독일 시인 겸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1898~1956)의 대표작을 무대로 옮겼다. 러닝타임이 인터미션 15분을 포함해 170분에 달하지만 지루하지 않다.
초반에 배우들이 극을 소개하면서 최근 영화를 통해 조명된 영국 밴드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 속 "갈릴레오. 갈릴레오. 갈릴레. 피가로"를 합창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연극은 유려한 리듬감이 돋보인다.
극을 이어 주는 브리지 장면에서 앙상블의 노래를 비롯한 코러스를 적재적소에 활용한 연출 등이 부드럽다. 국립극단과 꾸준히 작업을 해온 음악감독 겸 작곡가 장영규 그리고 김선이 맡은 음악은 밀물과 썰물처럼 극을 꾸준히 환기시킨다.
천체를 떠올리는 동시에 갈릴레이가 목성 주변에서 발견한 위성 4개 그리고 삶의 순환이 겹쳐지게 하는 둥그런 이태섭의 무대는 고급스럽다.
갈릴레오를 맡은 배우 김명수의 열연도 빼놓을 수 없다. 대부분의 장면에서 무대 위에 있는 그는 정확한 발성, 설득력 있는 감정 연기로 갈릴레이를 무대 위에 다시 살려낸다. 종교재판관 등 멀티 배역을 소화한 노장 이호재를 비롯, 거리악사 부부 이원희와 황미영 등 1인 다역을 배우 12명 역시 호연한다.
저항과 변혁의 예술가로 통한 브레히트의 작품답게 계급 모순을 비판한 부분도 곳곳에서 눈에 띈다.
그런데 이 작품은 무엇보다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몸을 웅크리고 있는 사람들이 봐야한다. 극중에서 겨울이 가고 봄이 온다는 말이 몇 번 언급되는데, 그 따스한 정서가 막판에 스멀스멀 봄의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기 때문이다.
스승 갈릴레이가 지동설을 철회하자 "영웅을 갖지 못한 불행한 이 나라여!"라고 한탄한 제자 안드레아는 마지막에 하늘의 별처럼 그를 우러러본다.
모차르트의 '반짝반짝 작은별' 변주곡이 청량하게 연주된다. 영롱하게 빛을 내뿜은 별에 포위된 밤하늘은 결국 제 빛을 낸 영웅의 과업을 이어나가려는 제자의 앞길을 비춘다.
하지만 극은 함부로 자만하지 않는다. '우린 아직 멀었단다. 사실 이제 겨우 출발점에 서 있는 것'이라는 명제를 깔고 있다. 울퉁불퉁한 고된 역사의 길을 돌아도, 따스한 봄날은 저 멀리서 꾸역꾸역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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