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1월21일 보물로 지정된 청자 순화4년 명 항아리(靑磁 淳化四年 銘 壺)는 고려 태조를 비롯한 선대 임금들의 제사를 위해 건립한 태묘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제작된 왕실 제기다.
굽 안쪽 바닥면에 돌아가며 '순화 4년 계사년 태묘 제1실 향기로서 장인 최길회가 만들었다(淳化四年 癸巳 太廟第一室 享器 匠崔吉會 造)'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이를 통해 993년 태묘 제1실의 향기(享器)로 쓰려고 장인 최길회가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항아리는 문양이 없는 긴 형태로 입구가 넓고 곧게 서 있다. 몸체는 어깨 부분이 약간 넓은 유선형이다. 표면에 미세한 거품이 있으나, 비교적 치밀한 유백색 점토를 사용해 바탕흙 품질이 좋다. 표면에는 은은한 광택과 함께 미세한 금이 있고 군데군데 긁힌 자국이 사용 흔적으로 보인다.
이 특징은 1989~1990년 북한 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가 황해남도 배천군 원산리 2호 가마터에서 발굴한 순화3년 명 고배(淳化三年‘銘 高杯)를 비롯해 여러 파편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청자 순화4년명 항아리도 원산리 가마터에서 제작되어 태묘 제기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향후 북한 청자 가마터와 비교연구를 통해 한국 청자 생산의 기원에 대해 종합적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청자 순화4년명 항아리는 현전하는 초기 청자 가운데 드물게 크고 바탕흙 품질이 우수하며 형태가 비슷한 사례가 없는 유일한 작품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굽 안쪽에 새겨진 명문으로 제작연도, 기명 용도, 사용처, 제작자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황해남도 원산리 가마터에서 발굴된 '순화'명 파편들과 비교해 고려 왕실 제기 생산 가마터를 비롯해 다양한 제작여건이 추가로 밝혀져 초기청자를 대표하는 유일한 편년자료로서의 가치와 위상이 높다. 한국 청자 발달사를 밝히는데 필수 유물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학술적, 예술적 가치가 매우 크다.
한편, 통일신라에서 고려 초기에 제작된 유물 '군위 인각사 출토 공양구'와 고려와 조선 시대 금속활자로 찍은 '신간유편역거삼장문선대책 권5~6'은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금속공예품은 금동사자형 병향로, 향합, 정병, 청동북 등 총 11점이다. 사찰에서 사용하는 청동제 의례용품들로서 조형성이 뛰어나고 섬세한 기법이 돋보인다. 특히 불교에서 천상의 새를 상징하는 금동가릉빈가상(金銅迦陵頻伽像)은 그동안 출토 사례가 거의 없어 도상적(圖像的)으로 희귀하다. 청동발(靑銅鉢)과 청동뚜껑도 통일신라 시대부터 유행한 전형적 형태로서 당시 공예기술을 보여준다.
이번에 지정 예고된 대상은 총 72권 중 임집(壬集)에 해당하는 고려본 2권 2책과 조선본 2권 2책 권5~6에 해당한다. 모두 금속활자로 인쇄했고 일부 떨어져 나간 부분도 있으나 전체적으로 간행 당시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고려본은 판심(版心)의 규격이 조선본과 다르고, 경의(敬意) 처리법 적용과 권차(卷次, 고려본의 임(壬)을 조선본은 임(任)으로 오기)나 편자(編者, 고려본의 안성(安成)을 조선본은 성안(成案)으로 도치)의 표기에서 조선본보다 앞선 시기의 특징을 보인다. 조선본의 경우 1403년 주조된 계미자(癸未字)를 바탕으로 간행됐다. 계미자는 1420년 경자자(庚子字)를 주조할 때까지 사용된 15세기 대표 금속활자다.
'직지심체요절'은 정확한 간행연대를 가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이다. 이 고려본은 인출 시기 관련 기록은 없으나 고려 말 금속활자 특징들을 보여주고 있어,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이르는 금속활자본 변화상 연구에 중요한 자료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지정 예고하는 3건에 대해 30일간 예고 기간 각계 의견을 수렴·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국보·보물)로 지정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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