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발적이고 발칙한 창극 '내 이름은 사방지'···반음양 인간

기사등록 2019/01/28 18:03:26
김준수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하늘에 달려 있는 도리는 음과 양이며 사람에게 달려 있는 도리는 남자와 여자입니다. 저것은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니, 죽여서 용서할 게 없습니다."(세조실록 42권, 세조13년 4월5일)

성소수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창극 '내 이름은 사방지'(연출 주호종)가 2월 16, 17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한다.

남녀양성을 한 몸에 지니고 있다는 이유로 모욕과 혐오를 뒤집어썼던 '사방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사내이자 동시에 계집인 그 또는 그녀의 파란만장하고 비극적 인생을 소리로 풀어낸다.

조선왕조실록에 사방지 기록은 몇 줄에 지나지 않다. 작가인 사성구 중앙대 교수가 상상력을 덧붙여 '혐오스럽고도 아름다운 사랑가'를 완성해내고자 했다. 이를 통해 권력과 차별의 부조리를 짚는다.

사 교수는 "'차이가 차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차별을 만든다'는 묵직한 메시지를 씻김굿을 하듯 사방지의 무지갯빛 파란만장한 만가(輓歌)로 녹여냈다"고 소개했다.

사방지를 바라보는 세상의 일그러진 시각을 구현한 초현실적인 거울 이미지, 한복의 패턴을 찢은 과감하고 도발적인 의상, 관객의 상상력을 투사하는 영상, 기존 창극의 음악 패턴을 깨부수는 작창과 악기편성도 기대를 모은다.

무엇보다 국악계의 스타들이 총출동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중성적인 분위기의 콘셉트를 표방하는 젠더 프리 캐스팅이라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박애리
'국악계의 아이돌 스타'로 통하는 국립창극단 단원 김준수가 매혹적인 사방지를 연기한다. 김준수는 국립창극단 대표 창극 '트로이의 여인들'에서도 절세 미녀 '헬레네'를 맡기도 했다. 국악계 프리마 돈나 박애리가 남성적 아우라를 발산하는 홍백가를 맡는다.

이와 함께 소리 신동에서 국민 소리꾼으로 거듭난 유태평양이 팔색조 캐릭터를 오가는 화쟁선비 역을 맡는다. 소리꾼 전영랑이 관능적인 기생 매란이다.

한승석 중앙대 교수가 작창, 박성호 국립국악원 무용단 총무가 안무를 맡는 등 창작진도 탄탄하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의 기대작 중 하나다.

한편, 사방지(舍方知)는 1467년(세조 13) 팔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어려서부터 사방지는 어머니가 입혀주는 여자아이 옷을 입었다. 연지와 분을 발랐고 바느질도 배웠다. 벼슬한 선비의 집안을 드나들면서 숱한 여시(女侍)와 통했다. 양반가의 과부 딸과는 거의 10년간 이런 관계를 맺었다. 파트너 가운데는 여자 중도 있었다. 해당 여승은 사방지의 양도(陽道)가 매우 장대하다고 증언했다. 이후 여러 사람이 만져본 결과, 과연 대물이었다. 세조는 "사방지는 인류가 아니다. 마땅히 모든 원예(遠裔)와 떨어지고 나라 안에서 함께 할 수 없으니 외방 고을의 노비로 영구히 소속시키는 것이 옳다"고 했다.

사방지는 영화로도 나왔다. '여자인가 남자인가, 하늘이 인간을 내시매 남자와 여자 그리고 사방지가 있었다'라고 광고한 이혜영 주연작 '사방지'(1988)다. 이 영화 포스터를 당시 법원은 음화라고 판결했다. 건전한 성풍속이나 성도덕 관념에 반한다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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