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중 라이벌로 나와 현장에서 혜윤이 연기를 많이 봤다. 혜윤이가 실제 성격이 당찬데 연기에도 묻어나오더라. 연기하면서 가끔 힘들다고 했지만 그런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당차고 씩씩한 모습을 보고 조금 부러웠다. 알고 보니 최종 오디션에 혜윤이와 같이 들어갔더라. 서로 번갈아 가면서 ‘혜나’, ‘예서’ 대사를 읽었다. 옆은 못 쳐다보고 속으로 ‘연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됐는데 맛깔나게 잘한다’고 생각했다. 워낙 잘해서 ‘혜나 역에 캐스팅되겠구나’라고 생각했는데 혜윤이일 줄은 몰랐다.”
극중 김보라는 ‘강예서’(김혜윤)와 전교 1, 2등을 다투는 라이벌 ‘김혜나’를 연기했다. 혜나는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는 미혼모 딸이다. 흙수저 출신으로 예서의 부유한 집안, 엄마의 교육열, 의사인 아빠까지 모든 것이 훔치고 싶을 정도로 부럽지만 자존심 때문에 티내지 않았다.
김보라는 처음 극본을 봤을 때부터 예서보다 혜나에 끌렸다. 솔직히 그 동안 연기한 캐릭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며 “오디션에서 대본을 보고 순간 몰입이 잘 됐다. 연기하면서 편안했다”고 돌아봤다. 그래도 “난 혜나처럼 어른을 찜 쪄 먹을 정도의 용기는 없다”면서 “혜나는 가진 게 없지만 똑똑한 두뇌로 어른들의 심리를 흔들지 않았느냐.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혜나는 김주영 쌤이 시험지를 유출한 걸 알고 있지 않았느냐. ‘내가 비밀을 쥐고 있어’라는 느낌을 주게끔 여유 있게 연기했다. 그래도 혜나는 아직 어린 학생이니까 김주영 쌤 앞에서 ‘조금 떨리지 않을까?’ 싶더라. 감독님께 혜나가 거만하게 보이면서도 긴장감을 숨기기 위해 ‘주머니에 손을 꽂으면 좋겠다’고 했다. 발 까딱까딱 거리면서 콧물 한 번 쓱 닦고 편안하게 대사를 쳤는데, 감독님이 엄청 마음에 들어 하더라.”
혜나는 예서의 경쟁심을 건드리기 위해 ‘우주’(찬희)를 이용했다. 우주와 뽀뽀신 관련해선 “미안한 마음이 컸다”고 전했다. “똑똑한 혜나가 우주의 마음을 모를 리 없다”며 “이성으로서 잠깐 감정이 생겼을 수 있지만, 넘어야 할 신이 너무 많지 않느냐. ‘너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대사가 혜나의 마음을 대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뽀뽀신은 찬희와 찍었지만, 정작 열애설은 ‘차기준’ 역의 조병규와 났다. 메이킹 필름에서 조병규가 넘어질 뻔한 김보라를 잡아주면서 빚어진 해프닝이다. 사실 “병규가 손을 잡아줘서 뿌리쳤다. 앞에 카메라가 있어서 민망해 웃은 것”이라며 “워낙 드라마가 인기를 끌어서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준 것 같다”고 덧붙였다.
20년쯤 지났을 때 연기하고 싶은 캐릭터로 염정아(47)가 연기한 예서 엄마 ‘한서진’을 꼽았다. 얼굴 근육이 미세하게 떨리며 디테일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은 모습을 보고 “마냥 감탄했다”며 많은 경험이 쌓이면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싶더란다.
혜나의 죽음은 시청자들에게 충격을 줬다. 14회에서 우주(강찬희)의 생일파티가 열린 날 밤, 혜나는 건물 위층에서 추락했다. 20회에서 김주영의 사주를 받은 경비원(박인규)이 범인으로 밝혀졌다. 처음부터 혜나가 죽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유는 몰랐다. “대본을 받고 촬영장에서 연기한 뒤 TV로 봤을 때도 충격 받았다”며 “촬영 당시 피 분장을 해 찜찜하고, 추워서 누워 있는데 감정이 계속 올라오더라. ‘이제 진짜 죽는구나’라는 생각에 외로움이 몰려왔다”고 털어놓았다.
“혜나는 열심히 살려고 한 것뿐인데 죽는 게 너무 억울하더라”면서도 “그 장면에서만 배경 음악이 사라지지 않았느냐. 바로 직전에 우주 생일의 행복한 모습과 대비돼 시청자들이 더 몰입한 것 같다”고 짚었다.
이와 함께 혜나는 예서 아버지 ‘강준상’(정준호)의 딸로 드러났다. ‘출생의 비밀’이 있어서 당연히 ‘예서와 관련 있지 않을까?’ 짐작은 했다. “너무 마음 아프고 찡했다”며 “혜나가 죽은 뒤 자신의 딸인 줄 알고 강준상은 후회하지 않았느냐. 나이가 오십인데도 불구하고 철이 안 들고, 어리광 피우듯이 소리를 지르는 모습이 더 슬펐다”고 전했다.
성인 연기를 꿈꾸지는 않을까. “‘학생 연기를 할 수 있을 때 해야겠다’고 마음을 고쳐 먹었다“며 담담해했다. 아역 출신에서 성인 배우로 발돋움하면서 성장통을 겪게 마련이지만, 일부로 벗어나려고 하지 않았다. ”맞지 않은 옷을 입으면 어색하기 때문”이다. 인터뷰 사진 촬영 중 잠시 하이힐을 신었지만 어딘가 어색해 보였다. 실제로도 하이힐 보다는 운동화가 편하단다. ”나에게 안 어울리는 옷을 입기보다 어울리는 옷을 안 어울릴 때까지 입고 싶다“는 마음이다.
“예전에는 빨리 어린 티를 벗고 싶은 조급함이 있었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아서 역할에 크게 욕심 내지 않는다. 똑같은 학생 역이라도 성격은 다 다르지 않느냐. 성인 연기자로 변신한 모습을 보여주기 전에 좀 더 다양한 역을 맡아 연기력을 탄탄히 쌓고 싶다. 이전부터 ‘어떤 배우가 되고 싶냐’고 물으면 항상 ‘역할 이름으로 불리고 싶다’고 답했는데 꿈이 이뤄졌다. 요즘 ‘SKY캐슬’ 혜나로 불리는 게 정말 좋다. 자연스럽게 그리고 천천히 혜나가 잊히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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