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 대표, 하노이에서 한국보다 일본에 먼저 회담 결과 설명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도 조율 안돼 연기돼
북한 문제와 관련해 미국과 한국 정부 간의 불협화음이 고조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는 반면 미국과 일본의 거리는 밀접해지고 있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은 더욱 서먹해지는 모양새다.
8일 일본의 외교 소식통들에 따르면 지난 2월 28일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로 끝난 직후 미국의 실무협상 대표인 스티브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하노이에 와 있던 일본 외무성의 가나스기 겐지(金杉憲治) 아시아대양주 국장을 만나 회담 결과 등에 관해 설명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비건 대표는 당일 한국의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는 만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미 정상회담 직전까지 사전 협의를 가진 것으로 알려진 한미 대표들이 정작 회담 직후에는 만나지 않았던 것이다.
비건 대표가 이 본부장을 만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그가 회담 직후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필리핀 방문에 동행하게 됐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있었으나, 그가 일본 측은 만나면서 한국 측과는 만나지 않은 이유로는 충분치 않아 보인다.
한국 정부가 하노이 회담의 결과를 전혀 예측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사후에도 매우 당황한 모습을 보인 데는 이처럼 현장에서의 상황 파악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당초 하노이 북미회담 직후 개최될 예정이던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이 한일간 조율이 이뤄지지 못해 연기된 사실도 공조체제의 균열로 읽힐만하다. 이에 대해 일본 외교소식통은 "지난달 독일 뮌헨에서 열린 한일 외교장관회담에서 (일왕의 사과를 요구한) 문희상 국회의장 발언에 대해 일본이 항의했느냐 안했느냐의 진실 공방이 오가면서 일본이 한국과 장관급회담을 여는 데 대해 주저하는 부분이 있다"면서 "당시 고노 (다로) 외무상은 자신이 직접 상황을 설명하겠다고 나설 만큼 화가 많이 났다"고 말했다.
하노이 회담 후 1주일이 지나서야 한미일 6자회담 수석대표간 회동이 지난 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사실도 예사롭지 않다. 작년 6월 북미 싱가포르 정상회담 때는 회담 후 이틀 뒤 서울에서 한미일 외교장관회담이 열려 회담 결과를 공유하고 향후 대책을 논의한 것과 비교된다.
3국 6자회담 수석대표 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이도훈 본부장은 지난 5일 서울을 출발했다. 그러나 이 시각 가나스기 국장은 도쿄에 머물면서 워싱턴행에 뜸을 들이고 있었다.
소식통은 "북미 회담 직후 비건 대표로부터 회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은 가나스기 국장으로서는 굳이 미국에 갈 필요가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워싱턴에서 한미일 6자회담 수석대표 오찬회담이 열리기 10시간 전에야 일본 외무성은 가나스기 국장이 미국으로 출장갔다고 발표했다.
워싱턴에서도 한미일 3국 회담에 이어 미·일 한·일 간에 각각 의견교환이 이뤄졌다. 미국이 한국, 일본과 나눈 정보와 전략의 내용과 깊이가 같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게 외교소식통들의 관측이다.
일본은 북핵문제와 관련해 시종 강력한 대북제재를 통한 비핵화를 주장해 왔다. 하노이 회담을 통해 북한에 대한 제재 불변 방침을 확인한 미국이 제재 완화를 요구하는 한국보다는 일본과 이심전심 통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yuncho@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