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 10명 중 리더는 멕시코 국적자 에이드리언 홍 창
습격 전 마드리드에서 공격용 물건들 구입
사업가로 위장해 대사관 안에 들어가
미국에서 FBI와 접촉도
【서울=뉴시스】 오애리 기자 = 스페인 고등법원과 반북단체 자유조선이 26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 주재 북한 대사관 습격사건에 관한 문건을 공개하면서 이 사건에 대한 관심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스페인 법원은 이 사건에 가담한 용의자 10명 중 2명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이번 사건에 대한 스페인 고등법원의 주장과 자유조선의 주장은 180도 다르다. 판사는 이 사건을 폭력적 습격 및 절도사건으로 판단한 데 반해 자유조선 측은 일체의 폭력은 없었으며 '대사관의 긴급상황에 대한 대응'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먼저, 현지 일간지 엘파이스가 호세 데 라 마타 판사가 기밀해제한 수사문건을 토대로 보도한 내용을 중심으로 사건의 전개과정을 재구성해보면 다음과 같다.
문건에 따르면, 북한 대사관에 침입한 10명 중 신원이 확인된 사람은 멕시코 국적의 에이드리언 홍 창, 미국 국적자 샘 류(Sam Ryu), 한국 국적자 이우람(Woo Ram Lee) 등이다. 판사는 홍 창과 샘 류에 대해 불법침입, 폭력, 절도 혐의 등으로 체포영장을 발부한 상태이다.
에이드리언 홍 창은 2월 22일 오후 북한 대사관 침입을 단행하기 6시간 전에 마드리드의 한 상점에서 4개의 전투용 칼, 6개의 가짜 권총(simulated pistols), 얼굴을 가리는 두건 등 물품들을 구입했다. 이우람과 샘 류 역시 상점에서 테이프 33개 등 다양한 물건들을 600유로어치 샀다.
용의자들이 북한 대사관에 도착한 것은 2월 22일 오후 4시 34분이다. 에이드리언 홍 창은 대사관에 근무하는 북한인의 이름을 대고, 그를 만나러 왔다고 말했다. 홍 창은 캐나다와 아랍에미리트에 회사를 가지고 있는 사업가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북한에 투자를 하고 싶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대사관 안에 들어간 홍 창은 문을 열어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9명을 들어오게 했다. 이후 이들은 대사관 관계자 6명을 구타한 후 손을 묶었다. 특히 대사관에서 경제 부문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은 심하게 구타를 당했고, 목욕탕으로 끌려가 팔이 묶였으며, 얼굴에는 두건이 씌워졌다.
이 과정에서 한 여성이 바깥으로 도망치는데 성공했고, 신고를 받은 경찰이 북한 대사관에 찾아왔다. 이때 리더 격인 에이드리언 홍 창이 문을 열고 나와 경찰에게 아무 일도 없다고 말하고 돌려보냈다.
10명은 대사관 안에서 두개의 컴퓨터와 두 개의 하드 드라이브, 한 개의 휴대 전화 등을 가지고 오후 9시 40분쯤 대사관 자동차 3대에 나눠타고 출발했다. 10명 중 8명은 먼저 떠났고, 홍 창을 포함한 2명은 잠시 뒤에 직접 몰고 왔던 자동차를 타고 떠났다.
이 자동차는 홍 창이 오스왈도 트럼프란 이름으로 렌트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홍 창은 매슈 차오란 이름으로 이탈리아 자동차 운전면허증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용의자들이 타고 갔던 대사관 자동차 3대는 이후 마드리드와 포주엘로 데 알라콘 시내에서 발견됐다.
용의자들은 사건 다음 날인 23일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이동했다. 홍 창은 여기서 비행기를 타고 미국 뉴저지주 뉴워크 공항에 도착했다.
법원 문건에 따르면, 홍 창은 2월 27일 FBI와 접촉했다. 그는 FBI에 자신을 북한 해방을 위한 인권조직의 회원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스페인 대사관 습격을 어떻게 했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또 습격 전에 북한 대사관에 있는 사람들과 접촉했었던 사실도 밝혔다고 한다.
하지만, 자유조선의 주장은 위의 내용과 상반된다.
자유조선은 26일 오후 7시 41분(UTC 기준·한국시간 27일 오전 4시 41분) 홈페이지에 '마드리드(북한대사관)에 관한 팩트들'이란 제목의 글을 올려, 스페인 북한 대사관 습격사건은 '습격(attack)'이 아니었으며, "마드리드 대사관 내의 긴급한 상황에 대해 반응했던 것(We responded to an urgent situation in the Madrid embassy)"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대사관에 초대(invited)를 받았고, 보도와 달리 그 누구도 결박하거나 때리지 않았다"고도 밝혔다. "무기를 사용하지 않았으며, 대사관 내 모든 사람들을 위엄있게 대우했고, 필요한 경고만 했다"는 것이다.
이 단체는특히 "마드리드(북한 대사관 사건)에 대한 정보를, 이득이나 돈을 기대하며, 어떤 측들과 공유하지 않았다"며, 다만 "미국 연방수사국(FBI)과 상호 비밀유지 합의 하에 엄청나게 잠재적 가치가 있는 특정 정보를 공유했다(The organization shared certain information of enormous potential value with the FBI in the United States, under mutually agreed terms of confidentiality)"고 밝혔다.
또한 마드리드 사건에 가담한 사람들의 신원을 밝히려 하는 것은 "평양의 범죄적, 전체주의적 지배자들 편에 서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aeri@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