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로런스 레서·문태국, 첼로 스승과 제자의 현답

기사등록 2019/03/19 15:25:33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10년 만에 내한공연하는 첼로 거장 로런스 레서( Laurence Lesser)와 제자인 첼리스트 문태국(오른쪽)이 19일 오전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로런스 레서는 세계 클래식 역사상 손꼽히는 명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 가스파르 카사도, 그레고르 피아티고르스키와 같은 인물들과 행보를 같이 해온 세계 첼로계의 살아있는 유산과 같은 인물이다. 로런스 레서는 21일 오후 8시 금호아트홀에서 열리는 '2019 금호아트홀 기획공연 아름다운 목요일'에서 '위대한 첼로' 시리즈로 독주 무대를 펼친다. 문태국은 최근 인터내셔널 데뷔앨범 '첼로의 노래'를 발매하고 22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앨범 발매를 기념해 피아니스트 한지호와 듀오 리사이틀을 연다. 2019.03.19. chocrystal@newsis.com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첼리스트 문태국(25)이 수줍은 손으로 노스승 로런스 레서(81)에게 CD를 조심스럽게 건넸다. "좋아하지 않으실 수도 있어요. 하하."

이 CD는 문태국이 프랑스 파리의 워너클래식 본사와 계약해 발매한 인터내셔널 데뷔앨범 '첼로의 노래'다. CD를 받은 뒤 이를 가만히 쳐다보던 레서는 미소를 지었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이 자체로 기뻐요. 태국이 자신의 목소리를 스스로 표현한 앨범이기 때문이죠. 저와 다른 종류의 음악이잖아요."

그러면서 작곡가 쇤베르크가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를 위해 작곡한 첼로 협주곡을 녹음한 1966년 첫 앨범부터, 가방 안에 든 자신의 작품들을 꺼내 살피기 시작했다. 2010년 피아니스트 백혜선과 낸 베토벤 첼로 전곡 앨범, 2014년 프로코피예프, 바흐의 여러 소품을 모아서 녹음한 앨범들이다. 

레서는 카잘스, 가스파르 카사도, 그레고르 피아티고르스키 등 손꼽히는 첼리스트들과 행보를 같이해온 '살아있는 유산'과도 같은 인물이다. 특히 수백명의 제자를 배출한 첼리스트들의 스승, '교수님들의 교수님'으로 통한다.

1970년부터 미국의 명문 피바디 음대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고, 1974년부터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교수와 총장을 역임했다. 문태국은 2012년부터 2016년까지 뉴잉글랜드 음악원을 다니면서 레서를 사사했다. 조영창, 고봉인, 김민지 등 왕성하게 활동 중인 다른 한국 첼리스트들도 그의 제자다.

1961년 하버드대를 수학 전공으로 졸업한 레서는 독일 쾰른으로 가 첼리스트 가스파르 카사도를 사사하며 첼리스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카잘스의 마스터클래스에서 "당신에게 이런 재능을 준 하늘에 감사한다"는 극찬을 들은 일화는 지금도 회자된다.

무엇보다 그는 '좋은 어른'이다. 인터뷰 룸의 방문이 닫히자 '감옥에 갇혔다'고 너스레를 떨고, 기자의 노트북 타자 모습을 피아노 건반을 치듯 흉내내며 싱글벙글 웃는 그는 '꼰대'와는 거리가 멀었다.

"저는 낙관주의자에요. 물론 행복하지 않을 때도 있지만 삶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죠. 여든살이 넘다 보니, 삶에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자연스럽게 일어납니다. 엄청나게 놀라운 일은 없었어요. 무슨 일이든 'OK '파인'하며 받아들였죠. 그런데 사실 제 즐거움과 느긋함은 방어적인 태도일 수 있어요. 최근 (대형 총기사고가 난) 뉴질랜드의 끔직한 일을 보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죠. 그저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하는 음악 앞에서 정직한 것이 무엇이고 그것을 계속 고민해나가는 일입니다."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10년 만에 내한공연하는 첼로 거장 로런스 레서(Laurence Lesser)와 그의 제자인 첼리스트 문태국(오른쪽)이 19일 오전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로런스 레서는 세계 클래식 역사상 손꼽히는 명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 가스파르 카사도, 그레고르 피아티고르스키와 같은 인물들과 행보를 같이 해온 세계 첼로계의 살아있는 유산과 같은 인물이다. 로런스 레서는 21일 오후 8시 금호아트홀에서 열리는 '2019 금호아트홀 기획공연 아름다운 목요일'에서 '위대한 첼로' 시리즈로 독주 무대를 펼친다. 문태국은 최근 인터내셔널 데뷔앨범 '첼로의 노래'를 발매하고 22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앨범 발매를 기념해 피아니스트 한지호와 듀오 리사이틀을 연다. 2019.03.19. chocrystal@newsis.com
무엇보다 열린 태도와 마음이 여전히 그의 머리와 마음을 유연하게 만들고 있다. 제자들에게도 먼저 다른 연주자의 음악을 듣고, 느낀 뒤 스스로 입을 열라고 강조하고 있다.

"듣는 법을 배운 뒤 스스로 음악을 들을 줄 알아야 하죠. 제자들에게 곡을 연주할 때 먼저 노래해보라고 해요. 본인이 음악을 느끼고 편안하게 여기면, 연주가 좋을 수밖에 없죠."

진짜 제자들이 노래하면서 연주를 하느냐고 묻자, 옆에 있는 문태국에게 "너도 노래를 했잖아"라며 웃었다. "곡의 경향과 사조도 알아야 하지만 무엇보다 곡을 이해하고 노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거죠. 학생들에게 '와이(WHY)'와 '하우(HOW)'를 강조해요. 하우가 몸을 어떻게 써서 연주하느냐에 방점이 찍혀 있다면, '와이'는 자신만의 목소리로, 왜 그렇게 연주해야하는지 대답을 하는 거죠."

 문태국은 한국의 젊은 클래식 음악가를 대표하는 블루칩 연주자다. 2017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로 선정됐으며, 세계적인 첼리스트 야노스 슈타커의 이름을 딴 재단이 30세 이하 젊은 첼리스트에게 수여하는 제1회 야노스 스타커상 수상자로 그를 선정하기도 했다.
 
문태국은 미국에서 레서를 자주 찾아뵙지만 한국에서 만나는 것은 전혀 다른 느낌이라고 했다. 문태국이 레서와 함께 인터뷰에 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선생님의 말씀과 연주를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듣고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만 좋은 가르침을 받는 것 같아서 아쉬웠거든요. 이번에 마스터 클래스도 많이 하셔서, 저로서는 뿌듯합니다. 마음이 이끄는 음악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씀을 평소 새기고 있어요."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10년 만에 내한공연하는 첼로 거장 로런스 레서(Laurence Lesser)가 19일 오전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인터뷰에 앞서 제자인 첼리스트 문태국(왼쪽)으로부터 최근 발매한 인터내셔널 데뷔앨범 '첼로의 노래' 음반을 선물받고 있다. 로런스 레서는 세계 클래식 역사상 손꼽히는 명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 가스파르 카사도, 그레고르 피아티고르스키와 같은 인물들과 행보를 같이 해온 세계 첼로계의 살아있는 유산과 같은 인물이다. 로런스 레서는 21일 오후 8시 금호아트홀에서 열리는 '2019 금호아트홀 기획공연 아름다운 목요일'에서 '위대한 첼로' 시리즈로 독주 무대를 펼친다. 문태국은 최근 인터내셔널 데뷔앨범 '첼로의 노래'를 발매하고 22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앨범 발매를 기념해 피아니스트 한지호와 듀오 리사이틀을 연다. 2019.03.19. chocrystal@newsis.com
레서는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혈기왕성하다. "의사가 첼로가 제 운동이라고 말하더라고요. 하하. 심폐 기능에도 좋고요.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데, 다행이죠. 껄껄."

연주자, 교수로서의 삶이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학생을 가르치면서 저도 매일 매일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레슨을 할 때 학생들이 반응을 해준 것이 제게 도움이 됩니다. 레슨을 하는 과정 자체도 연주인 셈이죠."

한국 학생들에 대해서는 "에너지가 살아 있고, 게으르지 않다는 것이 강점"이라고 봤다. "한국의 클래식 음악 수준이 날로 높아지고 있어요. 그 만큼 한국 음악가들의 역이 세계에서도 중요해졌죠. 국제적인 수준에 이르렀어요."

문태국은 레서가 마치 현자처럼 느껴진다.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표현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분들 중에 하나"라는 것이다. "한쪽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으로 보고 판단할 수 있는 분이기도 하죠"라고 전했다.
 
레서는 21일 오후 금호아트홀에서 '위대한 첼로' 시리즈로 독주 무대를 펼친다. 2017년 평창 대관령음악제에서 첼리스트 정명화, 루이스 클라렛과 포퍼의 레퀴엠을 연주했으나 금호아트홀에서 공연하는 것은 2009년 피아니스트 백혜선과 듀오 연주 이후 10년 만이다. 버르토크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랩소디, 바흐의 무반주 첼로 제4번, 베토벤 '사랑을 느끼는 남자들은' 주제에 의한 변주곡 E플랫 장조, 라흐마니노프의 첼로 소나타 g단조 등 첼로 명곡을 들려준다.

프로그램을 설명하던 이 첼로계의 현자는 막판에 인터뷰어에게 되물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나요? 지금 이 시간이 행복했나요?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자신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본 뒤 "그런 생각이 드는 삶이라면 운이 좋은 분들"이라며 웃었다.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10년 만에 내한공연하는 첼로 거장 로런스 레서(Laurence Lesser)와 그의 제자인 첼리스트 문태국(왼쪽)이 19일 오전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로런스 레서는 세계 클래식 역사상 손꼽히는 명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 가스파르 카사도, 그레고르 피아티고르스키와 같은 인물들과 행보를 같이 해온 세계 첼로계의 살아있는 유산과 같은 인물이다. 로런스 레서는 21일 오후 8시 금호아트홀에서 열리는 '2019 금호아트홀 기획공연 아름다운 목요일'에서 '위대한 첼로' 시리즈로 독주 무대를 펼친다. 문태국은 최근 인터내셔널 데뷔앨범 '첼로의 노래'를 발매하고 22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앨범 발매를 기념해 피아니스트 한지호와 듀오 리사이틀을 연다. 2019.03.19. chocrystal@newsis.com
마지막으로 레서는 자신이 제자의 나이였을 때를 돌아봤고, 문태국은 자신이 스승의 나이가 됐을 때를 상상했다. 

"제가 태국의 나이였을 때는 혼란스러웠어요. 그럼에도 돌아봤을 때 행복했죠. 20대 때는 굉장히 신나기도 하고 걱정이 많기도 하죠.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때이기도 하고요. 동시에 모든 것이 가능한 때이기도 합니다. 어느 질문을 하든 그 과정에서 답이 나오는 때에요. 결론은 '돌아보면 괜찮았어. 나는 행복했어'가 답이죠. 태국이도 잘 헤쳐나갈 겁니다."(로런스 레서)
 
"물론 선생님과 다른 삶을 살고 다른 사람이 돼 있겠지만 선생님 같은 마음가짐을 갖고 싶어요.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줄 알고, 삶의 순환에 순응하는 열린 사람이요."(문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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