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균 58일만에 장례…엄마는 책임감에 울지 못했다

기사등록 2019/02/07 16:15:14

김용균씨, 지난해 12월11일 숨진 채 발견

당일 서울서 기자회견…13일부터 문화제

12월27일 산업안전보건법 38년만의 개정

1월22일 빈소 태안서 서울대병원으로 옮겨

대책위 6인 단식…수백명 하루단식 등 동참

설날 당일 당정 합의안에 7~9일까지 장례식

【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故 김용균 씨의 빈소에 어머니 김미숙씨(오른쪽)와 아버지 김해기씨가 들어서고 있다. 지난해 12월 11일 숨을 거둔 지 두 달 만에 치르는 고인의 장례는 '민주사회장' 3일장으로 치러진다. 2019.02.07.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안채원 기자 = 1개월 27일. 스물 네살 나이에 참혹한 죽음을 맞은 청년이 장례를 치르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회사의 말을 듣고 '합의'를 보려던 어머니는 사고 현장을 찾고 마음을 바꿨다. 그리고 해를 넘긴 지난한 싸움 끝에 마침내 아들을 보낼 수 있게 됐다.

충남 태안 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고(故) 김용균씨 얘기다. 그의 장례는 사망 후 58일 만인 7일 시작됐다.

김씨가 발견된 것은 지난해 12월11일 오전 3시20분께였다.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연료공급용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사망한 김씨를 동료가 발견한 것이다. 사망한 지 6시간이나 지난 시신은 끔찍했다.

사고 당일 아침 불행한 사고 소식 정도로 알려졌던 김씨의 죽음은 같은 날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비정규직 공동 투쟁' 기자회견이 열리면서 사회적 공분을 샀다. 

김씨 어머니인 김미숙씨가 슬픔을 이겨내고 마이크를 잡은 것은 사흘 후인 14일이었다. '태안화력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 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시민대책위원회(대책위)'가 중구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던 때였다. 김씨가 처음으로 대중 앞에 얼굴과 실명을 드러낸 날이었다.

처음부터 김씨가 전면에 나서기로 한 것은 아니다.

대책위 관계자는 "원래 어머니께서 회사 측 이야기를 듣고 보상금을 받은 후 일을 마무리를 하려고 하셨다"고 밝혔다. 마음을 바꾼 것은 전날 시민대책위원회와 함께 사고 현장을 찾았을 때였다. "그때부터 모든 일을 대책위에 위임하시고 우리와 함께 했다"고 관계자는 전했다.

24살 청년의 죽음에 사회는 조금씩 답을 내놓기 시작했다. 국회를 비롯한 정치권이 사건 해결에 목소리를 높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김씨의 명복을 빌며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개정법안'을 정부 입법으로 11월 국회에 송부했다고 밝혔다.
【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김용균 씨의 빈소에 영정사진이 놓여 있다. 김용균 씨의 장례는 민주사회장 3일장으로 치러지고 발인은 9일이다. 2019.02.07. bjko@newsis.com
대책위 행동에도 속도가 붙었다. 12월1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시민분향소를 차렸고, 22일부터 매주 범국민추모대회를 열어 책임자 처벌과 재발 방지를 위한 산안법 개정 등을 요구했다. 49재를 치른 지난달 27일까지 총 6번의 추모대회가 열렸다.

산안법은 12월27일 전면개정됐다. 이 법이 개정된 건 38년 만이다.

산안법 전부개정안에는 ▲근로자에게 작업 중지권 부여 ▲유해·위험한 작업의 원칙적 도급금지 ▲도급인의 산업재해 예방 책임 강화, 법 위반 시 제재 강화 등의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끝은 아니었다. 하청 노동자에 대한 원청 사업주의 안전관리 책임이 크게 강화됐지만 도급인의 책임 범위와 법 위반 시 제재 수위는 당초 정부가 내놓은 전부 개정안보다 후퇴했다. 안전하게 일하기 위한 인력충원은 이뤄지지 않았고, 책임자 처벌도 요원했다. 아직 수많은 '김용균들'이 현장에서 일하고 있었기에 김미숙씨와 대책위는 다시 마이크를 잡아야 했다.

싸움은 결국 해를 넘겼다.

유족과 시민대책위는 청와대 분수대와 광화문광장에서 연일 기자회견을 열고 재발방지대책과 함께 원청 책임자 처벌, 진상규명위원회 구성을 지속적으로 촉구했다. 원청인 한국서부발전과 하청업체 한국발전기술을 상대로 두차례 고소·고발도 진행했다.

김미숙씨는 지난달 22일 "차가운 아들 용균이를 끌어안고" 서울로 왔다. 태안의료원에 있던 김씨의 시신을 서울로 옮기면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으로 빈소를 차린 것이다. 시민대책위 공동대표단 6인은 이에 맞춰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명절 전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충남 태안화력에서 정비 점검 도중 숨진 고 김용균 씨의 빈소가 마련된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영정사진이 놓여 있다.  김용균 씨의 장례는 민주사회장 3일장으로 치러지고 발인은 9일이다. 2019.02.07. bjko@newsis.com
간절한 유족의 마음에 연대의 힘이 하나씩 보태졌다.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와 전국교수노동조합,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등 5개 단체 소속 5명이 하루 단식에 동참하는 등 시민 수백명이 단식 농성에 함께 했다. 추모시 낭독회와 추모 기도회가 열리고 한겨울 아스팔트 위에서 오체투지도 진행됐다.

빈소를 지키던 유족에게 새 소식이 도착한 것은 설날 당일인 지난 5일이었다. 당정이 석탄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진상규명위원회)를 조속히 구성하고 사고가 발생한 구조적 원인을 조사하겠다는 내용의 합의안을 발표한 것이다.

여기에는 김씨가 일했던 연료·환경설비 운전 분야 업무 노동자들을 정규직화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5개 발전사의 해당 분야를 맡을 공공기관을 만들어 관련 분야 비정규직들을 직접고용하겠다는 방안이었다.

이에 '임시상태'였던 장례절차는 이날 비로소 시작됐다. 민주사회장 삼일장으로 열리는 이번 장례식에는 고인과 함께 근무했던 비정규직 노동자 3명이 호상(護喪·상가 일을 지휘·관리하는 사람)을 맡았다.

김미숙씨는 이날 빈소에서 기자들을 만나 "다시는 저처럼 아이를 잃어 가슴에 큰 한을 남기지 않도록 (동료들을) 다 살리고 싶은 마음이 여태까지 저 아이(김용균씨)를 냉동고에 있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newkid@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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