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와 정상통화에서 남북철도·경협 역할 제안
북미→남북회담 견인 효과…포스트 북미회담 염두
美엔 협상 옵션, 北엔 제재 완화 물꼬 '일석이조'
특히 북한을 설득시킬 하나의 협상 카드로 남북경제협력 사업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문 대통령의 시선은 이미 '포스트 하노이' 체제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읽을 수 있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19일 오후 10시부터 35분 동안 한미 정상 통화를 갖고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을 위한 공조 방안을 폭넓고 허심탄회하게 논의했다고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서면브리핑에서 밝혔다.
문 대통령은 통화에서 "남북 사이의 철도·도로 연결부터 남북경제협력 사업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한다면 그 역할을 떠맡을 각오가 돼 있다"며 "그것이 미국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길"이라고 말했다.
약 5개월 여만에 이뤄진 이날 한미 정상통화의 1차적인 목표는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진행되고 있는 북미 간 실무협상의 진척 상황을 공유하는 데 있었다.
스티브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와 김혁철 북한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 사이의 본격적인 합의문 조율을 앞두고 한미 정상이 관련 내용을 공유하기 위한 목적이 가장 컸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단순히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협상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듣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 한국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전달하는 등 중재 역할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나타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견인하기 위한 (미국의) 상응조치로서 한국의 역할을 활용해 달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발언 중에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남북 철도·도로 연결을 비롯한 남북경제협력 사업까지 직접 언급한 점이다. '포스트 북미회담'을 염두에 두고 깔아둔 다목적 포석으로 읽힌다.
철도·도로 연결과 남북경제협력 사업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유지되는 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부분 제재완화에 대한 합의가 이뤄져야만 추진할 수 있는 사업들이다.
앞서 문 대통령이 지난 11일 수석 비서관·보좌관 회의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우리에게 특히 중요한 것은 남북관계를 한 차원 더 높게 발전시키는 결정적인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이라고 밝힌 것도 이러한 인식 위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이 단선적으로 북미 관계개선으로 그치지 않고 4차 남북 정상회담을 견인하기 위해선 남북↔북미 간 공통분모가 필요한 상황이다. 남북 철도·도로 연결과 경제협력 사업을 공통분모로 볼 수 있다. 미국엔 협상 옵션이 되고, 북한에는 제재완화의 물꼬를 트는 셈이 된다.
이는 북미 정상회담의 결과가 남북관계 발전에 선순환적인 역할을 하고, 이를 토대로 다시금 북미 관계 개선에 동력을 이어나가야 한다는 게 문 대통령의 '두 바퀴 평화론'과도 맞닿아 있다.
영변은 물론 그 외 지역에 대한 핵시설·물질의 신고, 사찰·검증까지 요구하는 미국의 입장에서 상응조치로서 북한에 제시할 카드가 마땅치 않은 상황을 간파하고 문 대통령이 던진 일종의 회심의 카드가 바로 남북 철도·도로 연결과 경협사업이다.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할 경우를 전제로 그러한 역할을 맡을 각오가 돼 있다고 밝힌 것은 이러한 의도를 우회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외교적 수사로 읽힌다. 공을 트럼프에게 넘기면서 자신의 의도는 효과적으로 전달한 셈이다.
특히 문 대통령이 "그것이 미국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길"이라고 표현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한 시도로 풀이된다. 자신이 제시한 아이디어가 북한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심 대신 미국에 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시그널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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