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임시정부 환국기념 23인 필묵'은 백범(白凡) 김구(1876~1949), 성재(省齋) 이시영(1868~1953) 등 대한민국 임시정부 23인이 광복 후 환국 하루 전인 1945년 11월4일 저녁 중국 충칭에서 자신들의 감회, 포부, 이념을 남긴 필적이다.
문화재로 등록 예고된 공장은 작업 특성상 내부에 균일한 빛을 받으려고 북쪽에 창을 높게 설치한 톱날형 지붕 구조를 갖춰 초기 산업유산으로서 제사공장 건축의 특성을 이해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6.25동란 당시 조치원여자고등학교 임시교사로 사용된 장소로 지역적, 역사적 의미를 지닌 건물로도 보존가치가 크다.
문화재청은 고성 동해안 감시초소(GP), 대한민국 임시정부 환국기념 23인 필묵, 부산 구 동래역사, 세종 구 산일제사 공장을 30일간의 예고 기간 중 의견을 수렴해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최종 등록할 예정이다.
'만해 한용운 심우장'은 승려이자 독립운동가인 만해(萬海) 한용운(1879∼1944)이 1933년에 직접 건립해 거주한 곳이다. 독립운동 관련 활동과 애국지사들과의 교류 등에 대한 흔적이 남아 있다는 면에서 사적으로 문화재적 가치가 크다.
이봉창 의사 선서문은 이봉창(1900~1932) 의사가 일왕을 저격하고자 하는 결의를 기록한 국한문 혼용 선서문이다. 이봉창 의사의 대표 항일투쟁 유물인 이 선서문은 1931년 12월13일 백범이 이 의사를 안중근(1879~1910) 의사의 아우인 신암(萬海) 안공근(1889~1939)의 집으로 데려가서 선서식을 거행하고 작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봉창 의사 친필 편지, 봉투 및 의거자금 송금증서는 이 의사가 백범에게 의거자금을 요청하는 편지와 이에 대한 회신으로 백범이 의거자금을 송금한 증이다.
이봉창 의사 친필 편지, 봉투는 1931년 12월24일 도쿄에 있는 이 의사가 상하이에 있던 백범에게 의거 자금을 요청한 것이다. 의거실행을 "물품이 팔린다"라는 대체 용어로 약속해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이봉창 의사 의거자금 송금증서는 1931년 12월28일 백범이 상하이에서 도쿄에 있는 이 의사에게 의거자금 100엔을 보낸 송금증서다.
이봉창 의사 선서문과 이봉창 의사 친필 편지, 봉투 및 의거자금 송금증서는 의거의 전개과정과 항일독립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이봉창 의사의 유물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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